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채윤정 기자
  • 입력 2024.03.24 12:00
삼성전자의 반도체라인 클린룸.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의 반도체라인 클린룸.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파운드리 글로벌 점유율은 떨어지고 대만 TSMC와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도 인텔에 내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정부는 인텔에 삼성전자 보조금의 3배가 넘는 195억달러(26조원)의 반도체법 기반 지원금을 지급한다.  

바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처한 상황이다. 

하지만,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 20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점유율을 점차 높여가면서 2~3년 안에 반도체 글로벌 시장 1위 자리를 되찾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 사장의 자신감은 인공지능(AI) 가속기인 '마하1'과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E'가 자리하고 있다. 두 제품이 향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승부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인텔 파운드리 IFS 다이렉트 커텍트'에서 사업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인텔 홈페이지)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인텔 파운드리 IFS 다이렉트 커텍트'에서 사업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출처=인텔 홈페이지)

◆미 정부의 막강한 보조금…인텔, 파운드리 '추진력' 배가

외신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인텔에 반도체 법 기반 보조금의 최대 규모인 195억달러(26조원) 금액을 지급한다.

삼성전자에 지원될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인 60억달러(약 8조원)의 3배를 넘는 규모다. 이 중 85억달러(약 11조4000억원) 반도체 보조금이며, 110억달러(약 14조8000억원)는 대출 지원금이다. 

미국 정부는 최근 반도체 법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할 때 '자국 우선주의' 태도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역대 최대 규모의 미국 반도체 투자를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제로 수준인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2030년까지 전 세계 20%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텔은 향후 5년간 애리조나, 뉴멕시코, 오하이오, 오리건 등에서 1000억달러(약 134조원) 이상을 투자해 생산 능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은 인텔이 이번 보조금 외에 군사 및 정보용 반도체 제조를 위한 보조금 30억달러(약 4조134억원)도 추가로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인텔은 '제2의 칩스법' 등을 통해 미국 정부에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하고 있다. 

인텔이 당초 예상된 100억달러보다 두 배의 지원금을 확보하면서 삼성전자 등 해외 반도체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인텔은 오는 2030년 삼성전자를 제치고 파운드리 2위에 올라선다는 목표다. 

인텔 파운드리 공정 로드맵. (사진제공=인텔)
인텔 파운드리 공정 로드맵. (출처=인텔 홈페이지)

삼성전자는 또 지난해 인텔에 반도체 공급사 매출 1위 자리를 내주면서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인텔의 반도체 매출 487억달러로 1위를 기록했다. 반면, 삼성전자의 반도체 매출은 전년보다 37.5% 줄어든 399억달러를 기록해 2위로 밀려났다.

TSMC와 점유율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도 고민거리다. 대만 TSMC의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57.9%에서 4분기 61.2%로 껑충 뛰었다. 분기 점유율이 60%대를 넘긴 것은 지난해 1분기 60.1% 이후 3분기 만이다. TSMC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60%대를 찍었지만, 2위 삼성전자는 20%대에서 10%대로 역성장했다. 

특히 엔비디아는 자사의 그래픽처리장치(GPU)인 '블랙웰'을 TSMC에서 생산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향후 TSMC와 삼성전자의 점유율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고전에 대해 제때 대규모 투자를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2010년대 후반 메모리 호황을 지렛대로 삼아 적극 투자에 나서야 했지만, 단기 수익에 매몰돼 신사업 역량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뒤져 있는 것도 극복해야 할 요소다. 최근 생성형 AI 개발이 활기를 띠면서 엔비디아가 HBM3을 대량 구입하고 있지만, 이 수요를 SK하이닉스가 독점하는 상황이다. 이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올해 D램 매출 중 HBM 비중이 20%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사장. (출처=경계현 인스타그램)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사장. (출처=경계현 인스타그램)

'마하1'과 '12단 HBM3E'…엔비디아·SK하이닉스 '투트랙' 경쟁

삼성전자의 승부수는 엔비디아의 AI 가속기를 대체할 수 있는 추론에 특화된 '마하1'이다.

경계현 사장은 "마하1에 대한 기술 검증에 마무리됐다"며 "연말경 실물 칩을 만들어 내년 초 자체 개발한 시스템을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하1'의 첫 고객은 네이버다. 삼성전자는 '마하1' 20만개를 네이버에 납품하는 1조원 규모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또 네이버 납품을 발판으로 글로벌 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 빅테크 공략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엔비디아 AI 가속기가 학습과 추론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데 사실상 추론에는 값비싼 제품을 쓸 필요가 없다"며 "마하1은 추론만을 위한 AI 가속기다. 엔비디아의 가속기는 'GPU+HBM'으로 구성되지만 '마하1'은 '프로세서+D램'을 묶는 방식이다. 가격도 10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MS, 아마존 등도 이 같은 추론형 AI 가속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 업계에서는 추론에는 굳이 고성능 제품을 쓸 필요가 없는 만큼, 맞춤형 가속기를 사용하면 된다는 의견이 더 많아지고 있다. 엔비디아 제품은 전력도 많이 소모한다. 이에 따라 '마하1'과 같은 특화 가속기를 도입하는 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 사장은 주총에서 "마하1은 데이터 병목(지연) 현상을 8분의 1로 줄였고 전력 효율은 8배 높인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에 뒤지고 있는 HBM 분야에서도 맹추격에 나섰다. 

특히 2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개최된 'GTC 2024' 행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삼성전자 HBM3E 12단 실물 제품에 친필로 '승인(approved)'이라는 사인을 남겼다. 이는 HBM 시장의 가장 큰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삼성전자 HBM3E 납품을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제품 기술력 면에서도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 12단 HBM3E 실물을 공개해 주목된다. SK하이닉스는 아직 12단 제품은 없으며, 8단 적층의 HBM3E 제품을 이달 말부터 양산할 계획이다. 12단 제품은 삼성전자가 최초로 선보인 만큼, 차별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는 '마하1'로 엔비디아와 경쟁하고, 메모리반도체는 12단 HBM3E로 SK하이닉스와 맞선다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는 셈이다.

한편, 미국 상무부는 삼성전자에 대한 반도체법 지원금 규모를 이달 28일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경계현 시장은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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