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6.27 13:09
세계의 맥주를 음미하지 않아도 우리나라 맥주의 맛이 형편없음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한국 맥주의 무미함과 건조함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몇 해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한국 맥주는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혹평했다. 반발기사도 있었고 항변도 있었지만 진실로 한국 맥주는 맛없다. 직언하자면 한국맥주는 맥주를 좀 마시는 사람에게 수치다. 아니, 맥주라는 ‘음식’에 대한 모욕이다.

한국에는 전자제품을 포함해 세계 최고가 많지만 OECD 국가 중에서 노동수준과 함께 아직도 바닥을 기는 것은 맥주 맛이다. 일본 맥주를 평할 땐 성질이 순하고 싱겁다고 한다. 중국맥주는 기름기 많은 음식에 어울리는 상큼함이, 인도 맥주는 커리와 함께하면 좋을 풍미와 탄산이 유명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맥주란 그저 노란 색소에 알코올과 향료를 첨가한 물맛 탄산수다.

한국사람 입맛이 시궁창이던가? 한국음식은 세계의 미식가들 사이에서 짜릿한 맛(firing food)으로 정평이 높다. 외국인 어느 누구와 한정식을 먹어도 김치를 비롯한 나물반찬의 다양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짜릿함에 ‘할렐루야!’ 삼창을 외친다. 하지만 맥주에 이르러서는 평가보다는 표정관리에 힘쓰는 듯하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 인접해 살아가는 유럽에서 맥주는 강한 민족성을 지닌 ‘음식’이다. 민족에 따라 사는 지역과 토양 그리고 기후에 따라 기르는 작물이 다르다. 마시는 술도 프랑스 아래는 포도주, 게르만과 색슨은 맥주, 슬라브족은 보드카다. 그러니까 맥주는 보리와 밀이 주식인 민족의 술이었다. 20세기 들어 미국의 버드와이저사가 라거(Larger)라는 가볍고 톡 쏘는 맛의 음료를 개발하면서 맥주는 민족의 벽을 넘어 ‘세계화’한다.

지금 세계와 지역은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코카콜라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 식혜를 비롯한 전통음료가 치고 나오고, 와인이 지배하려고 하면 막걸리가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이 가운데 완전히 세계 수준인 경기가 있다. 축구, 골프 같은 스포츠와 맥주가 그것이다. 맥주를 스포츠에 대입해 물어보자. 한국 맥주는 양궁이나 골프 혹은 피겨스케이팅과 비교할 수 있을까? 만약 김연아가 한국 맥주 같은 연기를 했었다면 세계가 열광했겠는가? 전혀 아니다.

그럼 한국 맥주가 맛없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알아보았다.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맥주를 ‘음식’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몇 시간씩 맥주 한 잔 놓고 고사지내는 외국과 달리 우리는 일단 건배로 시작하여 기본 세 잔이다. ‘맛’이 아니라 ‘알딸딸함’이다. 한국에서 맥주란 맛있게 음미하는 ‘음식’이 아니라 그저 빨리 취하기 위한 효과적 ‘알코올’이다. 그 증거가 바로 ‘폭탄주’와 ‘안주’에서 찾을 수 있다.

폭탄주는 몰 개성한 맥주에 개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소주나 위스키가 지닌 부담스러움을 부드럽게 중화해준다. 물에 소주를 타는 것보다 향신료를 첨가한 탄산수에 타는 게 쉽고 맛있게 취하도록 해준다. 다음으로 양념이 많거나 치킨같이 기름진 음식과 함께 마시면 좋다는 것은 물맛 맥주를 제조하는 주류회사의 변명이다. 한국 맥주는 알싸한 맛의 안주와 어울리기 위해 맥주 고유의 풍미를 없앴다는 것이다. 물론 ‘치킨+맥주’가 주는 유혹을 안다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목이나 절대 맛없는 음식을 위한 변명은 될 수 없다.

맛없는 한국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이 있다. 먼저 앞에서 말한 대로 맥주에 새로운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폭탄주를 제조하고 치킨이나 골뱅이 같이 자극적인 안주를 곁들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새로운 안주를 만들어 보는 방법이다.

마치 이기는 한국축구가 있어야 ‘치맥’의 맛을 완성할 수 있듯, 한국 맥주를 세계 꼴찌로 만든 정치와 법률 그리고 맥주 회사를 안주삼아 씹고 또 씹는 것이다. 한국 맥주를 맛없게 만든 원인인 기업과 정부에 대한 분노를 섞어 폭탄주로 만들고 국민의 입을 우롱하는 부실한 정치를 골뱅이 파 무침과 버무리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이상사회를 말하면서 “맛있는 음식(其食美)”를 첫째로 든다. 거꾸로 해석하면 음식이 맛없으면 디스토피아라는 말이다. 음식으로만 보자면 우리도 이상사회에 근접했다. 우리 음식 맛있다. 하지만 물맛 맥주가 이상의 날개를 꺾어 현실로 끌어내린다. 좌절한 이상이다. 박제(剝製)가 된 날개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견뎌내는 최고의 방법은 그저 잘근 잘근 씹는 것이다. 우리에게 맛없는 맥주가 있는 한, 세상을 맛없게 만든 정치와 기업은 애주가들의 한(恨)서린 이빨에 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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