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02.18 17:10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현대차 사례 반면교사해야…노사 양측 전향적 태도 필요"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삼성전자가 노조 파업의 갈림길에 섰다. 쟁의권을 확보한 노조가 최고경영진과의 대화를 요청하며 결정을 일단 유보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파업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향후 사측 대응에 따라 파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노조가 파업을 실제로 결의하면 삼성전자는 지난 1969년 창사 이래 첫 파업을 겪게 된다.

뉴스웍스와 만난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삼성전자 노조가 실제로 파업에 돌입해도 단기적 경제 손실은 그다지 크지 않을 전망"이라면서도 "다만 현 상황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향후 '노조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을 때가 문제다. 글로벌 기업 삼성이 그간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심어놓은 긍정적 이미지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점이 진짜 아픈 대목"이라고 우려했다. 

김태기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노동·경제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한국노동경제학회 회장,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대한민국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각계각층 인사가 모여 만든 사회단체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노조 입장에서 파업을 결행하면 성과를 내야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노조 요구에서 무리한 지점이 많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는 500만명 이상의 소액주주가 있는 '국민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노조에 대한 여론이 좋을 수가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특히 삼성전자 노조는 결성된 지 얼마 안 돼서 경험이 부족하다"며 "4개 노조가 모여 공동교섭하기에 각 노조 요구안을 조율하기도 어렵다. 파업에 돌입했을 때 전열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호응을 얻기 어렵고, 성공하긴 더 어렵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 제기된 '파업으로 반도체 공정이 멈춰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현실성이 없다고 봤다. 김 교수는 "파업으로 인한 단기적 경제 손실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삼성 반도체 기술은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자동화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은 1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앙노동위원회 조정회의 조정 중지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삼성전자 최고경영진의 책임 있는 대화와 해결을 요구했다. (사진=전다윗 기자)
삼성전자 노조 공동교섭단은 1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전자 최고경영진의 책임 있는 대화와 해결을 요구했다. (사진=전다윗 기자)

김 교수가 우려하는 지점은 파업 그 너머였다.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그간 쌓아온 평판과 신뢰에 금이 갈까 두렵다고 했다. 지금은 업체 간 국경을 초월한 합종연횡이 활발한 시대다. 그는 삼성전자가 그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간과해 '고질적' 노조 리스크에 시달린다면, 언제 그 흐름에서 튕겨 나갈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대자동차의 현 상황을 삼성전자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현대차는 노조 문제를 초기부터 잘못 대응했다. 원칙이 없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진짜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으면, 시스템 자체를 바꿔 대응했을 것"이라며 "결국 파업은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게 됐고, 외국인 투자자에게 저평가받는 고질적 약점으로 자리 잡았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노조 문제가 글로벌 행보를 방해하는 걸림돌이 됐다는 설명이다.

앞서 삼성전자 노조는 15차례 임금 교섭을 진행했고, 두 번의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을 받았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 어떻게 갈등을 봉합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삼성전자가 노사 관계에서도 특유의 '초격차' 전략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기업에 추월당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압도적 1등 노사관계를 만드는 것이 해법이라는 시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사 양측의 전향적 태도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선 노조에 '제조업 전성기 시절의 구식 마인드에서 벗어나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노조가 사업에 리스크가 되는 글로벌 기업은 드물다"며 "노조가 왕성하고 강한 건 지금처럼 디지털 시대가 아닌 제조업 전성기 시절 이야기로, 지금은 파업을 해 문제를 제기해야겠다는 의식 자체가 약해졌다"고 최근 분위기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에서 앞서가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인 삼성전자의 노동자가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파업을 암시하는 건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이라며 "근로자 스스로 이 부분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사측에는 "삼성이 추구하는 가치를 노조는 물론 전체 직원과 공유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데, 아직 이 부분에서 미진하다"며 "단순히 '임금 몇 프로를 인상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간 무노조 경영을 이어왔던 삼성전자 입장에선 (노조의 존재가) 불편할 수 있지만 어찌 됐든 노조는 만들어졌다. 삼성전자만의 새로운 노사관계 문화를 만들어야 할 때"라며 "인사관리 전반에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혁신이 요구된다. 특유의 초격차 전략이 여기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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