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07 15:29
맑은 물을 안고 있는 우물의 모습이다. 지하철 1호선 금정역은 우물이 많아 사람들 옷깃이 잘 적셔졌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이름이다.

옷깃 또는 옷의 앞자락에 대는 섶을 가리키는 한자가 衿(금)이다. 옷깃은 목의 둘레에 대는 헝겊을 가리킨다. 옷섶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깃 아래 부분에 매다는 헝겊이다. 따라서 옷깃과 옷섶은 결국 목 주위, 또는 상의의 앞부분 등을 지칭한다.

뒤의 글자 井(정)은 우물을 뜻한다. 물을 긷는 우물은 요즘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과거 상수도(上水道) 시설이 변변찮았던 시절에는 여간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을 얻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衿井(금정)은 우선 이곳에 우물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실제 지명 사전 등을 훑어보면 이 지역은 땅을 파면 쉽게 물이 나와 많은 우물이 들어섰던 듯하다. 그런 우물에서 물을 긷다가 옷섶이 적셔지는 경우도 많아 옷깃, 또는 옷섶을 뜻하는 衿(금)에 우물이라는 뜻의 井(정)을 붙여 지명으로 자리 잡았다는 해석이다.

옷깃을 의미하는 다른 글자가 또 있다. 襟(금)이다. 우리는 흔히 금도(襟度)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옷깃에 관한 법도(法度)를 의미한다. 따라서 예의와 범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금도를 잘 지켜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켜야 할 예의와 범절을 잘 새기라는 충고다. 이 襟(금)과 금정역의 衿(금)은 서로 통용되는 글자다.

아울러 옷깃이나 옷섶 모두 옷의 일부를 가리키지만, 사실 그 둘은 옷의 중요한 부분을 의미하기도 한다. 목둘레에 대는 깃이나, 그런 깃의 앞부분을 지칭하는 섶을 남에게 잡히면 아주 곤란해진다. 옷깃이 상대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멱살을 잡히는 효과와 같으니 잡힌 쪽에서는 몸을 함부로 움직이기가 어렵다. 섶을 잡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중요한 부분을 잡혔으니 자칫 옴짝달싹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래서 금후(衿喉) 또는 후금(喉衿)이라는 말이 나왔다. 옷깃(衿)과 목 또는 목구멍(喉)은 사람에게 중요한 부분이다. 이곳을 잡히면 그야말로 꼼짝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아주 중요하게 해를 미칠 수 있는 요해(要害)의 부분이다. 금요(衿要)라는 단어도 그와 같은 뜻이다. 청금(靑衿)이라는 단어도 있다. 유생(儒生)들이 입던 푸른 깃의 도포를 가리킨다.

우물을 뜻하는 井(정)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단어다. ‘시청(市廳)’ 편에서 이미 일부 내용을 소개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 즉 정저지와(井底之蛙)는 세상 물정 모르고 좁은 우물 바닥에서 세상을 보는 식견이 부족한 사람을 가리킨다. 우물(井) 바닥(底)의(之) 개구리(蛙)라는 구성이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은 우물(井)에 앉아(坐) 하늘(天)을 본다(觀)는 뜻이다. 좁은 우물 구멍으로 보는 하늘은 얼마나 좁은가. 우물 바닥의 개구리나, 그 안에서 보이는 하늘이 하늘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은 똑같다. 다 어리석고 식견이 좁다.

밭을 아홉으로 나눠 가운데를 서로 공유하는 밭, 즉 공전(公田)으로 만들어 운영한 정전(井田)제도는 우물과 상관없지만 글자 모양새를 따온 경우다. 그런 井田(정전)은 구획이 가지런하다. 따라서 그렇게 구획 등이 가지런한 모습을 한자로는 井然(정연)으로 적는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그런 장소는 대개 우물이 있다고 해서 만들어진 말이 시정(市井)이다. 이제는 저잣거리, 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가리킨다.

광정(鑛井)은 땅 밑으로 파는 광산을 가리킨다. 또 광산의 구덩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우물처럼 파 들어가는 광산의 지칭이다. 광산을 파 내려갈 때 옆으로, 또는 수직으로 파는 여러 형태의 구덩이도 鑛井(광정)으로 적는다. 중국에서는 背井(배정)이라는 단어도 자주 쓴다. 여기서 背(배)는 ‘등’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니라, ‘등을 돌리다’의 동사적 의미다.

우물에 등을 돌린다? 고향 마을의 우물을 등지고 그곳을 떠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성어 형태는 背井離鄕(배정리향)이다. 마을의 우물에 등을 돌린 채 고향을 떠난다는 뜻이다. 전란과 재난을 피해 정든 고향마을을 떠나는 슬픔을 나타내는 말이다.

위기에 빠진 사람 못 본 체하는 짓도 괘씸하지만 더 나쁜 경우는 그런 사람에게 곤란함을 덧대는 일이다.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 던지는 경우가 그런데, 그를 한자 성어로는 落井下石(낙정하석)이라고 한다. 놀부의 심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을 물 안으로 더 밀어 넣는 행위다.

옷깃 적시는 우물이 많았던 동네가 금정이다. 우물은 사람 살리는 물을 간직한 성스러운 곳. 사람 살리는 우물 깊은 곳에서 차가우며 맑은 물을 길어 올려 먼 길 다니는 나그네의 목마름을 채워줄 일이다. 우물가에서 사람 사는 정리(情理)를 깨달을 일이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맑고 차가운 우물의 물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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