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3.21 14:06
구한말에 촬영한 수원 성내 모습이다. 수원의 원래 고유 이름은 '매홀'이었다고 한다. 물이 풍부하고 너른 벌판이 발달해 예로부터 땅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불붙었던 곳이다.

고유지명은 ‘매홀’이었다고 한다. 신라와 백제, 고구려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삼국시대 무렵에는 적어도 그렇게 불렸던 모양이다. 그 ‘매홀’이라는 순우리말 지명에 표기할 글자가 없어 한자로는 買忽(매홀)로 적었다고 하는데, ‘매홀’의 의미는 ‘물 고을’이었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추정이다.

지금의 한자로 정착하는 시기는 고려로 알려져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지명을 한자로 많이 바꿨던 모양이다. 그때 한산주(漢山州)에 편입했다가 다시 한주(漢州) 소속의 수성군(水城郡), 고려에 들어서서는 수주(水州)에 이어 마침내 지금의 水原(수원)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곳 수원에는 물이 많았던 듯하다. 지금도 이 일대에는 이런저런 하천(河川)이 제법 많다. 물이 풍부하니 사람이 살기 좋았던 곳이었을 테고, 거기다가 가로지른 험악한 산악이 많지 않으니 교통도 좋았다. 그래서 수원은 경기도의 으뜸 도시다. 이곳에 지은 옛 조선의 궁성은 너무나도 유명한 화성(華城)이고, 그에 관한 간단한 소개는 앞 장의 ‘화서(華西)’ 편에서 적었다.

물을 가리키는 한자가 水(수)다. 이에 관한 단어 조합은 무수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다. 사람의 생활이 이 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그러할 수밖에 없다. 물이 일으키는 힘이 수력(水力)이니 이로써 전기를 생산하면 수력발전(水力發電)이다. 이렇게 물로써 얻는 이로움을 우리는 수리(水利)라고 하는데, 하천 등을 활용한 시설을 우리는 수리시설(水利施設)이라고 한다.

하천이나 강, 또는 호수의 소금기 없는 물을 우리는 담수(淡水)라고 부른다. 소금기 많은 바닷물은 해수(海水)다. 땅 밑의 물은 지하수(地下水), 샘으로 솟아오르는 물은 천수(泉水), 그렇게 흘러나와 땅 위를 흐르면 하천(河川)을 이루고 한 곳에 모여 제법 큰 물을 이루면 호수(湖水)다.

그렇게 물의 명칭은 아주 많다. 그래도 대표적인 게 강(江)과 하(河)다. 한반도의 큰 하천은 대개 ‘강’으로 불리지만, 중국에서는 ‘河(하)’도 많이 쓴다. 원래 이 강하(江河)는 구별이 가능했다. 북부를 흐르는 하천을 중국에서는 ‘河(하)’라고 적었고, 남부를 흐르는 하천을 ‘江(강)’이라고 적는 게 보통이었다.

북부의 ‘河(하)’는 원래 황하(黃河)를 이르는 글자라고 했다. 중국 대륙의 2대 하천이 바로 黃河(황하)와 長江(장강)이다. 북부 하천의 대표적인 스타가 黃河(황하)이다 보니 그 지류(支流)에도 보통 河(하)의 글자를 붙여 북부 지역의 하계(河系)에는 대개 이 글자를 붙였다는 설명이다. 물론 중국 최북단인 헤이룽장(黑龍江)성의 黑龍江(흑룡강), 松花江(송화강) 등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다.

그에 비해 남부의 대표적인 하천은 長江(장강)이고, 그 지류 또는 남부 지역의 웬만한 큰 하천에도 결국 江(강)이라는 글자가 붙었다는 얘기다. 한반도의 하천은 대개 이 글자를 쓴다. 한강(漢江)이 그렇고 낙동강(洛東江), 압록강(鴨綠江), 두만강(豆滿江), 청천강(靑川江) 등이 다 그렇다.

江(강)이나 河(하)나 모두 큰 물을 가리킨다. 샘에서 솟은 작은 물줄기가 계곡을 지나면서 조그만 물흐름인 계수(溪水)를 이루고, 이는 다시 그보다 큰 물줄기인 하천(河川)을 형성한다. 그 하천의 물이 여럿 모여들면서 江(강)이나 河(하)를 만들다가 결국 거대한 물의 모임인 바다를 이룬다.

그래서 강이나 바다처럼 큰 물을 하해(河海)라고 적는다. 따라서 河海(하해)는 그저 강이나 바다를 이르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대함’ ‘매우 큼’의 의미를 얻는다. 누가, 또는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 결국 그 커다란 경지에 도달할까. 그에 관해서는 일찌감치 전해지는 말이 있다.

진시황(秦始皇)을 도와 중국 전역을 제패한 인물 이사(李斯 BC 284~208년)의 명언이다. 그는 진시황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라는 내용의 ‘축객령(逐客令)’을 내리자 그를 제지하는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린다. 그 안에 이런 말이 등장한다.

 

“태산은 다른 곳의 흙을 물리치지 않아 그 거대함을 이루었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를 마다하지 않아 그 깊음을 이루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이 말을 한 이사라는 인물도 장하지만, 그 말이 함축한 ‘포용(包容)’과 ‘관용(寬容)’의 의미를 알아 결국 그가 올린 간언을 받아들여 자신이 내린 ‘축객령’을 철회한 진시황도 장하다. 잠시나마 외부의 요소를 배제한 채 속 좁은 길로 갈 뻔했던 진시황의 배타적 정책은 그로써 멈췄고, 진나라는 마침내 중국 전역의 통일이라는 거대한 판도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가득 찬 곳에서 빈 곳으로 향한다. 그런 물은 자연의 섭리를 말해주고 있으며, 그 물의 흐름에서 손자(孫子)는 남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에 관한 사색, 즉 병법(兵法)의 체계를 완성한다. 그런 물이 거대하고 웅장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사의 말처럼 ‘작은 물줄기를 마다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그런 태도가 위의 인용문에서 나온 ‘不擇細流(불택세류)’다. 작은(細) 물줄기(流)를 가리지(擇) 않는다(不)는 구조다. 그런 물, 즉 水(수)에 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정도로 많다.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水原(수원)이라는 이름의 다음을 이루는 글자인 原(원)은 ‘들판’ ‘벌판’ ‘들녘’을 가리킨다. 풀 가득한 벌판을 우리는 초원(草原)이라고 한다. 그저 평평한 들은 평원(平原)이다. 해발이 높은 곳에 들어선 벌판을 우리는 고원(高原)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눈이 가득하면? 그게 바로 설원(雪原)이다. 서울 지명 중 노원구의 ‘노원(蘆原)’은 갈대와 억새 등이 가득한 벌판이라는 뜻이다.

가을이나 겨울이 닥쳐서 벌판의 수많은 풀들이 말랐을 때 그곳에 작은 불씨 하나 댕기면 벌판은 거대한 불판으로 변한다. 중국인들은 그런 정황을 ‘星火燎原(성화료원)’이라는 성어로 적는다. 저 하늘의 아주 작게 보이는 별(星)과 같은 불(火)이 벌판을(原) 태운다(燎)는 구성이다. 중국어라고만 치부하지 말자. 우리도 이 말 잘 쓴다. “요원(燎原)의 불길처럼…”이라고 말하는 경우다. 여기서 ‘요원’은 ‘들판 전체를 태울 듯한’의 형용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함부로 막아서기 어려운 거세고 맹렬한 기세(氣勢)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이 原(원)은 나무의 뿌리와 샘의 바닥인 ‘근원(根源)’이라는 말과도 통한다. 따라서 原(원)은 물의 원천(源泉)을 가리키는 源(원)과 통하는 글자다. 따라서 ‘벌판’이라는 의미 외의 다른 중요한 뜻은 ‘근본(根本)’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래(原來)’라는 말을 자주 쓴다. ‘본모습 그대로’라는 의미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나오는 죄, 기독교의 그런 주장을 우리는 원죄(原罪)라고 적는다. 가공하지 않은 본래의 모습이 원형(原形), 남의 손을 거치지 않은 필자의 진짜 글이 원문(原文) 또는 원고(原稿) 및 원작(原作), 본래대로의 그 상태를 원초(原初), 처음의 그 모습을 원시(原始) 등으로 적는다.

그러고 보니 水原(수원)은 이름이 매우 훌륭한 동네다. 우선 水(수)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 세상의 모든 삶 속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가리킨다. 原(원)은 뿌리와 샘의 바닥, 나아가 존재의 근원이라는 의미까지 품는 글자이니 그렇다. ‘매홀’이 곧 ‘물 고을’이고, 그 물의 고을이 한자로는 水原(수원)이리라. 모두 ‘바탕’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水原(수원)은 그냥 지나칠 동네가 아니다.

<지하철 한자 여행 1호선>, 유광종 저, 책밭, 2014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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