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6.13 10:13
수컷 사자에게서 우리는 남성성을 읽기도 한다. 활력이 잦아지는 나이의 남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의 품격을 세우는 '뼈대 다시 만들기' 작업 아닐까.

언제부턴가 시원치 않았다. 남자라면 무릇 강철 같은 의지를 보여줘야 하건만 자꾸 삶은 늙은 가지 마냥 흐물흐물하다. 뜻은 굴뚝같지만 정작 의지는 갈 곳을 잃었다. 화장실에서도 찔끔 찔끔 거린다. 비뇨기과를 찾아 당장 비아그라를 내놓으라 했다. 의사는 조목조목 묻더니 검사부터 하잔다. 당뇨가 심하단다. 뼈대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이렇게 시작했다.

대부분의 동물 음경에는 뼈가 있다. 가장 가까운 친척 침팬지나 고릴라조차 하나씩 장만한 것인데 불행히도 우리에겐 없다. 수컷 사자가 달리 그 짓을 하루에 수십 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 뼈대가 있기에 가능하다. 부러울 뿐이다.

인간에도 뼈대가 있을 수 있다. 먼저 뼈대 있는 가문이 있고, 뼈대 있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통뼈다. 진짜 뼈가 아니라 전통과 격조다. 인간에게 폼 나는 모습이 바로 뼈대다. 튼실한 모습이 통뼈다. 그렇다. 신이 뼈를 뺀 것은 인간에게 정력제를 찾아내라는 계시이거나 격조와 늠름한 자세로 뼈대를 갖추라는 뜻일 게다.

남성의 성기는 스펀지다. 뇌에서 신호를 보내면 스펀지로 피가 몰려 크고 단단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뇌에서 신호를 보내도 피가 몰리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의지박약의 고개 숙인 남자다. 최근에 등장한 한 줄기 빛, 비아그라란 이점을 착안한 혈관 확장 조력제다. 그러니까 기력과 힘까지 더해주는 정력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비아그라로 몸의 기력과 격조를 갖출 수 없다. 저질 체력에 발기만 한다면 기력이 쇠잔해져 복상사할까 두렵다.

뼈가 답이라고 해서 음경에 보형물을 삽입하는 수술이 있다. 음경에 튜브를 넣어 강도를 조절한다는 아이디어다. 그런데 몸에 뭘 넣어 좋을 게 없다. 부작용에 신음하는 후기가 넘쳐난다. 눕자 해도 계속 서있기만 한단다. 미용에 쓰는 필러를 넣어 뼈대를 대신하는 수술도 있지만 이 역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계속 차렷 자세란다.

외적인 상처와 부작용이 두려우니 눈을 한방으로 돌려본다. 한방에서도 격조나 뼈대가 아니다. 자꾸 뭘 먹으라 한다. 생약이라는 한방약은 신장 기능에 위협적일 수도 있다. 당뇨는 합병증이 무섭다. 좋다는 보약이나 해구신 때문에 혈관, 눈, 신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기력을 돕는 정력제 좋다고 남용하다가는 투석환자 신세다.

내과에 가니 불만이 가득한 얼굴의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날 보자마자 꾸짖는다. 당장 입원하라고 으름장이다. 입원하고 싶었지만 아침저녁으로 그를 볼 생각을 하니 혈당이 확 오른다. 여자라 진솔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다. 불안감에 혈압이 솟구친다.

자존심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의사 친구를 찾았다. 친구는 당뇨가 강하게 오기는 했지만 입원할 필요는 없단다. 약 먹고 잘 놀면 나을 거란다. 친구가 좋다. 그의 한 마디에 혈당도 혈압도 급강하한다. 용기백배하여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의사의 답이란 뻔하다. 식습관, 생활습관 그리고 운동이다. 흔한 의사의 충고지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바는 있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회개하니 천국이 가깝더라. 그 동안의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격조 없이 너무 싸게 놀았다는 것이다.

한 짓으로 보아 뼈대가 생기기는커녕 뼈가 삭았다. 기름 줄줄 흐르는 삼겹살에 소주만 들이켰더니 요 모양이다. 이젠 좀 더 비싸게 살아야 한다. 삼겹살보다는 목살처럼 기름기 없는 부위에 싱싱한 야채를 즐기고, 자판기 커피 보다는 녹차 홀짝인다. 흰쌀보다는 잡곡을 천천히 꼭꼭 씹었다. 하루 종일 뻑뻑 피우던 담배도 끊고 운동을 빙자해 폼 나게 거닐었다. 짜증나는 일에도 나이에 맞는 표정으로 웃을 일이다. 이러다 조만간 도통하겠다.

중학교 때 국어 교과서던가? 된사람, 난사람, 든사람 중 된사람이 최고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지금껏 그저 난사람이고자 아등바등했다. 하지만 이제는 담백하게 먹고 천천히 살라고 한다. 된사람으로 살면서 격조 있게 뼈를 키우라는 말이다.

그렇게 된사람이고자 했던 시간이 흘렀다. 서서히 뼈대를 키워갔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늠름하게 고개 든 뼈대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렇다.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격조가 진정한 정력제였던 것이다. 타고난 뼈보다 키워가는 뼈대가 더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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