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1.08.14 05:30

기득권 지키고 경쟁자 막기 위해 '의원입법' 성행…정부·의원 '짬짜미 편법' 줄여야

사단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4월 23일 서강대 ICT법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최근 온라인 플랫폼 규제동향을 분석한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제공=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단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4월 23일 서강대 ICT법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최근 온라인 플랫폼 규제동향을 분석한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제공=한국인터넷기업협회)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한 대한민국에서 입법권을 행사하는 국회의 핵심 임무는 기업의 건실한 경영활동을 돕고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는데 있다. 

현실은 이런 원칙론과 괴리가 크다. '진흥과 촉진'이 아니라 '규제와 처벌' 위주의 입법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당경쟁에 내몰려 있는 내수 기업들의 상당수는 수익성 저하와 성장 정체라는 중병에 걸려 있는 상태다. 경쟁력을 갖춘 중견기업들조차 가업승계를 통한 백년기업을 꿈꾸기보다는 너나없이 대형 사모펀드에 매각을 추진하는 실정이다. 주요 대기업들은 수출 증대와 온라인 판매 급증 등에 힘입어 지난 상반기 사상 최고 실적을 올렸지만 대다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사태로 생사의 기로에 처해 있다. 미래를 어둡게 보다보니 기업의 신규 채용은 줄어들고 있다. 취업준비생의 절망과 탄식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정치권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 역시 커지는 상황이다. 

소비자들도 다락같이 뛰는 물가 속에서 그나마 상품을 직접 보고 고르면서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받고 있다. '재래시장 보호'라는 목표 달성이, 확인된 바 없는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지속되고 있어서다. 정작 유통의 주역으로 떠오른 플랫폼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소상공인 착취 논란과 '갑질' 행태, 시장생태계 훼손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감독 시스템은 마련되지 않는 상태다. 

정부가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입법과제를 수행해야 할 국회는 민생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승리만을 위해 국가경쟁력 강화와는 동떨어진 포퓰리즘 공약을 마련하는데 혈안이 된 상태다.    

◆접수된 법안 중 75% '미처리 상태'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1대 국회가 2020년 5월 30일 개원한뒤 8월 현재까지 총 접수된 법안은 1만 1743건이다. 이중에서 처리된 법안은 182건이다. 폐기된 법안은 68건, 철회된 법안은 114건이다. 아울러 계류된 법안을 포함해 미처리된 법안은 8878건이다. 전체 접수된 법안 중에서 '미처리(계류) 상태'인 법안이 75%를 넘는다.

법안 발의의 주체는 국회의원, 국회 상임위원장, 정부가 될 수 있다. 이중에서 의원이 발의한 법률로 한정, 계산해보면 계류 법안을 포함한 미처리 법안의 비율은 79%에 달한다. 총 1만 980건의 법안이 접수돼 8704건이 미처리(계류)됐다. 불필요한 법률안이 많이 접수되고 있으며 의원들의 법안 발의가 남발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름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이 입증된다.

이런 가운데, '현행 법 제도가 낡았으며 입법영향평가도 미흡할 뿐 아니라 옥상옥 식의 과잉규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3월 16일 '21대 국회 입법방향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대한상의가 20~50대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21대 국회 입법방향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91.6%)이 현행 법체계의 문제점으로 '낡은 법제도'를 꼽았다. 이어 '입법영향평가가 미흡하다'는 응답이 87%였고, '옥상옥 과잉규제가 많다'는 80%를 차지해 그뒤를 이었다. 

게다가, 향후 '입법방향'에 대해선 '신법(新法) 입법'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39%였음에 비해 '기존제도를 엄격히 집행해야 한다'는 비율이 61%로 드러났고 '부작용이 덜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86%에 이르렀다. 또한, 21대 국회에서 최우선 입법과제로 '경제활력 증진을 꼽은 비율이 40%이며 '근로자·소비자 권익 증진'을 꼽은 비율은 29%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무려 80%에 달하는 사람들이 '옥상옥 식의 과잉규제가 많다'고 답변한 이유를 살펴봤다. 

여권의 한 핵심 국회의원 보좌진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의원발의 입법'은 의원 10인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가능하다"며 "이 요건이 의외로 쉬운 이유는 대표발의의 필요성을 의원의 보좌관이 스스로 판단한뒤 의원의 허락을 받아 평소에 친한 의원실들을 찾아다니며 도장을 쭉 받으러 다니면 하루 만이라도 요건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의원발의 입법은 입법예고나 심의를 받을 의무가 없어서 발의과정에서 정부 발의 입법처럼 규제영향평가 분석이 철저히 이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에 더해 "더욱 중요한 것은 특정 분야의 이해관계인이 국회의원을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법률안을 상정하게 하거나 입법을 통한 규제장벽을 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면서 경쟁자들의 도전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귀뜸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는 의원들이 자신의 실적을 과시하기 위한 실적 과시용 입법 때문이기도 하다"며 "이런 식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입법은 철폐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사전 규제 심사와 다른 부처의 반대를 회피하기 위해 법안을 만들어 의원에게 발의를 요청하는 '청부입법'도 적지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이다. 국회의 입법만능주의와 부처의 행정편의주의가 결합한 정부·의원 간 '짬짜미 편법'이 성행하지만 확인조차 불가능한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변호사 단체 등 공신력을 갖춘 전문가 집단의 조사를 통해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막아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대국회 발의주체별 법률안 통계. (사진=국회의안정보시스템 화면 캡처)
21대국회 발의주체별 법률안 통계. (사진=국회의안정보시스템 화면 캡처)

◆발의만 10년째 서비스산업법... 3건 중 2건 소관위 심사 중, 1건은 소관위 접수 상태

대한상의는 지난 6월 25일에 국회에 혁신 법안의 조속한 입법을 촉구했다. 대한상의는 지원기반 마련 등 기업들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법안을 비롯해 상의 샌드박스 과제 중 후속 법령정비가 필요한 법안 등 총 37건의 입법경과를 분석했다. 일부는 지난 1월 상의가 국회에 제안한 과제이기도 하다.

대한상의의 분석 결과, 법률 개정까지 완료된 과제가 10건인데 비해 미해결 과제는 27건에 달했다. 미해결 과제 중에는 상임위 계류 중인 과제가 13건, 미발의 과제는 14건으로 나타났다.

법안 발의 후 입법이 완료된 법안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 과제들은 아직 논의조차 없거나 국회 소관위에서 심사 중인 상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대표적이다. 국내 서비스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미래 먹거리가 많은 분야임에도, 경쟁국 대비 서비스업의 비중과 고용이 모두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법률상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제정안의 골자다.

서비스산업 생산성&한국 서비스산업 생산성·순위 추이 (자료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서비스산업 생산성(왼쪽)과 한국 서비스산업 생산성·순위 추이 (자료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이 법안은 지난 18대 국회부터 약 10년 동안 꾸준히 발의돼 왔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이 법안의 중요성이 주목되기 보다는 '의료민영화 이슈'가 더 크게 부각되면서 논의가 진척되지 않다가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도 거의 대동소이한 내용으로 류성걸·추경호·이원욱 의원이 대표발의한 3건의 유사 법안이 제출됐다. 이중에서 류성걸 의원이 지난해 11월 19일에 대표발의한 법안은 소관위 접수 상태고, 추경호·이원욱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사 법안 2건은 소관위에서 심사중인 상태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최근 핀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마이페이먼트 등 디지털금융 혁신의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 전자금융업의 자본금 요건 등 진입장벽을 낮추고 인허가 체계를 개편하는 내용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발의됐다.

발의된 지 벌써 반년이나 지났지만,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세 차례 상정만 되었다가 2021년 8월 12일 현재는 아예 표류상태다. 8월 12일 현재, 한국은행은 금융위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 시도에 맞서 이와 관련된 권한이 한국은행에 있다고 명시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따로 발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드론 비행승인 시 군부대, 지자체 등과 상시협력체계를 구축해 드론비행 승인절차를 합리화하는 드론활용촉진법(김민철안 등)은 상임위에서 논의되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산업데이터 활용 기반을 마련하는 산업디지털전환촉진법(조정식안 등)은 소관위 심사가 진행중이다. 

대표적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 (사진제공=민형배 의원실)
대표적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 (사진제공=민형배 의원실)

◆규제 개혁 법안 제·개정 늦어질수록 산업 경쟁력 약화

우리나라 기업들은 과연 규제개혁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을까.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 6월 14일 대기업 250개사 및 중소기업 250개사의 총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기관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월 20일부터 6월 3일까지 조사한 '2021년 규제개혁체감도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규제개혁체감도는 92.1로 작년대비 1.7p 하락해 3년 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92.1은 100 미만으로 기업들이 대체로 규제개혁 성과에 '불만족'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규제개혁체감도가 100 초과면 만족, 100 미만이면 불만족, 100이면 보통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체감도는 지난 2018년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장 높았으나 정권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규제개혁 성과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의 7.8%, 불만족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의 19.0%로, 불만족하는 기업이 만족하는 기업의 약 2.4배에 달했다. 특히 기업들이 지난 1년간 규제개혁 성과에 '매우 불만족'으로 응답한 비율은 6.8%로, 지난 2020년의 5.9%에 비해 0.9%p 증가했다. 

최근 3년 간 규제개혁 체감도. (사진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최근 3년 간 규제개혁 체감도 추이. (사진제공=전국경제인연합회)

'규제개혁 성과'에 대해 불만족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규제 해결 미흡'이 29.5%이고, '규제신설·강화'가 28.4% 순이었다.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로는 '노동 규제'가 40.4%, '환경·에너지 규제'가 31.0% 순이었다. 끝으로 '향후 정부의 규제개혁정책 성과에 대한 전망'에 대해선 '부정적'이 25.0%인 반면, '긍정적' 10.4%에 불과해 부정적인 전망이 높았다. 

뿐만 아니라, 전경련이 최근 분석한 한국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취업자당 노동생산성 6만 2948달러, 2018년 기준)을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3개 국가 중 28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경제전문가들과 주요 경제단체들이 강조하는 해법은 단순하다. 규제 개혁을 위한 법안의 제·개정이 늦어질수록 산업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도 명확하다.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신산업 투자를 장려하는 인센티브 정책에 나서야한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데 앞장서서 국부의 파이를 키워야만 늘어난 세수로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를 강화하고 저출산 문제 해법 찾기도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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