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30 15:22
풍성한 느낌을 주는 호두의 사진이다. 지하철 1호선 천안은 예로부터 호두로 유명하다. 천안에서 만드는 호두과자는 전국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울 등을 거쳐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이른바 삼남(三南)을 향하는 요충에 있는 유명한 도시다. 특히 ‘천안 삼거리’는 그 요충의 길목으로 이 이름이 많이 쓰였다. 입장천과 성환천이 안성천에 합류하는 유역에는 풍세들과 기미들, 새교들, 마루들 등의 평야가 발달했다.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만들어 유명해진 호두과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자 이름 천안(天安)의 유래는 고려 왕건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기 전 이곳에 들렀을 때 풍수와 점복(占卜)을 업으로 하는 술사(術士) 등이 “이곳에 수도를 세우면 천하(天)가 평안(安)해진다”라고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고려 이전에는 다양한 이름을 얻었던 이곳이 비로소 지금의 명칭으로 정착했다.

그러나 이 天安(천안)의 이름에는 하늘을 가리키는 天(천)이 들어 있어서 문제였다. 여기서는 이 글자를 집중적으로 좇아가 보자. 중국을 중심으로 과거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역학 구도를 그릴 때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중국에 통일 왕조가 등장했을 때는 특히 그랬다.

중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 하늘의 뜻을 계승한 나라로 봤다. 따라서 그런 중국 통일 왕조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는 자신을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의 ‘천자(天子)’로 불렀다. 따라서 이름이나 호칭에서 하늘을 뜻하는 天(천)은 중국의 황제가 아니고서는 함부로 쓸 수 없는 글자이기도 했다.

고구려를 비롯해 한반도의 삼국시대는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닿았던 시절이었다. 고구려는 그중에서도 중원의 권력과 밀고 당기는 힘을 지녔으며, 때로는 강력한 무력으로 중원의 왕조를 직접 위협하기도 했다. 그런 고구려의 국호를 계승한 흔적이 있는 고려는 건국의 주역인 태조 왕건 때 중국으로부터 매우 자주적이었다.

왕건이 이곳에 天安(천안)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이유는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이름은 고려 6대 임금인 성종(成宗)에 이르러 없어진다. 그는 고려 초의 개혁적인 군주다. 그러나 중국의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아울러 고려 사회를 중국 식의 유교적 사회로 개편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선보였다.

나름대로의 합리적 선택이었을 것이다.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 존재치 않아 혼란스러웠던 고려 왕실의 통치기반을 유교식 질서를 끌어들임으로써 확고하게 다지려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성종 때 天安(천안)의 이름은 환주(歡州, 경우에 따라서는 懽州)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다시 곧 원래의 이름으로 돌아왔으며, 간혹 다른 이름으로 바뀌다가 조선 태종 연간에 들어오면서 줄곧 이 명칭으로 불렸다.

고려 성종 때 없어졌던 이름이 다시 살아난 점은 아주 큰 다행이다. 그때 왜 天安(천안)의 이름을 없앴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성종의 유교적 마인드가 강해서 그렇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추측일 뿐이다. 중국에도 하늘이 있듯이, 한반도에도 그 하늘이 분명히 존재하니 스스로의 얼을 살리며 현실의 정치적 틀을 벗어났으니 다행스러울 뿐이다.

하늘 天(천)은 과거의 한문 사회에서 글자를 읽혔던 <천자문(千字文)>의 첫 글자다. “하늘 천,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르 황(黃)”이라는 대목을 상기하면 좋다. 그러나 天(천)에 대한 설명은 구구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 글자가 등장하는 단어의 조합은 아주 무수하게 많다.

하늘 밑의 세상이 곧 천하(天下)다. 중국의 전통 왕조가 내세웠던 ‘world’의 관념이다. 하늘과 땅을 일컫는 단어가 천지(天地), 하늘과 사람 또는 하늘의 사람을 가리키면 천인(天人)이다. 하늘의 기상 조건 등이 만들어내는 재난을 천재(天災), 하늘이 낸 재주를 지닌 사람이 천재(天才), 하늘이 부여하는 모종의 재주 또는 권리 등이 천부(天賦)다.

하늘의 끝, 아주 멀고 먼 지역을 일컫는 단어가 천애(天涯),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하늘 위의 세상이 천당(天堂), 그곳의 심부름꾼이 천사(天使)다. 하늘이 가리키는 길 또는 그 의지가 천도(天道), 하늘과 우주가 내뿜는 여러 모습을 천문(天文)이라고 적는다. 타고 태어난 것을선천(先天), 세상에 나온 뒤에 얻은 것은 후천(後天)으로 표기한다.

때로는 날씨 등을 가리키기도 한다. 더운 날씨를 염천(炎天)으로 적고, 비가 오는 날씨를 우천(雨天)으로 적는 경우다. 냉천(冷天)이라고 하면 당연히 차가운 날씨다. 천시(天時)는 ‘하늘의 때’라고 풀 수도 있으나 하늘이 내는 운때, 이를 테면 기상 조건 등으로 인해 생기는 상황을 가리킨다. 지형 등이 유리한 지리(地利), 사람들의 결속을 일컫는 인화(人和)와 함께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조건의 하나다.

이 天(천)이 등장하는 성어 역시 많은 편이다. 천하제일(天下第一)은 결국 ‘세계 최고’다. 천하무적(天下無敵)은 곧 ‘월드 챔피언’이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은 하늘(天)의 옷(衣)은 바느질(縫)이 없다(無)의 엮음이다. 결점이 하나도 없는 최고의 경지를 일컫는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은 우물(井)에 앉아(坐) 하늘(天)을 바라보는(觀) 구성인데,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을 가리킨다.

천진난만(天眞爛漫)이 다소 해석에 힘을 들여야 하는 성어다. 뜻은 다 안다. ‘순수하며 때가 끼지 않았다’는 순진무구(純眞無垢)와 비슷한 뜻이다. 天眞(천진)은 하늘에서 내 준대로의 그 상황, 純眞(순진)과 같은 뜻이다. 뒤의 爛漫(난만)이 문제다. 빛나다, 혹은 이지러지다의 爛(난)에다가 흩어지다, 여기저기 널려 있다는 뜻의 漫(만)이 합쳐졌다.

爛漫(난만)을 사전에서 보면 ‘꽃이 활짝 피어 화려함’ ‘광채가 뚜렷하고 선명함’ ‘충분히 의견을 주고받음’의 뜻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한자 세계에서의 쓰임은 이보다 훨씬 많다. 위의 의미 외에 ‘호탕하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에 심지어 ‘방랑하다’ ‘음란하다’의 뜻도 있다. 그중의 하나가 ‘있는 그대로’ ‘순진하다’의 뜻이다. 복잡해도 天眞爛漫(천진난만)의 성어에서는 그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만 기억하는 게 좋겠다.

天眞(천진)해서 爛漫(난만)함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면 좋으나, 삶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할까. 각박하고 이런저런 풍파(風波)가 많은 게 세상살이다. 그럼에도 하늘로 열리는 마음의 문은 결코 닫지 않아야 좋다. 사람들이 그 하나만이라도 간직하고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생각보다 훌륭할 수 있다.

17세기에 나온 존 버니언의 우의(寓意) 소설 <The Pilgrim's Progress>는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종교와는 상관없이 한 번 그 소설과 제목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늘로 열린 길에는 ‘낙담의 늪’ ‘죽음의 계곡’ ‘허영의 늪’이 있고, 수많은 장애와 고난이 도사린다. 그럼에도 가장 바람직한 곳에 당도하려는 사람의 의지는 꺾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天路(천로)의 어느 歷程(역정)을 거치고 있는 걸까. 天安(천안)이 어느덧 뒤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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