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9.22 09:09

송악산 해안동굴, 일제 해군기지일 뿐 '가이텐' 전용 기지 아냐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사진제공=최일)

제주도 송악산 해안에는 가이텐(回天) 동굴로 알려진 곳이 있다. 가이텐은 '자폭용 인간어뢰'이다. 한 명이 직접 조종하여 표적 선박에 부딪히도록 만든 ‘유인조종어뢰’이다. 자살용 공격항공기 카미카제의 해군판(版)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뚫어놓은 수백 개의 동굴들이 있는데 송악산 가이텐 동굴 군(群)도 그 중 일부로 알려져 있다. 이 동굴을 뚫는데 동원된 인부는 대부분 제주 주민들이었고 그들의 증언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이 제주도 가이텐 동굴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보도한 바 있고, 2009년 1월에는 KBS에서 ‘제주 동굴진지의 비밀’이라는 다큐 2부작으로 방영한 바 있다. 다만 일제 말기 일본 해군은 이 동굴에 가이텐을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언제부터 언제까지 가이텐 몇 척이 배치했는지는 아직 공개된 바가 없다.

필자는 잠수함연구가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가이텐을 비롯한 자폭용 소형잠수정 운용현황을 알아보고, 제주도 가이텐 동굴에 대한 실체를 밝혀보고자 한다.

2차대전 당시 일본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1943년부터 다양한 자폭 기술을 해군에 도입했다. 수상쾌속정 ‘신요(震洋)’는 가장 많이 사용된 일본 해군의 자폭용 무기였다. 신요는 속력이 30노트에 달했으며, 일본 해군은 6,200척의 신요를 건조했다. 일본 육군에도 신요와 비슷한 마루니를 약 3,000척 보유했다. 또, 자폭잠수부(후쿠류)도 있었는데 15㎏의 폭탄을 대나무 기둥에 장착하여 6시간동안 5~7미터 수심에서 걸을 수 있었고, 정박중인 적 함선의 선저를 찔러 표적을 격침시킬 수 있었다.

 

가이텐 타입1 (사진제공=Wikimedia commons)

가이텐에는 총 6개의 모델이 있었다. 이중 대표적인 타입1은 총중량 8.3톤, 길이 14.75m, 최고속도 30노트였으며 1944년 후반기부터 총 330척 이상이 건조되었고 이 중 100척 이상이 실전에 배치되었다. 주로 대형잠수함에 탑재된 상태로 작전해역까지 이동 후 분리하여 자력항해를 하였고, 수상함이 모함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해안방어용으로 연안 육상시설에서 발사할 수도 있었는데, 이것이 타입10 가이텐이다. 타입10은 약 1,000기의 92식 어뢰 재고를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타입10은 총중량 3톤, 길이 9미터로 타입1보다 훨씬 작았다. 타입1은 잠수함 내에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부해치가 있었지만 타입10은 육상발사용이라 상부해치만 있었다. 이 타입 10은 정박함 공격용으로 사용되었고, 항해중인 함선 공격은 제한되었다. 1945년 7월 일본해군사령부는 500척 이상의 타입 10 건조를 명령하여 기존 및 신규 가이텐 기지에서 발사 준비를 했다. 일본 해군은 가이텐 전력으로 미 해군 구축함 USS 언더힐(DE-682)을 침몰시키기도 했지만, 가이텐은 전쟁 말기에 실전에 투입되었고 제한된 성능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그 전과는 미미했다.

일본 해군의 특공부대 자폭 공격용 잠수정에는 가이텐 외에도 코료(蛟龍)와 카이류(海龍)가 있었다. 코료는 길이가 26미터, 배수량이 60톤이고, 100미터까지 잠항이 가능한 잠수정으로 어뢰 2기를 탑재할 수 있었고 승조원은 5명이었다. 1번함은 1944년 5월 완공되어 1945년 5월 28일부터 실전에 투입되었다. 종전시점 기준 115척이 완공되었고 496척이 건조 중이었다.

카이류는 코료보다 작은 2인용 소형잠수정으로 길이가 17미터, 배수량은 약 20톤이고 어뢰 2기와 자폭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다. 약 750척을 건조할 계획이었으며 1945년 초부터 생산하였는데 종전까지 약 210척이 완공되었다. 

제주 송악산 해안동굴. (Wikimedia commons)

이러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제주도 가이텐 동굴 관련 쟁점에 대해 알아보자.

첫째, 제주 송악산 해안동굴에는 실제로 가이텐이 배치되었을까? 배치된 적이 없다. 송악산 동굴이 완공되기 전에 전쟁이 끝났기에 시기적으로 가이텐이 배치될 수 없었다. 

둘째, 그럼 제주도에 가이텐이 배치될 계획은 있었을까? 일본 해군은 특공기지설정개위(海軍特攻基地設定槪位)를 발간하였는데 이 자료에 의하면 일본은 진해에 코료, 카이류, 가이텐을 배치하고, 여수 부근과 대마도에 코료와 카이류, 그리고 제주도에 코료, 카이류, 가이텐과 신요를 배치할 수 있는 기지건설 계획이 있었다.

실제 제주도 성산일출봉과, 서귀포삼매봉, 고산수월봉 동굴에는 신요가 배치되었다.

그런데 이는 기지건설 계획이며, 실제 가이텐 배치계획은 수립된 바 없다. 만약, 제주도에 가이텐을 배치했다면 해안방어용 가이텐 타입10을 배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 해군은 1945년 8,9,10월별로 총 504척의 가이텐 배치계획을 세웠는데 여기에는 제주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셋째, 가이텐 동굴로 알려진 송악산 동굴에는 가이텐이 배치될 수 있었을까? 가이텐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잠수함과 어뢰의 결합체이다. 당시로서는 섬세한 기계장비이고 특별관리가 필요한 대용량 폭약을 탑재하고 있었다. 또 추진체의 동력이 되는 배터리는 주기적인 충전이 필요하고 정비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곳 동굴에서는 종전으로 인해 완공된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현재 만들어진 동굴의 구조로 보아서는 가이텐을 배치할 만한 설비공간은 없어 보인다.

넷째, 그럼 왜 이곳이 가이텐 동굴로 알려졌을까? 그 어떤 일본 자료에도 송악산 동굴이 가이텐 기지로 나와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가이텐 동굴로 알려진 이유는 다음과 같이 추측해 볼 수 있다. 일제가 제주도에 건설한 해군기지는 서우봉, 성산일출봉, 서귀포삼매봉, 송악산, 고산수원봉 총 5군데이다. 이중 성산일출몽, 서귀포삼매봉, 고산수원봉 세 곳은 기지가 어느 정도 완공되었고 신요가 실제 배치됐다. 하지만 서우봉, 송악산 두 곳은 전쟁이 끝나던 시점에 계속 동굴작업을 하고 있었고 완공되지 못했다. 당시 동굴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물속으로 다니는 잠수함이라는 존재에 대해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며, 언젠가 특공 잠수정이 제주도에 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났을 것이다. 이미 3개 기지는 완공돼 신요가 배치되었으니, 당시 작업중인 서우봉과 송악산 기지에 잠수정이 배치될 것으로 추측했을 것이고 그런 소문도 났을 것이다. 

다섯째, 특공잠수정에는 세가지 종류 즉, 코료, 카이류, 가이텐이 있었는데 왜 가이텐 동굴로 알려졌을까? 제주도 동굴 작업을 했던 인부들은 가이텐 실물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잠수정이 배치될 것이라는 소문을 바탕으로 카미카제가 일본의 자살용 항공기의 대명사인 것처럼 '자살용 소형잠수정'의 대명사인 가이텐으로 동굴을 지칭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주도에 가이텐이 배치된 적은 없다. 일본은 제주도에 가이텐 뿐 아니라 코료, 카이류까지 배치할 수 있는 기지건설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종전까지 실제 이들 소형잠수정을 제주도에 배치할 계획도 수립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은 송악산 동굴을 가이텐 기지로 특정하지 않았다. 결국, 송악산 해안동굴은 일제의 해군기지라고 할 수 있지만 가이텐 전용 기지는 아니었다. //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참고자료>
Kemp, Paul, Bemannte Torpedos und Klein-U-Boote : Motorbuch Verlag, 1999.
Kemp, Paul, Underwater Warriors : Arms and Armour, 1996
조성윤, 『일제 말기 제주도의 일본군 연구』 (보고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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