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계몽이 필요한 지도층
[이호영의 덕후철학] 계몽이 필요한 지도층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6.12.2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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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처에서 양심에 털이 난 사람들을 본다. 대통령부터 청문회 증인까지 파렴치한 만행을 부끄러움 없이 저지른다. 심지어 신문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자기가 한 말을 뒤집고도 당당하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내로라하는 사회 지도층이다. 바보 같은 시민들만 양심적이다. 어찌하여 그들에게는 양심이 없을까? 자못 궁금하다.

사람이 양심을 타고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혹하고 몰염치하며 비양심적인지를 역사가 잘 보여준다. 역사가 말하는 인간은 야만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세기는 전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시대다. 한국에서도 6.25전쟁으로 군인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죽었다. 오늘도 시리아에서 민간인 피난민들이 바다에 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은 난폭한 동물이다. 문명화하기 전에는 사람을 죽이던 칼로 음식을 잘라 식탁에 올리고 음식을 먹던 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기(史記)>에도 자기 자식을 요리하여 왕의 식사로 올리던 역아(易牙), 어장(魚腸)이라는 칼로 왕을 시해한 사건 외에 여러 자객들이 등장한다. 근세에도 마적이나 해적이 휩쓸고 간 마을에서 야만적인 폭력성이 드러난다. 인간은 대립이 생기면 무력행사를 주저하지 않았다.

서양에서 윤리를 강조한 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이고 동아시아에서는 맹자가 양심(良心)을 말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양심이라는 것이다. 야만에서 문명으로 옮겨가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명의 싹은 2000년을 기다려야 했다.

‘문명’은 1760년 미라보(Mirabeau)가 처음 사용한다. 그는 ‘예절civilte’을 ‘미덕과 이성이 제자리를 찾음’이라 말한다. 이후 ‘불결’이나 ‘거친’의 반대어인 ‘길들여진’다는 의미가 더해지고 결국 성행위, 육체기능, 식습관, 식탁예절, 대화 예절이나 기준이 강화되면서 부끄러움, 당혹감, 혐오감으로 발전한다. 양심이 바로 이것이다.

문명과 예절이 자리 잡으면 폭력보다는 내면을 중시한다. 내면에 억압 장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로써 전쟁터는 내면으로 옮겨간다. 이제 전쟁의 승리는 교육과 성찰을 통해 이뤄진다. 격한 감정을 순화하고 문화, 예술로 고양하는 일이 바로 문명이자 양심이다.

모두가 문명화하고 양심적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귀족과 민(民) 두 부류다. 공자(孔子)의 고민도 이것이었다. 전통적으로 귀족에게는 문명인 예(禮)를 적용했지만 민과 노예에겐 폭력인 형벌로 다스렸다. 이런 세상에서 공자는 민에게도 부끄러움(廉恥)을 알게 해서 궁극적으로는 문명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자에게 염치가 양심이었다. 그는 폭력을 문명으로 바꾸자고 한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민에게 너그럽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민이란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노예나 다를 바 없이 천한 것이었다. 통치자는 이들을 인간으로 대접해주기 싫었다. 민에게 권리를 인정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게 동양에서 민권사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통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상은 변한다. 민도 배우고 생각하다보니 저절로 문명화한다. 내적으로는 자기성찰을 통해 양심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민주적인 정치적 변혁과 참여를 통해 의무만이 아닌 권리도 지닌 주체적인 시민임을 자각한다. 공자의 이상을 민이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민이 치열하게 변모했지만 귀족들은 그럴 이유가 절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민은 여전히 권리 따위는 인정해줄 필요 없는 개돼지만 못한 노예들이었다. 그저 조상 때부터 해 오던 대로 민의 피를 뽑아먹으며 궁중에서 온갖 거짓과 권모술수로 가득한 권력 게임을 즐길 뿐이었다. 때문에 그들에게 양심이란 불필요한 노예의 도덕이다. 개돼지의 윤리다. 당연히 이런 자들에게 도덕적 자기성찰이나 문화적 승화는 바랄 바가 아니다. 이게 바로 우리네 사회 지도층의 현주소다.

이제 문명도 도덕도 양심도 민의 차지다. 사회지도층 또는 귀족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반문명적인지 아직 모른다. 그래서 그들에게 부끄러움도 양심도 없다. 공자가 말한 상하의 윤리는 뒤집혔다. 그의 시대는 간 것이다. 이제는 민을 문명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민이 귀족에게 문명의 예를 주입할 차례다. 이게 바로 계몽(啓蒙)의 참모습이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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