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3.04 14:03
스테이크가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그러나 언론의 호들갑, 대중의 들썩거림이 가세하는 요즘의 '맛집'에서 진정한 음식의 진미를 느끼는 일은 쉽지 않다.

점심시간이면 박 터지게 달려가던 매점에 맛있어 보이던 빵이 많았다. ‘크림빵’, ‘땅콩샌드위치’ ‘꽈배기’…. 우리는 왁자지껄하게 먹고 마시며 우정을 키웠다. 여행의 즐거움에서도 먹거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크다. 누군가는 여행을 일컬어 “장소를 옮겨 새 안주와 술을 먹고 마시는 일”이라고 한다.

노자(老子)는 “현란한 색은 눈을 멀게 하고, 요란한 음악은 귀를 멀게 하며, 자극적인 음식은 입을 마비시키기에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是以聖人爲腹不爲目)”고 했다. 이 글 읽을 때야 아무 생각 없이 “아! 그렇구나”했지만 조금 먹고 살다보니 새삼 성인의 말씀으로 다가온다.

외식문화가 발달하면서 먹거리가 다양해졌고 좀 맛있다는 곳을 찾을라치면 블로거의 영향인지 인산인해를 이룬다. 하지만 입에 들어가는 대로 ‘넣는다면’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유명 맛 집에서는 음식을 제대로 ‘즐기기’ 힘들다.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 신문을 보시던 아버지는 밥 먹을 때 딴 짓을 절대 금했다. 우리는 속으로 ‘자기는 신문 보면서!’를 외치지만 찍소리 못하고 조용히 밥그릇에 열중했다. 세상은 변하고 시절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다. 이제는 밥상에서 떠드는 게 미덕이다.

그래도 맛집을 소개할 때 시끄럽고 더럽고 냄새 나는 식당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저 밖에 줄을 선 사람들이 빨리 나가라는 듯 눈총을 주고,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왁자지껄하고, 옆에서 풍기는 진한 음식 냄새에 테이블 청소도 대충이어야 ‘정겨운’ 맛 집이라 소개한다.

유명 맛 집에서 이리저리 눈치 보고 소음에 짜증내며 ‘드셨는지’ ‘쳐 넣었는지’ 모르게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 근처에 파리 날리는 ‘맛 없는 집’에서 맛없게 꼭꼭 음식을 씹으며 불만에 가득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동물에게서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후각은 무척 중요하다. BBC의 다큐멘터리에서 유명한 홍차 감별사의 코를 막고 차를 주니 커피라고 답하는 놀라운 광경이 나온다. 맛에 냄새가 차지하는 효과가 엄청나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냄새를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그저 ‘좋다’, ‘싫다’ 거나 ‘구역질’같은 원초적인 단어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냄새는 그를 접했을 때의 추억을 불러오기도 한다.

보통 인간의 후각은 퇴화되었다고 하지만 눈과 그 기능을 나눈 것이지 퇴화는 아닌 듯하다. 우리가 개도 아닌데 멀리서 보고 알 수 있는 일에 코를 킁킁거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역시 코를 박고 판단해야 한다. 코가 얼굴을 한 가운데 있는 것은 겉보기나 미용 상의 이유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10대 남자는 예쁜 여자를 좋아하고 20대 남자도 예쁜 여자를 좋아하며 30대 남자는 당연히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40대, 50대는 물론이고 80대 남자에게 물어도 예쁜 여자가 좋다고 한다. ‘예쁜’ 것을 골라내는 것은 시각이다. 하지만 사진이 아니라 직접 대하면 선택과 차이는 코가 만든다.

혹시 별로 예쁘거나 잘생기지도 않은데 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요즘 이성을 유혹한다는 페로몬 향수까지 등장했지만 향수로는 덮을 수 없는 냄새가 있다. 눈으로는 아닐지라도 괜스레 두근거리는 가슴과 온 몸이 경직되며 배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 그리고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사랑의 열병도 바로 코에서 시작한다.

소리도 맛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소다. 비 오는 날이면 막걸리에 파전이 그립고 아이에게 쉬를 뉘일 때 우리는 “쉬”라고 소리를 낸다. 영화관에서 파는 나초는 “바삭”하다. 비 오는 소리는 파전 지지는 소리와 비슷하기에 먹고 싶은 것이고, 샤워 물 떨어지는 소리는 ‘쉬’와 비슷하기에 유사한 효과를 낳는다. 인간이 박쥐나 개보다 소리를 못 듣지만 리듬감이라는 특징을 지니기에 음악을 즐긴다. 즉 음식을 씹으며 만들어 내는 소리는 외부의 소리와 호응하면서 맛 자체를 바꾼다.

인간의 자랑인 시각은 어떠한가? 음식은 눈으로 먹는다고 할 정도로 시각은 음식의 맛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눈은 자기 맘대로 세상을 만들어내고, 잘 속고, 과장도 심하지만 눈을 믿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눈을 믿는다. 눈이 아무리 뻥이 심할지라도 우리는 아름다운 색깔의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맛은 혀가 느끼지만 우리가 느끼는 맛은 음식이 주는 향기, 색 그리고 소리가 협동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혀도 속이기 쉽지만 냄새나 빛 혹은 소리는 만들어내기 더 쉽다. 즉 요즘 즐비한 맛집은 사실 맛으로 승부하는 곳이라기보다 분위기만 잘 만들어내서 맛이 따르게 만든 곳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이런 냄새, 소리 그리고 색이 만드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면 맛없는 집이 되기도 한다.

노자가 요즘의 맛집에 가면 아마 이렇게 말했으리라. 옆에서 떠드는 소리와 음식점에 튼 멍청한 음악 그리고 주방 설거지 소리는 네 이빨에 부닥치는 소리를 바꾸고, 옆에서 풍기는 냄새는 네 입안에 퍼지는 향기를 막고, 현란한 조명은 눈으로 스며드는 군침을 교란한다.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저것’을 버리고 네 배속에 들어올 ‘이것’에 주목하라고 말이다.

언론의 장난과 대중의 호들갑으로 맛집이 싫어진다면 옆에 있는 맛없는 집에 가보라. 그러면 무엇보다 먼저 눈치 볼 필요 없이 조용히 내 음식만 가지는 향기와 색, 음식이 입술에 닿는 느낌, 혀에 묻어나는 맛, 이빨에 닿는 소리까지 즐길 수 있다. 그러다 가끔은 불만에 가득 찬 소크라테스가 되기도 하니 이 어찌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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