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6.04.25 15:11

지난 4월 총선 전까지만 해도 구조조정에 크게 관심이 없던 정치권이 갑자기 ‘구조조정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을 돕는 이른바 원샷법(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과 가장 신속한 구조조정 제도 중 하나인 워크아웃(기업재무개선)의 근거법인 기입구조조정촉진법의 통과를 두고 극심한 정쟁을 벌이던 여야의 표정이 갑자기 변한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저마다 ‘경제 정당’을 표방하며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당초 경제민주화를 대표 정책으로 내걸던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기업이 살아나고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 한 다음 대선에서 주도권을 잡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제3당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국민의당도 연일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건다. 야권의 협조가 반갑다며 환영 입장을 보이는 새누리당은 자칫 경제 정당의 이미지를 빼앗길까봐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오히려 우려를 표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경쟁력과 재무 상태를 정상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기업의 내부 사정과 업계 현황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자칫 정치권이 사사건건 개입하게 되면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원칙만 제시하고 최대한 채권단과 기업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올바른 구조조정 해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정치권 눈치 보느라 늦어진 구조조정 

이미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된 5대 업종 중 해운·조선·철강은 수주가 격감하고 적자가 쌓인 지 오래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떠안아야 할 조선·해운업종 부실기업 위험노출액(대출·보증·회사채 포함)은 이달 말 2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10조원에 육박했던 국내 철강업체 영업이익 총량은 지난 2014년 4조1000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그렇다면 이미 2010년대에 들어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웠음에도 불구하고 왜 당국은 수수방관했을까. 결국 구조조정의 키를 쥐고 있는 국책은행이나 시중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금융당국은 또 다시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 동안 부실 기업에 대한 채권은행의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오면,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정무위원회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으로 달려가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대규모 실업, 지역경제 침체 등이 우려된다며 정치적 논리를 들이댄 것이다. 구조조정의 최후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가 총선을 앞두고 숨죽이고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금융당국이 채권은행의 자율성을 존중하지 않고 ‘백화점식’ 요구 사항을 나열해 채권은행의 힘이 빠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당국은 당초 산업은행으로 하여금 4조2000억원의 자금 수혈을 해 대우조선해양 살리기에 방점을 두는 방향으로 갔다. 그러다 갑자기 금융당국은 채권은행들의 재무 건전성을 살피겠다고 나섰다. 서로 상충하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요구하고 나서는 금융당국이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최대한 논란과 비판을 피하려는 금융당국의 ‘보신주의’가 일관성 있는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채권은행과 기업에서 나온다. 

◆ 벌써부터 사공 많아져...정부·정치권은 원칙만 제시해라

구조조정의 지연 책임이 정치권의 거센 입김 때문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구조조정을 둘러싼 ‘감 놔라 배 놔라’는 또 다시 재연되고 있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견이 없지만 각론에서는 이미 파열음이 나오고 있어서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가 인력감축이다. 규모는 다를 수 있어도 기본적으로 구조조정은 특정 사업부를 없애거나 계열사를 정리하는 과정이므로 집단 해고가 불가피하다. 야권에서는 벌써부터 해고를 동반한 구조조정은 최소화해야 한다며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를 구조조정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본질을 흐리고 있다. 새누리당도 해고에 대한 방지책이 사전에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순수한 의미의 인력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이 가능할지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구조조정에 들어갈 비용과 관련해서도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논의를 더디게 할 우려가 있다. 특히 야권은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한 기업 회생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는 과표구간 500억원 이상의 법인세를 22%에서 25%로 상향조정하고, 거기서 마련되는 재원을 구조조정에 써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은 "법인세와 구조조정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자충수이자 자살골"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지금까지 정치권 입김에 휘둘려 구조조정을 미뤄온 금융당국이 과연 주도권을 잡고 구조조정을 추진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정치권은 구조조정과 관련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금융당국 역시 원칙을 제시하고 채권은행과 해당 기업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존중해야 가장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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