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4.22 16:13
한(漢)의 무제(武帝)가 깊이 사랑했던 여인 이부인(李夫人)의 상이다. 미녀를 뜻하는 '절세 가인'이라는 말,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성어가 이 둘의 스토리에서 번졌다.

가좌리(佳佐里)와 어릉리(魚陵里)에서 한 글자씩을 따와서 만든 동네 이름이자, 역명이라는 설명이다. 가좌리의 원래 이름은 가재울이었다는 추정도 있다. 가재가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마을이어서 원래 그곳에 정말 가재가 많았다면 가재울이라는 고유명사가 듣기에도, 부르기에도 좋으련만 이제는 그냥 없어진 이름이다.

여기서는 곱다, 예쁘다는 뜻의 佳(가)라는 글자에 주목하기로 하자. 이 글자 자주 등장한다. 여인의 고운 자태를 이야기할 때 말이다. 우선은 가인(佳人)이다. ‘아름다운 사람’ ‘고운 사람’쯤으로 풀 수 있는 단어다. 남자에게는 쓰지 않고, 대개는 여인에게만 사용한다.

이 단어가 등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인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이야기다. 황제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악사(樂師)로 이연년(李延年)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사실 그는 빼어난 ‘광고 기획자’였다. 자신의 동생을 황제에게 광고하는 역할을 맡았으니 그렇다.

그의 누이동생은 인물이 ‘짱’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동생이 결혼생활에 실패한 뒤 실의에 빠져 혼자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연년은 ‘황제에게 동생을 시집 보낸다면…?’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황제에게 들려줄 노래와 노랫말을 지었다.

 

“북녘에 아름다운 이 있으니, 세상과 떨어져 혼자 있네. 한 번 뒤를 돌아보면 성이 무너져요, 두 번 돌아보니 나라가 무너지네…(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뜬금없이 부르는 그의 노래에 황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뭐? 정말 그런 여인이 있어!’라며 놀랐겠지. 돌아보는 행위로만 성이 무너지고, 나라가 허물어지니 안 그럴 텐가. 결국 무제는 그 동생을 데리고 오게 한다. 황제는 결국 그녀에게 홀딱 반하고 만다.

스토리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무제의 후궁 자리를 얻어 ‘이부인(李夫人)’으로 불렸던 그녀는 결국 병을 앓다가 일찍 죽는다. 죽기 전에 얼굴 한 번이라도 보자며 찾아간 무제의 요청을 냉정히 거절하고서 말이다. 고왔던 얼굴이 망가져 그 추한 모습을 황제에게 결코 보일 수 없다면서 고집을 피웠던 것이다. 결국 무제는 생전의 그녀 요청에 따라 자식과 오빠를 잘 돌봐주지만 이부인을 향한 그리움은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佳(가)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단어 조합은 적지 않다. 아름다운 계절을 가절(佳節), 좋은 작품을 가작(佳作)이라고 하는 식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성어로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 있다. 점점(漸) 들어갈수록(入) 재미난(佳) 경우(境)라는 엮음이다. 원래는 동진(東晋) 때의 유명화가 고개지(顧愷之)의 일화에서 나왔다.

그는 사탕수수를 가지 끝에서 시작해 뿌리로 향하면서 먹었다. 뿌리 쪽을 향할수록 단맛이 더한 게 사탕수수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고개지가 대답했다는 말이 바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먹을수록 더 단맛이 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를 사탕수수가 등장하는 글자 蔗(자)를 써서 蔗境(자경)으로도 적는다. 우리는 때로 이를 상황이 점점 더 요지경(瑤池鏡)으로 흐르는 것을 비꼴 때 쓴다. 그러나 단맛이 더하면 좋은 법이다. 佳境(가경)과 蔗境(자경)이 우리 생활에 줄곧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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