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7.02.01 08:53

[2부 새로운 정치-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18년전. 1898년 11월5일부터 12월25일까지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40일간 ‘충군애국하는 조선의 인민’이 모인 만민공동회 집회가 철야로 열렸다고 당시 독립신문은 기록하고 있다. 500년 왕조가 황제체제로 승격했지만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낭떠러지로 떨어지자, 백성은 ‘풍찬노숙’을 택했던 것이다.

2016년 12월9일은 역사에 새겨질 날이다. 국회에서는 재적의원 300명 중 299명이 참석, 234대 56(기권2, 무효7)으로 대통령(박근혜)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지난 10월29일부터 12월3일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매주 토요일마다 거리를 가득매운 ‘충민애국’하는 시민이 만들낸 역사다.

서울 남산도서관에서 젊은이들이 평일 낮 열람실에서 독서하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음 <사진=남산도서관홈페이지>

[뉴스웍스=한동수기자] 118년전 망국의 한을 품었던 백성들은 후손에게 물려줄 나라를 지키기위해 바람과 이슬에 젖은 몸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 후손들이 2016년 다시 같은자리에 모였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우리역사에는 11명(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들 대통령은 하야(이승만), 쿠테타군에 정권이양(윤보선), 독재‧횡사(박정희), 군부에 정권이양(최규하), 내란죄(전두환‧노태우), 차남비리‧경제파탄(김영삼), 직계가족비리(김대중), 자살(노무현), 친형구속(이명박), 탄핵가결(박근혜)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로인해 그들의 빛을 퇴색시켰다.

1898년 그 겨울, 열강의 이권침탈에 대항했던 평화적 민중 운동은 2016년 광장의 촛불로 승화됐고 세기를 넘기면서 명맥을 유지했다. 민중은 조선말이나 지금이나 후손을 생각하고 애국하는 마음을 지켜왔다. 반면 통치자들은 무능, 사리사욕, 구태를 버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왼쪽)1898년 11월5일부터 12월25일까지 서울 대한문앞과 종로 일대에서 철야로 열렸던 만민공동회 자료사진. 2016년 12월9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자 환호하고 있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DB>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외신들은 광화문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을 생중계로 보도하면서 “믿겨지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들은 수백만명이 운집한 것에 놀랐고 평화적이라는 것에 두 번 놀랐다. 그리고 이튿날 아무일도 없었던 듯 깨끗한 거리에 또 놀랐다. 이런 국민을 폄훼하고 때론 무시했던 것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었다. 

이제 대통령의 모습부터 달라져야 한다. 표를 구걸하기 위한 '섬김'은 사기다. 표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체가 국민의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년 상반기 중 조기대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국민들을 어려워하고 후손에게 물려 줄 대한민국을 보존할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권이 바뀌어야만 한다.

 “대한민국 보수는 보수가 아니다”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치성향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보수가 진보를 앞선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우리에겐 진정한 보수가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자니 국민 절반이상이 자기 부정을 해야하는 모순에 빠진다.

세계적인 스테디셀러 ‘보수주의’의 저자이자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니스벳(1996년 작고)은 보수주의의 핵심원리로 ▲개인의 자유보장 ▲재산권 보호 ▲법치주의를 꼽았다. 이 세가지는 전 세계 보수정당의 핵심 가치다.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 사유는 법치주의를 깨뜨린데 있다.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대기업의 재산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왜 우리에게 제대로된 보수 혹은 보수정당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정당이 추구하는 철학이나 이념의 큰 틀이 시대상황에 따라 어느정도 진화할 순 있지만 핵심원리에서 벗어날 경우 심하게 얘기하면 변절이 될 수 있다”며 “보수주의자들이 국가를 개인의 자유보다 위에 놓고, 법 준수나 사유재산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겨울, 광장의 민심을 기억하자

내년 경제전망이 암울한 상황이지만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까지 와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전(戰)후 기적처럼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일부에서나마 작동했던 보수의 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탈하면서 부정과 부패만 일삼았다면 결코 이뤄낼 수 없었다. 해방 후 70여년간 ‘자기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부모 세대’의 억척과 정치‧사회 전반에 보수의 가치가 채색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 추락한 보수세력은 환골탈태해야 한다. 진보진영도 국민앞에 비전을 제시하고 책임있는 국정운영의 적임자로 심판받아야 한다.

불과 한달도 남지 않은 2017년. 우리는 새 대통령을 선택해야 한다. 그동안 잘못된 선택의 대가를 우리는 처절하게 경험했다. 또 한 번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한 때 잘 살았지만 정쟁과 부패로 망한 나라로 전락할 것이다.

광장에서 한층 성숙해진 유권자들은 후손에게 물려줄 대한민국이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고 특권의식이 없어진 나라로 탈바꿈하길 열망하고 있다. 이제 유권자들은 보수‧진보할 것없이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제대로된 정치세력이 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의 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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