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5.12.22 15:29
안후이는 중국 남북을 가르는 회수가 있어 예로부터 큰 전쟁터였다. 항우가 유방의 군대에 쫓겨 마지막 전쟁을 치렀던 해하(垓下)의 유적지 모습이다. 격렬한 전쟁터, 그로 인해 등장했던 인물들이 우리 귀에 모두 익숙한 곳이 안후이다. <안후이성 여유국>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말이 있다. 북쪽을 향해 이곳을 건너면 귤이 탱자로 변한다는 말이다. 귤이 왜 탱자로 변한다는 것일까. 생태(生態)의 환경이 바뀐다는 얘기다. 그러니 아주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다. 하나의 경계(境界)가 그어지는 곳인데, 이곳과 저곳의 식생(植生)이 달라질 정도면 그곳은 인문(人文)과 지리(地理)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경계에 해당할 것이다.

중국에서 그곳은 바로 회수(淮水)다. 중국 대륙을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흐르는 커다란 하천이 두 개 있다. 바로 북쪽의 황하(黃河)와 남쪽의 장강(長江)이다. 회수, 다른 이름으로는 회하(淮河)라고도 하는 이 하천은 황하와 장강에 비견할 수는 없으나 제법 큰 강이다. 자주 범람해 때론 재난을 불러오지만, 실제 중국이라는 대륙의 인문과 지리적인 환경을 따지자면 자못 상징적인 의미가 큰 강이다.
우선 중국 대륙의 남(南)과 북(北)이라는 경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식생(植生)의 변화마저 비교적 명확해 귤을 그 북쪽으로 가져가서 심으면 탱자로 변한다는 곳이다. 단순한 식생의 변화에서만 그쳤다면 이 지역이 지닌 상징성은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가 두고두고 살펴야 할 대목이지만 그 경계가 지닌 영향은 훨씬 더 번진다.
중국의 인문적인 환경은 이 남북의 경계로 확연하게 갈라지는 특성이 존재한다. 교통이 발달하고 통신이 지구촌 전체를 한 마을로 연결하는 오늘날의 환경에서는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인구의 이동과 정착이 때로는 생명을 건 모험에 가까웠던 과거의 환경에서는 그랬다는 말이다.
중국 문명의 새벽에는 전쟁이 다반사(茶飯事)처럼 일었다. 중국문명의 주류 역할을 담당했던 중원(中原)의 문화가 이 남북의 경계선, 회수를 본격적으로 넘기 시작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의 일이다. 중원지역에서 견고해진 문화는 남쪽을 엿보기 시작했고, 때로는 저 멀리의 북방으로부터 치고 내려오는 유목 제족(諸族)의 무서운 침략을 피해 어쩔 수 없이 남으로 도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원지역 세력이 남쪽으로 넘어오는 입구(入口)라고 해야 옳을까, 아무튼 그런 커다란 세력이 남쪽을 향해 내려올 때 거쳐야 했던 중요한 길목이 바로 이 회수 지역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늘 싸움이 붙었다. 넘어 오려는 자, 그리고 그들을 막으려는 자 사이에서의 싸움이겠다. 우리가 이번에 살피는 안후이(安徽)라는 지역은 남북이 크게 부딪히는 그런 길목에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인문적 환경을 키운 곳이다.
안후이는 장강 이남의 강남 문화권과 중원 중심의 북방 문화가 서로 접점을 형성한 곳이다. 회수 이북으로부터 장강까지 대략 남북 570㎞에 걸쳐 있고, 전체 면적은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조금 더 큰 13만9600㎢에 달한다. 인구는 2010년 현재 6800만 명에 이른다.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유광종 저, 도서출판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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