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숙영 기자
  • 입력 2021.08.16 05:30

김태기 "관변단체 축소·행정단위 통합 절실…'낭비하지 않는 정부', '할 일 하는 정부' 필요"

경북도는 지난 18일 도청 화백당에서 경북소방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내기 소방공무원 170명에 대한 임용장 수여식을 가졌다. (사진제공=경북도)
경북도는 지난해 도청 화백당에서 경북소방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내기 소방공무원 170명에 대한 임용장 수여식을 가졌다. (사진제공=경북도)

[뉴스웍스=이숙영 기자] 지난 1981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를 필두로 집권한 그리스 좌파 정권은 공무원을 대폭 증원했다. 집권 초반인 1980년대 초 그리스의 공공부문 고용인원은 약 30만명이었으나, 지난 2010년 그리스가 국가부도로 구제 금융을 받을 당시 집계된 공무원의 수는 약 77만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스 집권당이 공공부문의 규모를 키우는 동안 그리스의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크게 상승했다.  파판드레우 총리 집권 초반 22.5%였던 국가 채무 비율은 집권 3년 만에 33.6%로 뛰었고, 12년 뒤인 1993년엔 100.3%로 치솟아 결국 부도에 다다랐다.  

비단 그리스 만의 얘기가 아니다. 공공부문이 비대했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PIGS 4개국'은 2012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적자를 겪어야 했다.

일명 '공무원의 천국'으로 불리던 프랑스도 지나치게 비대해진 공공부문으로 인해 재정 문제를 겪었다. 프랑스의 공무원 조직은 2019년 기준 노동인구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하다. 프랑스 공무원은 법적으로 주 35시간을 일하고 연 5주의 유급휴가를 보장받는데, 이들 중 약 3분의 1은 추가 유급휴가를 남발해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취임 후 대대적인 공공부문 감축에 나섰고 4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는 점차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공부문 비대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공공부문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부문으로 정부의 투자, 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 및 운영되는 기관을 말한다.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정한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등이 포함된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약으로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내세웠다. 소방·경찰 등 공무원 17만4000명, 사회복지 등 공공기관 인력 34만명, 공공부문 직고용 전환 등으로 30만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부터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공무원 재직자와 공공기관 임직원이 총 22만605명 증가했다. 직전 정부인 박근혜 정부에서 10만8185명, 이명박 정부에서 5만7132명에 증가한 것에 비해 큰 폭으로 늘었다. 

공공부문 종사자 수 및 공공부문·500대 기업 인건비 현황 (자료=송언석 의원실 기반)
공공부문 종사자 수 및 공공부문·500대 기업 인건비 현황 (자료제공=송언석 의원실)

◆9급 공무원 초봉, 중소기업 사원 평균 임금과 같아…야근비 계산하면 더 많이 받아

정부의 공공부문 늘리기 정책 아래 청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공공부문 취업에 매달리고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시대,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러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유명 강사 인터넷 강의 듣기로 몰려들고 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해 공무원 9급 1호봉의 월평균 보수(봉급+공통수당)는 약 209만원이다. 공통수당에는 정근수당, 관리업무수당 등은 포함되고 초과근무수당, 특수업무수당 등은 제외된다. 채용 플랫폼 잡코리아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사원의 평균 연봉은 2800만원으로 실수령액을 계산해보면 약 209만원이다. 

지난 2019년 인크루트의 '초과근무수당 제도' 조사에 따르면 초과근무수당 규정 준수율은 공공기관의 경우 80%를 기록해 비교적 잘 지켜지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중소기업은 준수율은 43% 그쳐 초과근무에 대한 수당 지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3년간 서울 소재 민간 기업에서 일하다가 지난해부터 7급 공무원을 준비하기 시작한 29세 공시생 A씨는 "적어도 야근을 하면 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자 공무원을 준비하게 됐다"며 "마침 공무원을 많이 뽑는 시기라고 생각돼 기회라고 느껴 퇴사하고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임기가 보장되면서 대우도 좋은 공기업은 '꿈의 기업'이 됐다. 2021년 기준 공기업 신입사원 초임 기준 연봉 순위 1위는 한국연구재단으로 4900만원을 넘어섰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공기업이 각각 4800만원, 4700만원대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4600만원대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외에도 한국가스공사 등 16개 기업의 초봉도 4000만원 이상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청년뿐 아니라 은퇴한 중장년층도 공공부문 채용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7월 말 경상남도가 발표한 지방공무원 임용시험#공기어 결과에 따르면 전체 합격자의 62.8%가 20대로 주를 이뤘지만, 40대 이상도 5.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최고령 합격자는 58세였다. 62년생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행정고시 29회 합격해 공직생활을 경험했던 전직 관료가 7급 공채 신입직원으로 국세청에 입사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40년간 언론계에 몸담은 신문사 국장 출신인 김찬석 씨는 지난 2017년 12월 늦깎이 9급 공무원이 돼 곧 정년을 앞두고 있다.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김 씨는 "공무원 시험을 처음부터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60여개 복지시설에 원서를 넣었으나 한 군데도 안 됐다"며 공무원 시험을 보게 된 계기를 밝혔다. 

공무원 정년은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직 정년은 만 60세로 50대 후반에 공무원이 된다면 5년 안에 퇴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수명 100세 시대에 구조조정 등으로 일할 곳을 잃은 중장년층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중장년층 공무원이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에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안 되면 자영업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현재는 자영업 시장이 붕괴가 되며 중장년층이 갈 곳을 잃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정훈 씨가 국사 과목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정훈 씨가 국사 과목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박지훈 기자)

◆늘어난 관변단체…작은 정부 보다 '돈 낭비 안 하는 정부' 필요

공공기관의 운영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뤄지며 인건비 또한 국민이 지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공부문이 비대화 될수록 국가 재정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국민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김태기 교수는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위해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기업 등에 투자할 돈이나 개인이 투자할 돈을 줄이는 행위"라며 "민간에서 하고 있던 일이 공공기관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OECD 국가에서 공공부문 일자리가 100개 늘어나면 민간기업은 150개로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송언석 무소속 의원(경북 김천) 자료에 따르면 공공부문 총 인건비는 89조5000억이다. 이는 지난해 500대 민간 기업 인건비 합인 85조9000억원보다 3조6000억원 높은 수치다. 지난 2016년 이후 공공부문이 500대 기업 인건비를 추월한 것은 처음이다. 송언석 의원은 "정부의 무분별한 공공부문 인력 확대는 국민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미래 세대의 동의를 받지않고 가불하는 행위와 같다"며 "양질의 일자리 창출 주체는 정부가 아닌 시장임을 인식하고, 규제 축소 등 시장 여건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 지자체, 공기업 등은 각종 명분을 대며 산하조직 늘리기에 혈안이다. 늘어난 산하기관은 소위 '낙하산 인사'라고 불리는 퇴직 간부공무원 재취업에 이용되고 있다. 올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공공기관 4곳 중 3곳에 식약처 퇴직공무원이 기관장으로 임용됐다. 

또 대구북구청 공무원 노조에 따르면 대구북구청 퇴직 간부 중 산하기관이나 임금을 받는 위촉직으로 자리를 옮긴 이는 5명으로 북구청소년회관장, 북구자원봉사센터장 등에 임용됐다. 노조는 간부 공무원이 산하 기관장으로 재취업하면 구청의 관리 및 감독에 어려움이 발생하고 예산 집행 시 비리 발생의 개연성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지원금과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인 관변단체의 수도 증가했다. 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시민단체, 협동조합 등 관변단체는 준 공공기관이라 볼 수 있다. 지난 4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재임한 9년(2011년~2020년) 서울시 등록 시민단체는 1278개에서 2295개로 79.9% 증가했다. 박 전 시장이 서울 시민단체에 지원한 보조금 예산 총액은 200억5169만원으로 집계됐다. 

관변단체는 법령으로 정하는 공무원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채용 과정부터 불투명한 경우가 많다. 정부 예산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돈의 쓰임새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다. 최근에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정치 세력을 넓히기 위해 관변단체를 이용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김태기 교수는 "민간이 스스로 투자할 수 있도록, 개인이 마음껏 소비할 수 있도록 두되 정부 예산을 사용할 경우 책무성, 투명성이 확실해지도록 법과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의 임기는 10개월도 남지 않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세분화 해 늘려놓은 행정 단위를 광역화해 비대화된 공공부문의 규모를 줄이고, 인원을 감축해 공공부문의 재정 상태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정부 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만큼 정부가 국민을 위해 써야 하는데 이를 낭비하면 안 된다"며 "지방 공무원, 관변단체 등의 행정단위를 통합해 이를 줄여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큰 정부, 작은 정부 같은 개념보다 시급한 것은 '낭비하지 않는 정부', '할 일 하는 정부'"라며 "정부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하게 둬서는 안 된다. 할 일 하는 정부를 만들도록 국민들이 책임지고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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