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영의 덕후철학] 의심하기에 음모를 본다
[이호영의 덕후철학] 의심하기에 음모를 본다
  • 이호영 철학박사(런던대)
  • 승인 2016.12.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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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댈러스의 케네디박물관 맞은편에는 음모박물관(conspiracy Museum)이 있었다. 문을 닫은 지 1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케네디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은 증권가의 찌라시 같아 세상을 서성인다. 케네디뿐 아니라 로스웰 사건, 달러에 새겨진 피라미드, 세계를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와 프리메이슨, 최근에 불거진 달 착륙까지 무궁무진하다.

사람들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고 믿으려 한다. 때문에 음모론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에 비해 원인이 턱없이 작거나 허무맹랑하다면 의심을 하게 된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나치 괴벨스는 “선전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수백 장의 문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확인 했을 때에는 이미 선동에 당해있다”고 했다. 한 문장과 수백 장의 문서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한 문장은 ‘인과(cause-effect)’를 뜻하고 수백 장의 문서란 ‘논리(logic)’를 가리킨다.

인과와 논리 사이에는 ‘시간’이 있다. 사람은 0.3초 이내에 두 일이 일어나면 이를 원인과 결과로 여긴다. 반면 수학이나 논리에는 시간이나 우연은 없다. 수학문제를 풀다 조금 놀고 와서 다시 푼다고 문제나 답이 변하지 않는다. 논리로는 시간이 만들어 낸 그림을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 의심은 바로 둘 사이의 간극에서 생긴다.

의심은 본능이다. 본능적인 의심을 따라 파고드니 최순실이 나왔다. 하지만 최순실은 깃털이라 충분치 못하다. 몸통은 세월호다. 몸통을 따라 가니 대통령의 7시간이 나온다. 하지만 멀리 청와대에서 벌어진 일(遠因)이지 어린 아이들이 수장된 직접 원인(近因)은 아니다.

이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슨 짓을 했던 그저 혐오스러운 범죄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 배의 침몰과 구조실패에 대한 수긍할 만한 해설은 없다. 어린 학생들이 차디찬 바닷물에서 질식사해야 했던 이유를 대지 못한 것이다. 자로라는 음모론 오타쿠의 잠수함 충돌설도 바로 이 의심의 원인-결과를 이해하기 위한 본능적인 대응이다.

잠수함이 지날 수 없는 수심이라거나, 밝힐 수 없는 군사 비밀이라고 논박한다. 해군도 발끈하여 고발로 대응한다. 하지만 고발은 의심의 밥이다. 밥을 먹으면 힘이 세진다. 논리로는 결코 원인-결과가 만들어내는 의혹을 넘어설 수 없다는 말이다.

음모란 불확실성을 먹고 산다. 일부 최순실을 통해 밝혀지면서 신빙성을 더하니 사람들은 고개를 거웃거리면서도 믿기 시작한다. 비선 실세가 바로 거대 권력의 일부라는 점이다. 세월호조차 박근혜, 최순실, 새누리당을 위에서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파와 유병언을 미끼로 1993년 서해 페리호처럼 덮으려 했지만 실패한다. 세월호에는 음모론의 불꽃을 피워 올릴 연료가 더 많아서다.

의심은 힘이 세다. 세월호는 서해 페리호가 아니다. 교통사고가 아니라 국가 존립에 대한 질문이다. 국가가 의미를 잃었는데 해군은 뭐에 쓸 것인가? 따라서 세월호는 안보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벗어날 수 없는 의심의 덫에 걸린 것이다. 이제 다 밝힐 수밖에 없고, 중도하차는 쉽지 않다. 아마 목적지에 도착할 때면 이미 의심이 꾀하던 세상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음모론 오타쿠들은 사건의 배후에 사건을 은폐하거나 호도하는 거대한 권력조직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막후에서 움직이는 거대 권력을 중심으로 세상을 재구성한다. 이 점이 음모론과 유언비어와 다른 점이다. 변명과 꼼수로 일관하며 끝까지 버티는 대통령, 이합집산하는 여당, 우후죽순으로 일어나는 야당 모두 거대권력의 꼭두각시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의심은 본능이기에 우리는 의심한다. 의심하기에 우리는 존재하고 의심하기에 음모론도 만들어 낸다. 따라서 어느 사회건 어느 정도 음모론은 있다. 문제는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다. 사고가 아니라 아이들의 고통이다. 마음속 의심이 만든 음모론은 병이다. 마음이 치료돼야만 가라앉는다. 치료의 그 날까지 음모론 오타쿠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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