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4.21 10:43
음식과 조리, 그 안에 담긴 행복의 상관관계를 잘 묘사한 영화 '쉐프'의 포스터. 요리를 다루는 먹는 방송, '먹방'이 요즘 큰 유행이다.

식당을 소개하거나 음식을 조리해 먹는 방송이 대세다. TV 어느 채널을 돌려도 온통 ‘먹방’이다. 프랑스 평론가는 이런 먹방을 포르노라고 비꼬았다. 보통 포르노라 함은 남녀의 정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소설이나 그림 혹은 동영상을 말한다. 먹방 역시 육체적인 욕망을 시각적으로 여과 없이 드러내기에 포르노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포르노그래피’라는 말은 재미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익히 들어서 쉬워 보이지만 원래 고전 그리스의 ‘창녀’를 뜻하는 포르노와 ‘그리다’는 그래피의 조어다. 서양에서 그리스와 로마는 근엄한 규범의 원천이었다. 그러다 서기 79년에 베수비오 화산 분화로 통째로 묻힌 폼페이라는 도시를 발굴하면서 사태는 심각해졌다.

문고리는 남근 모양이요, 집안의 벽화는 온통 섹스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근엄한 ‘고전’을 기대하던 유럽인들은 당황했다. 출토된 유물들을 공개할 수 없어 나폴리 박물관에 비밀 방을 만들어 감췄다. 하지만 유물이 쌓여감에 따라 연구의 필요가 생겨 꽁꽁 숨겨뒀던 유물을 제한적으로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연구한 학자들은 유물의 정밀한 그림을 그린 뒤 해설을 붙였다. 포르노그래피란 바로 이 학문인 것이다.

학문 연구와 더불어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자 포르노를 금지하는 법이 생긴다. 이 법령에서 ‘포르노그래피’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신조어라 사람들이 호기심을 느꼈다. 금지를 위해서는 ‘포르노’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는데,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궁금증은 더해갔다. 즉 포르노는 금지법 때문에 유행을 탄 단어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포르노를 소설로 만들어 냈다. 그들은 왕과 왕비의 섹스 스캔들을 포르노 소설로 각색했다. 하늘처럼 높았던 존재, 왕과 왕비는 빨간 마분지를 두른 책 속에서 헐떡거리는 개로 변하고 말았다. 더 이상 신으로부터 왕권을 받은 신성한 존재가 아니었다. 소설은 백성이 우러러 마지않았던 고귀한 왕과 왕비가 사실은 발정난 개라고 지적했다. 왕권 타도를 외친 프랑스 혁명의 뒤에는 바로 이 포르노 소설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유구한 포르노 전통을 갖는 문화강국이었다. 역사적 자료는 부족하지만 삼국시대부터 상당했던 듯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많은 부분을 포르노로 각색해도 좋을 만큼 환상적이다. 김만중(金萬重)이 지은 고전소설 <구운몽(九雲夢)>도 8명의 선녀와 희롱하는 판타지 하렘(harem)물이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춘향이 노는 장면은 청소년 포르노다. 이들 모두 소설이다. 그림에서 한국 포르노를 집대성하고 완성한 화가는 신윤복이다. 그는 춘화(春畫)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거장이었다.

포르노에 대한 비난의 대부분은 비도덕적이고 동물적이며 말초적이어서 문화적이지 못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모두 모함일 뿐이다. 포르노가 비도덕적이라고 할 근거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인간의 감각세포는 중추신경만 모인 뇌가 아닌 한 숨을 쉬건, 책을 읽건, 악수를 하건 모두 말초감각이다. 따라서 '말초적'이라는 비난은 무식의 소치다. 문화적인 비판 역시 온당치 못하다. 프랑스 포르노 역사에서 알 수 있듯 글을 읽고 미술품을 감상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단순히 옷을 벗었다고 동물이라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음식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은 공교롭게도 요리책의 나라다. 먹방도 영국이 대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쉐프이자 진행자인 제이미 올리버, 고든 램지 모두 영국인이다. 먹방을 포르노라고 한 프랑스 평론가의 의중에는 끔찍하게 맛없는 음식을 먹고 살면서 눈으로만 TV에 나오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탐닉하는 영국인을 향한 비아냥거림이 담겼다.

영국 먹방 뿐 아니라 우리 먹방도 포르노와 상당히 유사하다. 평소의 식생활과 상관없이 TV에 등장하는 욕망의 대상을 눈으로만 게걸스럽게 좇는다. 모든 요리 과정과 먹는 모습 역시 포르노와 다를 바 없다. 현란한 색채, 침을 삼키게 하는 소리, 그리고 입으로 내뱉는 감탄도 마찬가지다. 육체적인 욕망을 시각적으로 여과 없이 드러낸다는 면에서 남녀의 섹스와 다름없다. 프랑스 평론가의 말대로 우리는 홍수처럼 밀려드는 새로운 포르노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포르노를 반대한다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오늘도 먹방 포르노에 열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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