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1.08.17 05:30

보유세·거래세 '동시강화' 매물 커녕 증여 급증…반시장적인 규제 철회해야 민간 주택공급 증가

1983년 준공된 영등포 A 아파트. (사진=전현건 기자)
1983년 준공된 영등포 A 아파트.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저희 아파트는 영등포에 1983년도에 준공돼 시설이 낡아 벽에서 비가 새고 복도로 빗물이 들어와 비 오는 날이면 양동이로 퍼내야 하고 기둥을 포함한 모든 시설들이 안전하지 않아 매일 불안하게 생활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새로 재건축하게 되면 반듯한 집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현재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11월 조합설립인가를 받았고 아직 관리처분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금(재초환)이란 제도가 재건축으로 새집에 살게 된다는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버렸다."  

영등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고 소개한 A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재초환' 제도 때문에 수억원을 세금으로 부담해야한다고 하고 이를 납부하지 못하면 물납으로 건물을 내놓아야 한다"면서 "조합원 주민들이 비상대책위를 구성했으나 아무런 대책 없이 모두 한숨만 쉬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준공된지 39년이 넘은 이 아파트는 재건축 추진 연한(30년)을 넘어선지 이미 9년이 지났다. 손 볼 곳이 많은 걸 넘어 이젠 새로 지어져야만 할 때가 왔다. 하지만 새로 지을 수 없다. 재초환 문제로 인해 조합원 1인당 평균 3000만원이 넘게 이익을 볼 경우 초과 금액의 최대 50%를 재건축 부담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위 사례처럼 정부의 '재초환' 제도로 인해 제 시간에 지어져야 할 아파트들이 속절 없이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 이뿐 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안전진단 기준 강화, 분양가상한제 등 과도한 재건축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서울에서 재건축 단지는 통상 전체 아파트 공급 물량의 40~50%를 차지해 왔지만 위와 같은 규제로 민간 주택사업은 크게 위축 됐고 현재 서울의 주택공급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 기존 조합원 이익 뺏어 신규 분양자에게 줘"

부동산리서치 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서울 재건축 단지에서 나온 일반분양 물량은 275가구에 그쳤다. 올해 재건축단지의 일반분양 물량은 지난 3월 광진구 자양동 '자양 하늘채 베르'(51가구)와 6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224가구)가 전부였다. 작년 같은 기간(1830가구)에 비해 85% 급감했다. 

곳곳에서 재건축 사업이 지연된 게 아파트 공급 감소의 주요 요인이다.

특히 재건축 단지 공급이 적은 이유는 분양가 규제가 손꼽히고 있다.  

작년 7월 하순부터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분상제)가 도입되면서 주요 단지가 분양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강동구 '둔촌주공'(일반분양 4841가구)을 비롯해 서초구 '반포메이플자이'(236가구)와 '래미안원펜타스'(641가구), 강남구 '청담삼익롯데캐슬'(152가구) 등은 하반기 일반분양을 추진 중인 단지들이다. 하지만 이들 단지들에서는 아직 구체적인 분양 일정등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둔촌주공의 경우 작년에 분양을 마쳤어야 했다. 당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격이 3.3㎡당 2978만원으로 낮아 조합원의 반발을 샀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도는 취지가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돕자는 것으로 현재 재개발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지에 적용되고 있다. 덕분에 기존 조합원들의 이익을 뺏어서 신규 분양받는 이들에게 로또 아파트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착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궁극적으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인근 아파트들의 가격 하락을 돕기는 커녕 인근 시세를 따라 상승한 것이 현실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 수석연구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분양가상한제는 건설사의 이익에 상한을 걸어 인근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함으로써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돕겠다는 것인데 예전 군사정부때 1백만호, 2백만호 대량으로 짓는 신규 택지에선 건설사의 폭리를 막는데 도움이 됐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허나 지금 같이 재개발·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지에도 저걸 적용하면 건설사 폭리가 아닌 기존 조합원들의 이익을 뺏어서 신규로 분양받는 이들에게 주는 식이 된 것"이라며 "애초 취지처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했다고 인근 아파트들의 가격이 하락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아파트들이 인근 시세를 따라 상승한 것이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선 분양가상한제가 부동산시장 안정에 기여한 정도는 가시적이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다만 로또아파트에 당첨된 일부의 행운아들에게는 로또아파트 수익을 몰빵해서 받은만큼 좋은 제도라고 느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3년 준공된 서울 영등포구에 A아파트. (사진=전현건 기자)

◆"안전진단 기준 강화로 주택공급 속도 내는데 걸림돌"

재건축 추진 연한(30년)을 충족하더라도 2018년 3월 강화된 안전진단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가 속출하고 있어 공급난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기존에는 30년 이상된 구옥은 무난히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8년 이후 구조안정성 평가에 가중치가 붙으며 안전진단 통과가 점차 어려워졌다. 

재건축과 재개발은 착수부터 시행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인데 안전진단부터 발목이 잡혀있다는 분석이다.

정비사업을 옥죄는 정책으로는 민간영역의 주택공급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사업성이 낮아지고 안전진단, 건축심의, 사업시행 인가 과정에서 심의 절차가 까다로운 상황에서 조합원의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노원구 태릉우성(1985년, 432가구),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1985년, 1320가구), 양천구 목동9단지(1987년, 2030가구)와 11단지(1988년, 1595가구) 등은 안전진단 적정성 검토에서 탈락했다. 건축 연한을 넘긴 단지들이 재건축하려면 안전진단에서 D등급(조건부 통과)이나 E등급(확정)을 받아야 한다. 2018년 2월 정부가 진단 평가항목인 구조안전성 가중치를 기존 20%에서 50%로 높이고 공공기관에 2차 적정성 검토를 받도록 하면서 안전진단에서 탈락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송승현 부동산연구소 대표는 뉴스웍스와의 통화에서 "안전진단 기준의 지나친 강화는 주택공급의 속도를 내는데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다"며 "재건축 규제완화는 결국 주택가격에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국민의 주거환경 개선효과와 안정적 주거생활에 대한 비중에 대해서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유·거래세 동시 상승에 증여 폭발

세금 정책마저도 공급난을 부추기는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세금이 부동산에 접목될 때는 '보유세를 강화하고 거래세를 완화한다'는 기조가 기본이다. 보유세를 높인 만큼 거래세를 낮춰서 거래 회전을 빠르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정은 보유세와 거래세를 동시에 강화해서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덕분에 서울지역 아파트 증여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 다주택자들이 세금 강화에 대응해 자녀 등에게 증여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1년간(2020년 7월~2021년 6월) 월평균 증여 건수는 1979.1건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당시 월평균 617.3건과 비교하면 220.6% 늘었다. 

특히 송파구는 해당 기간 월평균 271.5건, 강남구는 224.1건, 서초구는 150.8건을 기록하며 서울 아파트 전체 증여 거래 중 강남 3구의 증여 거래가 약 32.0%를 차지했다.

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정부의 조세제도를 종합하면 보유 억제, 매수 억제, 매도 억제인데 이번 양도세 개편안에 또 다주택자에게 보다 강도 높은 과세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아직 절세 수단이 남아있을 때 주택을 처분하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다주택자가 쥐고 있던 주택이 풀리면 매물이 부족해 거래가 동결된 부동산 시장도 거래량도 확충할 수 있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서 교수는 "다만 양도세 최고 세율이 이미 75%, 관련 부과세금까지 합치면 82.5%에 달해 양도에 따른 세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황"이라며 "따라서 다주택자들이 매도 시점을 놓쳤다고 판단하고 주택을 처분하기보단 버티거나 증여로 대응할 것으로 판단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세가 거래를 유도하기보다는 부동산 시장의 매물 잠김 현상을 고착화하는데 오히려 일조할 가능성이 있다"며 "결론적으로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인하가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이용 중심의 부동산소유 문화를 만들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들어 어떤 부동산 대책을 내놓아도 시장은 믿지 않고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대책을 급조한 데다 민간재건축을 억누르고 임대사업자 규제를 강화하는 등 공급을 옥죄는 정책이 난무했던 탓이다.

결국 정책 추진에 따른 효과는커녕 부작용만 두드러지게 나타났던만큼 지금이라도 정책적 유연성을 발휘해 주택 공급을 늦추는 반시장적인 규제를 과감히 철회해야 한다는 것이 부동산업계의 일치된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정책 도입에 앞서 시장 영향 등에 대해 충분하게 사전 검증을 해야 한다"며 "투기를 배제한 실수요자 위주의 정비사업을 추진하되 공급 확대, 속도감 있는 진행 등을 위해 정비사업 운영 기준에 대해서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뒤늦게라도 이렇게 해야만 그간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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