기자명 정민서 기자
  • 입력 2024.03.05 13:15

HD현대중공업 고발 관련 기자회견…피의자 신문조서 공개
"수주 위한 이익 다툼 아닌 공정·신뢰의 문제"

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한화오션이 전날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고발장을 제출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한화오션이 전날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고발장을 제출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뉴스웍스=정민서 기자] "군사 기밀 유출에 (HD현대중공업) 임원이 개입한 증거가 있다. 단순히 경쟁업체 간 사업 수주를 위한 이익 다툼이 아니다. K방산의 신뢰성 문제다."

한화오션은 5일 서울 중구 한화 빌딩에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개념설계 정보 유출과 관련, 전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HD현대중공업 임원을 고발한 것에 대한 입장 설명회를 열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설명회에는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변호사가 발표를 맡았고, 정원 율촌 변호사와 배선태 한화오션 특수선영업담당 수석이 배석했다.

구승모 변호사는 "국방력을 좌우하는 방위산업에서 보안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수년에 걸쳐 비인가 서버에 불법 자료를 보관하고 공유한 것은 유례없이 심각하고 중대한 보안사고"라며 "이에 상응하는 조치 없이 사업 수행이 지속된다면 유사한 행위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고발 배경을 밝혔다.

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사내 변호사가 전날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고발장을 제출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사내 변호사가 전날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고발장을 제출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지난 2012~2015년 KDDX 등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작성한 군사기밀을 불법 탈취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했다. 이후 기무사령부 보안감사에서 적발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작년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은 방사청 보안 규정에 따라 입찰 시 보안감점 -1.8점을 적용받았다.

방사청은 이와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의 KDDX 사업 입찰 여부를 논의했으나 "청렴 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며 참가 제한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은 임원에 대한 형사처벌이 있어야 제재가 가능하다고 해석해 고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이날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한 HD현대중공업 임원 개입 증거 자료를 공개했다.

한화오션에 따르면 2018~2020년 사이 이뤄진 피의자신문조서 등에서 HD현대중공업 스토리지를 나눠 기밀 자료를 보관하며 보안 감사 때 네트워크를 단절하는 방법으로 감시를 피해 왔다. 해당 스토리지는 서버 운용 솔루션 유지보수 업체에 관리를 맡겼는데, 이는 비용이 지출되는 부분이라 임원의 결재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한화오션이 군검찰에 요청해 확보한 형사사건 기록을 보면 직원들은 군 실무자로부터 군사기밀을 제공받아 열람한 사실을 부서장과 임원에게 결재받았으며, 결재 계통에 있는 상급자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또한 군사기밀을 몰래 촬영한 행위에 대해 임원으로부터 질책받았냐는 수사관의 질문에는 "질책받은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구 변호사는 "군사기밀 탈취가 직원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전체적으로 경영진까지 포함한 업무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에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며 "회사 차원의 조직적 범죄 행위에 대해 직원 9명에 대한 처벌로 종결짓는 것은 너무 불합리한 일이고,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사내 변호사가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군사 기밀 유출 개입 관련 증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5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중구 한화빌딩에서 구승모 한화오션 컴플라이언스실 사내 변호사가 HD현대중공업 임원의 군사 기밀 유출 개입 관련 증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정민서 기자)

현장에서는 이번 고발이 올 하반기에 예정된 KDDX 사업 입찰에 영향을 미치긴 어려울 것이라며 고발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구 변호사는 "경쟁사를 고발하다 보니 사업 수주를 위한 이익 다툼으로 보일 소지가 있는데 그런 측면이 아니다"라며 "방사청은 사업은 사업대로 간다는 입장이고, 당사도 경쟁 입찰이 이뤄질 경우 경쟁을 통해 수주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이번 고발로 인한 조사로 임원 개입 혐의가 인정되고 형사처벌로 이어질 경우 그 전에 입찰 참가 제한 사안이 있다면 새로운 사실 관계에 기반한 심의 등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방사청에서 제척 기간이 지났다고 한 건에 대한 법률 검토에 관한 질문에 정원 율촌 변호사는 "국가계약법상 제척 기간은 5년이며, 행정 기본법상 2021년 시행일 이후 위반 사유에 적용되기 때문에 본건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방사청 계약심의회는 심의 기구이지 의결 기구가 아니다. 추가로 임원급의 개입이 확인될 경우 새로운 심의가 이뤄질 수 있어 추가 제재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이 입찰 참가를 제한받을 경우 정부의 함정 건조 사업에서 한화오션의 독점 체제가 형성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한화오션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구 변호사는 "대형 함정과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곳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두 곳뿐이지만 범위를 전체 함정으로 확장하면 SK오션플랜트와 HJ중공업 등 여러 곳이 있다"며 "설령 HD현대중공업이 제재받아도 행정소송으로 다툴 것이고, 집행정지를 통해 웬만한 사업에 다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선태 한화오션 특수선영업담당 수석부장은 "지금 상황은 오히려 HD현대중공업의 독점체제"라며 "HD현대중공업은 수상함 수주잔량이 13척으로 2028년까지 건조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지난해 11월 계약한 '울산급 배치3' 5‧6번함을 포함해서 수주잔량이 3척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정 변호사는 "이 사건의 실체를 말씀드리자면 입건된 사람 25명 중 절반은 HD현대중공업 관계자, 절반은 군 공무원"이라며 "문제당사자들은 꼬리 자르기 식으로 사건을 축소하고 싶겠지만, 이번 사건이 직원들만으로 이뤄질 수 없는 건 모두가 상식적으로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야무야 넘어가면 유착관계에 의한 관행과 비리와 불법이 반복적으로 이뤄지게 되고 정부가 손 놓고 있다면 이것을 인정하게 되는 꼴이기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이번 고발을 국기문란과 국가안보를 바로 세워 원칙을 정립하는 취지로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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