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2.16 15:35
개미와 벌꿀의 모습이다. 이솝우화에서 개미는 근면의 상징이다. 베짱이는 놀이만 좋아하다 나중에 비참해지는 운명으로 나온다. 그러나 창조의 원천은 개미보다 베짱이에서 찾을 수 있다.

‘창조경제’가 화두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도무지 모르겠다. 정부도 선전을 하지만 약발이 안 먹히니 쓰다 버린 ‘창조한국’까지 재활용한다. 문제는 창조가 아니라 창조를 강조하면서도 절대 창조와는 안 어울리는 노력, 질서, 성실 따위의 ‘개미 윤리’를 여전히 소중히 여긴다는 데 있다.

창조란 혼돈, 놀기, 쓸데없는 베짱이 짓거리에서 나온다. 따라서 부지런히 일만 하는 개미에게 집짓기나 아파트건설은 가능하지만 창조는 불가능하다. 21세기는 창조의 시대이기에 대안 없으면 남 밑 닦다 종친다. 우리에게는 상자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창조에 이를 방도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에디슨은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했다. 하찮은 99%의 노력이 아니라 1%의 영감이 소중하다는 얘기다. 영감은 99%의 노력에 빛을 비추고, 색을 입히고,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다. 문제는 성실하게 일한다고 영감이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영감은 성실한 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의 영감은 혼돈에서 온다. 혼돈은 모든 것이 뒤집히고 섞인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기존의 생각을 해체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상의 혼돈, 정신적 혼돈, 인간적 혼돈, 사회적 혼돈은 영감의 원천이다. 혼돈 안에서 뒹굴어야 창조의 빛이 떠오른다.

힘들게 1%의 영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천재다. 천재에게 힘겨운 노고란 겉보기에는 베짱이 짓이다. 쓸데없는 짓으로 보인다. 전구를 발명한 천재나, 아이 폰을 만들어낸 영감도 노는데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주장하던 인문학과 예술은 쉽게 말해 쓸데없는 짓하며 놀라는 얘기다. 문제는 일당백의 영감을 뿜어내야 할 우리네 천재는 편의점 알바, 택배기사, 대리 운전하느라 바쁘다. 창조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다. 진정으로 창조를 바란다면 얘들에게 사료 좀 주자. 공짜 모이가 아니다.

일만 하는 개미는 창조적이지 못하다. 개미 짓으로는 절대 창조에 이르지 못하지만 할 게 없으니 노력하라고 한다. 성실하라 한다. 99%가 더 중요하다 한다. 오직 노력과 성실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그들의 세상은 천편일률적인 콘크리트 아파트뿐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만 옳다고 여긴다. 자기가 노력해서 돈 벌었다고 모두 자기 것이라 우긴다. 이솝우화에서 개미는 뜨거운 여름 힘겨운 노동을 벌이지만, 그 무더위에 음악으로 활력을 준 베짱이에게 가혹했다. 예술이 주는 영감이 뭔지 모르기에 개미는 베짱이를 하찮다고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개미다. 영감도 없고 창조도 없다. 하찮은 존재다. 노는 게 여가인데 우리의 여가에 문제가 많다. 여가의 대표선수는 뭐니 뭐니 해도 관광이다. 관광이 우스워 보이는가? 관광은 자동차, 항공, 문화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는 거대산업이다. 이제는 베짱이 짓만으로도 개미보다 훨씬 더 많이 버는 세상이 온 것이다.

베짱이가 없으니 개미들만 사는 개미굴의 관광은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으며, 놀 것은 더욱 없다. 그저 찌질할 뿐이다. 개미에게 바랄 것이 아니지만, 놀지도 못하니 관광을 통해 창조적 영감이 새 나올 틈도 없다. 그렇다면 비교적 자유로운 해외관광은 어떤가?

패키지관광을 하건 개별관광을 하건 한국 개미들은 게걸스럽다. 놀러 와서 아침부터 밤까지 성실하게 보고 또 보고 또 본다. 지겹게 돌아다니고 쪽팔릴 정도로 사진을 찍어댄다. 더 구제 불능인 건 이런 변태를 자랑한다. 심지어는 관광 갈 때는 외국 가서 많이 배우고 오라며 충고도 한다. 그러면 개미들은 기가 차게도 해외에 나가서 정말로 배우려 한다.

놀러가서도 자기를 갈고, 닦고 조인다. 놀러 온 것이니 그냥 놀라고 하면 죄의식을 느낀다며 성실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구제불능이다. 마치 물 좋은 여탕에 들어가 실내 장식만 품평하는 꼴이다. 이런 탐욕스러운 성실여가로선 절대 영감을 꺼낼 수 없다. 노력과 성실이 미덕이 아니라 개미의 탐욕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네 관광이 잘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문화는 노력과 성실만 강조하는 개미 문화다. 하지만 창조 없는 앞날은 암울하다. 구제불능 개미라서 창조는 불가능하더라도 우회전술을 사용할 수 있다. 개미로 할 수 있는 제 3의 길이 있다는 말이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진딧물 농장을 가꾸기다. 진딧물은 개미가 관리하기 편하다. 많은 개미들도 하는 일이니 어렵지도 않다. 그저 개미굴이 아니라 나무나 풀에 진딧물 풀어 놓고 관리만 좀 하면 새 먹거리가 나온다. 장점으로는 하던 짓만 하면 되지만 먹거리가 전혀 예술적이지 못하고 단조롭다. 즉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니 나오는 것도 쉽다는 말이다. 그래도 아파트 건설보다 낫다.

좀 더 고차원적인 생산을 원한다면 꿀벌의 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꿀벌이라 이름표 달고 꿀벌이라 우기기가 아니라, 진짜 꿀벌 흉내 내기다. 꿀벌은 성실하게 노력하지만 개미와 달리 남에게 퍼줄 줄 안다. 요게 어려운 부분인데, 아무리 자기 것이라도 꾹 참고 조그만 나눠주자. 줄 줄 알아야 받는 것이다.

베짱이나 매미는 진딧물과 달리 덩치도 크고 날아다닐 수 있어 관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진딧물과 달리 질적으로 탁월한 예술적인 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니 눈꼴이 시리더라도 퍼주고 먹이는 것이다. 잘 먹이면 열에 하나는 좋은 보답으로 돌아와도 남는 장사다. 베짱이와 매미가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달리 말해 천재들이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 그러니 천재 먹여주고, 놀려주고, 영감으로 돌려받기가 꿀벌 흉내 내기의 요체라 하겠다.

개미를 벗어날 수 없다면, 개미가 진딧물 기르듯, 그리고 베짱이와 매미를 먹이듯 창조를 사육하는 일은 아마도 개미가 할 수 있는 가장 수익성 높은 창조 산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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