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4.03.15 17:39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수명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죽고 사는 문제를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인명재천보다는 '인명재분(人命在紛)'이 더 맞는 말인 듯하다. 사람의 목숨이 정부와 의료계 간의 '분쟁(紛爭)'에 달렸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서울대병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 서울 병원의 60세 암환자는 작년에 암 진단을 받고 이번 전공의 사직 사태로 입원이 중지돼 항암 치료가 연기됐다"며 "총 4주가 연기되면서 그 사이 등 통증과 간수치가 올라갔다"고 밝혔다. 한 70대 암환자는 반강제로 요양병원으로 옮겼다가 다음 날 사망하는 사례도 발생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가스통 폭발 사고로 쇳조각 파편이 두 눈에 꽂힌 환자는 수십곳 병원에서 전원을 거절당했다고 한다. 실명 위기에 처했지만 '안과 의사가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십자인대가 끊어져 대학병원을 찾은 또다른 환자는 수술을 문의했다가 거절당했다. 

이처럼 수술, 항암치료 등이 평소보다 줄어들며 발생한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달 19일부터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상담 수는 1300건을 넘어섰다. 이중 500건 가량은 수술 지연, 진료 취소, 진료 거절 등 피해 신고인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계는 2000명 의대 증원 규모가 과하다며 급격한 정원 확대로 의학교육의 질이 하락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또 의사 수가 증가해도 지역·필수 의료에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의사 수 증가는 의료비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대정원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어야 했고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앞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은 지난달 19일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등 '의료 개혁'에 반발해 의료 현장을 떠났다. 전국 주요 수련병원 100곳에서만 1만2000여 명의 전공의가 계약을 포기하거나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과대학 교수들의 집단사직 움직임도 현실화하고 있다. 전국 24개 의대 교수 비대위원회는 15일 저녁 온라인 회의를 통해 사직서 제출 여부, 사직서 제출 시기를 논의해 발표할 예정이다. 이미 서울의대를 비롯해 울산의대, 가톨릭의대 등 빅5 의대 중 3곳은 사직을 결의했다. 

정부도 강경 대응으로 맞서며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까지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전공의 4944명에게 사전 통지서를 발송했으며 나머지 대상자들에게도 순차적으로 사전 통지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의대 교수들에 대해서도 의료법에 따른 '진료유지명령'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경 대응'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에서 "우리 헌법과 법률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를 위해 국가와 의사에게 아주 강한 공적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며 "국가가 의사에게 면허를 부여하고 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불법적 집단행동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 의료 행위에 대한 독점적 권한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함께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정부의 조치는 의사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 따른 국가의 책무와 국민의 생명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에 애먼 환자들만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퇴로 없는 강대강 대립만 이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먼저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대화가 있어야 해법도 도출할 수 있다. 힘으로 누르려는 강압적인 정책, 타인의 피해를 담보한 반발은 누구에게도 득이 없다. 이제 대화를 통한 현명한 답을 도출할 때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파국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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