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
  • 입력 2017.01.11 17:39
조선시대 남한산성에서 군대 지휘를 위해 사용했던 깃발이다. 지하철 2호선 뚝섬역은 이런 깃발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이름이 다양하게 발전했던 곳이다. 뚝섬이 가장 일반적인 이름이었음은 물론이다. 살곶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가 왕위에 오른 아들 방원을 매우 미워했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벌어진 게 ‘함흥차사’라는 성어다. 태종 이방원을 만나지 않으려했던 이성계도 결국에는 함흥에서 줄곧 머물다가 서울로 돌아온다.

태종 이방원이 돌아오는 아버지 이성계를 마중하러 나왔던 곳이 지금의 뚝섬 인근이었고, 그곳에서 미운 아들 방원을 멀찌감치 봤던 이성계가 화살을 날렸다는 얘기도 잘 알려져 있다. 방원은 그 때 차일遮日을 친 기둥 뒤에 숨음으로써 아버지 이성계가 날린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이성계가 쏜 ‘화살(箭)이 차일 기둥을 꿰뚫다(串)’는 뜻에서 생긴 이름이 곧 ‘살(箭) 곶이(串)’이며, 아예 한자 이름으로는 그냥 箭串(전관)이라고도 적는다.

아주 낯선 한자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纛島(독도)다. 이 한자 이름 때문에 지금의 ‘뚝섬’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추정한다. 앞의 纛(독)이라는 글자는 커다란 깃발을 가리킨다. 주로 임금의 행렬 앞에 세우는 크고 장엄한 깃발이다. 아울러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의 대열이나 그 지휘소 앞에 세웠던 깃발이다.

앞의 성수역을 지나면서 우리는 이곳 일대가 한강과 중랑천의 흐름 때문에 생긴 너른 범람원汎濫原으로 인해 과거 조선 때에는 군대 사열, 또는 군사 훈련 등의 장소로 쓰였다는 점을 설명했다. 뚝섬에서 벌어지는 군사훈련 등을 보려는 임금의 행차를 위해 정자인 성덕정聖德亭을 지금의 성수동 자리에 지었다는 점도 말했다.

그런 임금의 행차를 알리는 깃발이 纛(독)이었고, 임금의 행렬이 자주 이곳을 찾으면서 지금 뚝섬에는 언젠가 ‘임금의 깃발이 닿는 섬’이라는 뜻의 纛島(독도)라는 한자 이름이 붙었으리라는 추정이 있다. 그런 한자 명칭은 어느새 다시 발음하기 편한 우리식의 ‘뚝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纛(독)이라는 깃발은 임금의 행렬을 알려주는 장치다. 단순한 깃발의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백과사전 등에서 채록한 그 모습을 보면 그리 단순치만은 않다. 사람을 공격하는 槍(창)이 가운데 우뚝 솟아있고, 그 주변에는 장식을 단 술이 많이 둘러져 있다. 그를 유지하는 둘레의 난간도 있다. 이를 지니고 움직일 때는 여러 사람이 필요했을 정도로 무게와 부피가 컸다.

고려와 조선 때 이 깃발은 자주 등장한다. 임금의 행차를 제외하고도, 궁중에서 벌인 의례 등에 따르는 춤에서도 이 깃발은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를 모두 이끄는 핵심 깃발이었다고 한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궁중 의례에서도 어쨌든 이 纛(독)이라는 깃발은 대열을 모두 이끄는 역할을 맡았음에 분명하다.

한자의 세계에서 ‘깃발’을 표시하는 글자는 꽤 풍부하다. 특히 이런 깃발은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옛 사회에서 벌어진 전쟁은 현대전처럼 풍부한 정보통신 기술을 사용할 수 없었다. 공격을 알릴 때는 북, 후퇴를 명령할 때는 징이나 꽹과리 등을 쳤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했던 게 바로 깃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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