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20 10:53

 

가을에 들판의 주역으로 피어나는 국화. 음력으로 아홉의 구(九)가 두 번 겹치는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로 정해 국화를 감상하는 풍습이 있었다. 전철역 구일역에서는 숫자 아홉을 새겨봤다.

구로(九老) 1동에 있어 구일(九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따라서 역명을 한자로 길게 풀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관심을 끄는 대목은 숫자 九(구)다. 우리는 이 숫자를 성어 식의 표현에서 자주 접한다.

우선 구중궁궐(九重宮闕)이다. 아홉(九) 차례 거듭(重) 이어지는 궁궐(宮闕)이라는 뜻이다. 겹겹이 쌓인 담을 우선 연상케 하는데, 왜 하필이면 아홉일까. 실제 담이나 건축물 등이 아홉 번 거듭 늘어서 있다는 표현은 아니다. 실제 ‘구중(九重)’의 풀이는 ‘끝없이 거듭 이어지는’의 뜻이다.

숫자 九(구)는 실제 횟수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추상적인 의미에서는 ‘한없이’ ‘끝없이’의 뜻이다. 중국에서 숫자 九(구)는 가장 큰 숫자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구우일모(九牛一毛)라는 성어도 있다. ‘아주 많은 것 중에서 극히 작은 하나’의 뜻이다. 소의 털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소가 아홉 마리 있다고 가정해 보시라. 그 털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중의 털 하나라는 뜻이다.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갠지스 강의 모래 알 하나’의 의미와 같다.

구천(九天)은 가장 높은 하늘이다. 역시 불교의 가르침에서 나오는데, 하늘을 여러 층으로 나누고 가장 높은 하늘을 九天(구천)이라고 표현했다. 같은 발음으로서 구천(九泉)이라는 말도 있다. 九天(구천)이 하늘 가운데 가장 높은 하늘이라면, 九泉(구천)은 땅 밑의 세계를 일컫는 황천(黃泉) 중에서도 가장 아래의 저승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은 어떤가. 아홉 번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다? 아니다. 여러 번, 그것도 매우 빈번하게 죽음 앞에 놓였다가 겨우 살아난 일을 일컫는 말이다. 극도의 빈번함, 가장 높은 횟수 등을 일컬을 때 이 숫자 九(구)는 자주 등장한다. 구곡양장(九曲羊腸)이라는 성어도 있다. 꼬불꼬불한 길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아홉 번 접힌 길이 주름이 많은 양(羊)의 창자(腸) 같다는 표현이다. 실제 아홉의 굽이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구불구불한 길이 한없이 펼쳐져 있다는 얘기다.

음력으로 이 九(구)가 두 개 겹치는 날이 있다. 바로 음력 9월 9일이다. 숫자 九(구)는 짝수를 가리키는 음수(陰數)와 홀수를 가리키는 양수(陽數) 중 양수에 속하면서 그 가운데 가장 큰 숫자다. 그래서 陽(구)의 기운이 가장 크게 겹친다고 해서 이날을 명절로 삼았다. 이른바 ‘중양절(重陽節)’이다.

우리의 과거 습속에서도 이 중양절은 꽤 의미가 컸다고 한다. 지금은 물론 아니다. 이 중양절이 오면 옛 중국인들은 어느덧 무르익은 국화의 잎을 따다가 술을 담고, 사람들과 함께 높은 곳에 올라 가득 차오른 양의 기운을 즐겼다고 한다. 우리도 국화잎을 따다가 국화전을 부쳐 먹었으며, 유자를 잘게 썰어 꿀과 잣을 넣어 화채를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九(구)는 그렇다 치자. 九一(구일)이라는 역명의 다음 글자 一(일)은 공자(孔子)의 가르침, 즉 ‘일이관지(一以貫之)’를 떠올리게 만든다. 공자는 자신이 닦은 진리의 여정을 “하나로써 꿰뚫었다”는 뜻의 ‘一以貫之(일이관지)’로 표현했는데, 그 제자이자 손자인 증자(曾子)는 “선생께서는 충(忠)과 서(恕)로 일관하셨다”고 풀이했다.

그 공자의 궁극적인 도(道)가 무엇인지는 나중에 풀자. 어쨌든 여기서 나온 말이 일관(一貫)이요, 초지일관(初志一貫)이다. 굳세게 한 번 마음 둔 것에 정성을 들여 마지막까지 실천하고 모색하는 일이다. 아울러 숫자 一(일)은 만물의 시작에서 끝까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구로 1동에 있다고 해서 지은 九一(구일)은 역명(驛名)으로서 이름이 참 좋다. 우연이 무엇인가를 창조해낸 그런 분위기다. 九(구)는 ‘다양성’이라는 점에서 살펴볼 숫자, 一(일)은 하나로써 끝에까지 이르는 ‘단일함’과 ‘우직함’의 상징이다. 다양함과 일관됨을 함께 갖춘 사람은 아주 강하다. 그런 점까지 감안해서 지은 역명은 아닐 테지만, 어쨌든 그 숫자 둘이 어울려 들려주는 화음이 제법 깊고 오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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