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04 15:58
학(鶴)의 울음소리가 자주 들렸던 곳일까. 지하철 1호선 명학이라는 곳이 그런 뜻의 이름을 지녔다. 옛 중국의 학 그림이다.

두루미가 많았고, 따라서 그 울음소리가 자주 들렸던 곳의 지명이다. 지금은 안양시 만안구에 속해 있는 행정구역으로, 옛 지명을 따라 지은 역명이다. 그 두루미가 한자로 적으면 학(鶴)이다. 그 앞에다가 ‘울음’ ‘울다’라는 새김의 명(鳴)이라는 글자를 붙였다.

예로부터 두루미, 즉 鶴(학)은 뭔가 좀 다른 새다. 새 중에서도 훌쩍 키가 크며 기품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그 鶴(학)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도교(道敎)의 여러 설정 중에서 학은 장수(長壽)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멋들어지게 그려진 소나무와 학은 그래서 동양의 웬만한 수묵화에 자주 등장한다. 둘 다 장수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 말이다.

따라서 우리말 속에서의 쓰임도 매우 긍정적이다. 우선 장수를 지칭하는 말이 학수(鶴壽)다.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말도 있다. 닭의 무리(群鷄) 속에 있는 한 마리 학(一鶴)이라는 뜻인데, 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탁월한 한 사람이라는 의미다. 원래는 ‘학립계군(鶴立鷄群)’이라고 적는데, 뜻은 마찬가지다.

우리 지명에서도 이 글자가 들어간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무학(舞鶴), 방학(放鶴), 학여울(鶴灘) 등이다. 이런 경우 의미가 다 좋다. 그 이유는 鶴(학)이라는 새가 오래전부터 삶을 의미하는 장수와 함께 신선(神仙) 또는 우아함을 자랑하는 문인(文人) 등과 어울리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학반(鶴班)이라는 말은 옛 왕조 시절에 쓰던 용어다. 문인으로 관료에 오른 사람들은 가슴과 등에 대는 흉배(胸背)에 鶴(학)을 수놓았는데, 이에 따라 鶴班(학반)은 결국 조선시대 문무(文武) 양반(兩班) 중 문인 관료인 문반(文班)을 통칭하는 이름으로 쓰였던 것이다. 학발(鶴髮)은 하얗게 센 노인의 머리를 가리킬 때 쓰던 단어다. 꼭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학수고대(鶴首苦待)’라는 말도 있다. 긴 모가지의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기다린다는 뜻이다.

鶴(학)은 거문고, 즉 금(琴)이라는 글자와도 잘 어울린다. 중국에는 ‘一琴一鶴(일금일학)’이라고 적는 성어가 있다. ‘거문고 하나와 학 한 마리’의 뜻인데, 옛날 어느 관리가 그 둘만을 지니고 거느린 채 벼슬자리에 부임했다는 일화에서 나왔다. 청렴하면서도 우아한 선비 또는 관리의 행동거지, 나아가 그런 멋까지 가리키는 말이다.

鶴(학)이 우는 소리가 곧 鶴鳴(학명)이다. 때로는 학려(鶴唳)라고도 적는다. ‘울음’, 또는 ‘울다’라는 새김의 唳(려)라는 글자가 붙었다. 학의 울음소리는 어떨까. 크고 높다. 그래서 잘 들린다. 鶴鳴(학명)이라고 적으면 우선 선비, 또는 문인과 관계가 있다. ‘학명지사(鶴鳴之士)’라고 하면 뜻을 품고 수행하는 선비, ‘학명지탄(鶴鳴之歎)’이라고 적으면 도를 이루지 못한 선비의 한탄이라는 뜻이란다.

그런데 鶴唳(학려)가 문제다. 성어의 표현으로라면 ‘풍성학려(風聲鶴唳)’다. 우리말로 풀자면 ‘바람소리 학 울음소리’다.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대규모의 군사를 이끌고 동진(東晋)을 쳤다가 실패한 뒤 거꾸로 쫓기는 상황에서 나왔다. 급히 쫓기던 전진의 병사들은 바람 소리, 학 울음소리에도 적군인줄 알고 공포에 빠졌다는 얘기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내용이다. 불리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평범한 사물이나 상황에서도 소스라치게 놀람을 가리킨다.

초목개병(草木皆兵), 즉 풀과 나무가 모두 병사들처럼 보인다는 뜻의 성어는 그 뒤에 붙는다. 역시 쫓기던 전진의 병사들이 ‘바람 소리와 학 울음소리에 모두 놀라다가 풀과 나무만 보고서도 적군으로 알고 기겁한다’는 내용이다. 그를 한데 붙여서 쓰면 ‘風聲鶴唳, 草木皆兵(풍성학려, 초목개병)’이다.

살풍경(殺風景)이라는 말이 있다. 주변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주 이상해서 기괴하다 싶을 정도의 행위 또는 모습 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 살풍경을 묘사하는 성어의 하나가 바로 ‘분금자학(焚琴煮鶴)’이다. 문인 또는 선비의 우아한 풍류를 상징하는 거문고와 학을 불사르고(焚) 삶으니(煮) 얼마나 경악할 만한 일일까. 그래서 살풍경의 하나로 꼽는다는 얘기다.

울다, 울음소리 등을 나타내는 鳴(명)이라는 글자는 우리와 멀지 않다. 아침잠에서 일어나기 위해 머리맡에 두는 시계를 우리는 자명종(自鳴鐘)이라고 한다. 스스로(自) 울리는(鳴) 시계 또는 종(鐘)이라는 뜻이다. 여러 사람이 자신의 사상을 다투어 쏟아내는 것을 우리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활발한 사상적 경합을 일컫는 말이다. 다투어 쏟아내는 목소리를 새가 서로 경쟁하듯 울어댄다는 뜻에서 鳴(명)으로 적었다.

귀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경우를 우리는 이명(耳鳴)이라고 부른다. 옛 전쟁터에서 소리를 내는 화살을 쏘아 올림으로써 공격 등의 신호로 삼았는데, 그 소리 나는 화살이 명적(鳴鏑)이다. 슬픔에 겨워 내는 울음소리가 바로 비명(悲鳴)이다. 손 하나로는 소리를 낼 수 없으니, 박수라도 치려면 두 손을 다 써야 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의 성어가 그래서 나왔다. 한(孤) 손바닥(掌)으로는 소리를 내기(鳴)가 어렵다(難)는 식의 구성이다.

닭이 울음 우는 것을 계명(鷄鳴)이라고 한다.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성어가 있는데, 춘추전국시대에 많은 식객을 거느렸던 맹상군(孟嘗君)이 닭 울음소리 흉내를 잘 내는 식객, 개처럼 민첩한 도둑질의 재주를 지닌 식객의 도움을 받았다는 스토리에서 나왔다.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잔재주를 가리키기도 한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란 말도 있다. 커다란 태산(泰山)이 쩌르르 울릴(鳴動) 정도로 소란스러웠는데, 겨우 쥐(鼠) 한(一) 마리(匹)가 주인공이었다는 얘기. 온갖 호들갑을 다 떨고 있지만 그 본질은 아무것도 아닌 상황을 가리킨다. 명고(鳴鼓)는 북(鼓)을 울리다(鳴)는 뜻이다. 옛 전쟁터에서는 공격 때 북을 울리고, 후퇴를 명령할 때는 징을 쳤다. 따라서 鳴鼓(명고)는 공격의 신호를 가리킨다.

함께 느끼는 일, 한자로 적으면 공명(共鳴)이다. 같은 목소리, 같은 감정, 같은 사고 등을 지녀 울림을 함께 하는 경우다. 공감(共感)이라고 적어도 마찬가지의 의미다. 남들과 함께 어울려 멋지게, 조화롭게 사는 일이다. 그 울림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은 사회다. 공명해서 공감의 영역을 크게 넓히는 일, 울림의 鳴(명)은 그 점에서 눈여겨볼 한자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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