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06 16:38
조선의 임금이 군대 사열을 위해 행차할 때 머물렀던 성덕정(聖德亭)이 있던 지금의 성수동 성당 입구 모습이다. 역과 행정 지역명인 '성수'가 여기서 나왔다.

그 다음의 인재를 표현하는 글자는 뭘까. 英(영), 俊(준), 豪(호), 杰(걸 傑)이다. 이 네 글자를 각기 조합한 英俊(영준), 英豪(영호), 英傑(영걸), 俊傑(준걸), 豪俊(호준) 등이 그런 인재를 표현하는 단어들이다. 俊義(준의)라는 단어도 있는데, 그를 설명한 글에는 “재덕이 1000명을 뛰어넘으면 俊(준), 100명을 넘으면 義(의)”라고 했다. 한 사람 상대하기에도 사실은 벅찬 게 우리의 실정이다. 1000명과, 100명을 넘어선다는 일이 정말 쉽지는 않다.

아주 지혜롭고 능력도 갖춘 사람을 彦(언)이라고 적었던 예도 있다. 아울러 髦(모)라는 글자도 눈에 띈다. ‘찰랑거리는 머리털’을 의미하는 다팔머리의 새김도 있지만, 털 중에서 삐죽 튀어나온 털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빼어난 사람에게 이 글자를 붙였다고 한다. 英髦(영모), 髦俊(모준)이라는 단어가 그 예다. ‘재주’를 의미하는 才(재)라는 글자도 마찬가지다. 하늘이 내렸다고 보이는 재주를 지녔으면 天才(천재), 뛰어난 재주는 逸才(일재)다.

집을 가리키는 家(가)의 행렬도 있다. 方家(방가)라고 하면 학식과 견식이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大方之家(대방지가) 혹은 大方家(대방가)로도 적었다. “일가를 이뤘다”고 할 때의 ‘일가’는 한자로 一家다. 어떤 영역에서 커다란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음악가音樂家, 화가畵家, 작가作家 등의 단어도 같은 맥락이면서, 직업의 영역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巨匠(거장)의 匠(장)이라는 글자도 마찬가지다. 한 영역에서 깊은 성취에 이른 사람이다. 大匠(대장), 哲匠(철장), 宗匠(종장)은 학술의 영역에서 대단한 깊이를 다진 인물에게 붙이는 단어다. 그릇을 의미하는 器(기)도 있다. 국정을 잘 이끄는 능력을 지닌 인재는 國器(국기), 커다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大器(대기)와 偉器(위기) 또는 重器(중기)다. 빼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은 佳器(가기)다.

巨擘(거벽)이라는 단어는 원래 엄지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러나 후에는 매우 특별한 재주를 지닌 사람의 뜻으로 발전했다. 泰山北斗(태산북두)는 중국의 산 가운데 으뜸으로 꼽는 泰山(태산)과 별자리의 으뜸인 北斗七星(북두칠성)의 합성이다. 한 영역에서 으뜸을 차지한 사람에게 붙이는 말이다. 泰斗(태두), 山斗(산두)라고도 적는다.

執牛耳(집우이)라는 표현도 있다. 옛 중국에서 제후諸侯들이 서로 모여 연합의 서약인 맹약盟約을 맺을 때 소의 귀를 잘라 낸 피를 그릇에 담아 돌려가며 그를 마셨던 모양이다. 그 소 귀 잘라 낸 뒤의 피가 담긴 그릇은 맹약을 주도한 사람이 잡았다고 하는데, 그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래서 執牛耳(집우이)는 제후들의 맹약식인 회맹會盟의 주재자, 즉 가장 앞을 이끌고 있는 리더라는 뜻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런 풍부한 표현만큼 우리 사는 세상에는 재주를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둘러보면 내 주변에도 그런 재주를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 사회가 성장하며 발전하는 토대는 그런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고 그에 가장 맞는 자리로 안내하는 것이다. 인재가 제 자리에 가지 못하고, 오히려 최악의 자리에 내몰리면 그 사회의 미래는 어둡다.

그런 연유로 나온 성어가 적재적소適材適所다. 마땅한 인재가 그 재주를 풀어 펼칠 수 있는 마땅한 자리에 가는 일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그런 시스템이 멈췄다는 생각이 든다. 인재를 알아보기는커녕, 누가 조금 재주 있다고 생각하면 헐뜯고 짓밟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특유의 기질 때문일까. 하여간 섭섭한 일이다. 갈 곳 잃은 인재가 이러 저리 채이며 밟혀 울고 있는 사회. 우리 모습은 그렇지 않은지 진지하게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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