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6.07 10:27
양성평등은 남녀 모두 상대를 편견없는 고른 시선으로 대할 때 가능한 일이다.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할 경우 양성평등은 더 멀어진다.

피해망상증 환자의 광증으로 비롯한 강남역 ‘묻지 마’ 살인 사건은 너무 안타까운 희생이었다. 이후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 웃음만 나온다. 미래를 예측해서 잠재적 가해자를 차단해 범죄를 예방한다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생각났다. 범죄를 예방한 안전한 사회가 아닌, 절망적인 디스토피아로 막을 내린다. 영화야 한 두 명의 범죄자지만 지금 여성들이 지목한 잠재적 가해자는 사회적 기득권 대부분을 차지한 인구의 절반이다. 이러면 의도와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범죄를 저지르는 유전자를 알아내려는 노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두개골의 크기와 형태로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추정하려는 골상학(骨相學)이나 범죄로 주목받는 MAOA유전자의 발현, 남성의 성폭력과 관련이 깊은 SRY유전자들이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Y유전자 전부가 용의자 선상에 올랐다. 법과 사회, 그리고 도덕은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여성학은 유전이 아닌 문화적 젠더를 주목한다. 하지만 지금 여성은 젠더가 아닌 성 그 자체를 잠재적 가해자로 몰고 있다.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본의 아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남성들의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의도는 존중한다. 하나 여성들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고 여기는 순간 지금껏 일궈낸 여권신장과 양성평등의 노력은 한 순간에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때문에 이 메시지는 무척 심각하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누군가 잠재적 가해자라면 먼저 격리해야 한다. 가해 대상의 근처에 접근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공공장소, 대중교통 그리고 직장에서 남녀는 같이 있을 수 없다. 버스, 지하철 백화점은 물론이고 가정과 직장에서도 잠재적 가해자나 피해자 중 한 쪽이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가 퇴사하거나 남성/여성만의 직장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에 대학교까지 마찬가지다. 길거리나 식당조차 서로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

양성평등이란 서로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의미다. 신체적 차이가 아닌 문화이기에 법적으로 본질적으로 동등하다. 하지만 가해와 피해란 힘의 관계다. 가해자는 강하고 피해자는 약자다. 잠재적으로나마 남성을 가해자로 본다는 것은 여성이란 강자의 보호가 필요한 약자임을 자임하는 꼴이다. 강자의 보호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말이다. 강자란 공권력이거나 남자다. 불행히도 아버지나 오빠도 남자다. 강자가 잠재적 가해자일 수 있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약자는 강자와 동등하지 않다. 보살핌을 받는 자는 보살펴주는 자의 보호 아래 살아간다. 당연히 같은 발언권이나 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다만 보호자의 배려나 자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순간이 바로 양성평등을 포기하는 순간이다.

그렇다.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은 남녀칠세부동석, 남존여비, 여필종부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어리광이다. 그리고 남성에게 잠재적 가해자라는 굴레를 씌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려는 꼼수다. 어리광 부리지 마라. 여성에 대한 보호나 배려는 전근대적인 남녀불평등의 악습 때문이지 매너도, 도덕도, 젠더도 아니다. 줄을 설 때 잠재적 피해자라고 양보를 요구하겠는가? 동등하게 경쟁하는 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배려가 먼저다. 따라서 양보는 도태를 의미할 수도 있기에 악덕이다.

어릴 적 남자 아이들이 태권도, 유도, 검도를 많이 배우는 것은 잠재적 가해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자들이 육체활동에 별 관심이 없는 것은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여성학에서는 이 차이 역시 몸이 아닌 문화라고 한다. 젠더로 시작했으니 끝까지 젠더로 밀고나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 몸을 다시 불러내 남성 모두를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가면서 이조차 젠더라고 얼버무리려 한다. 물 타기 하지 말자. 지금껏 일궈온 여성학의 업적을 파괴하는 짓이다. 투쟁하여 이루었으면 스스로 강함을 보일 때다.

잠재적 가해자를 격리하기를 원하는가? 아니 극단적 이슬람 사회를 원하는가? 차라리 스스로 격리하고 꽁꽁 싸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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