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7.10 08:36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것.

불교철학의 한 구절이 아니다. 하원규 한국정보통신연구원(ETR) 초빙연구원이 표현한 ‘제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정보통신기술(ICT), 로봇,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실재와 가상을 통합해 가상 물리 시스템을 구축해가는 산업적 변화과정을 일컫는다. 해당 시스템 아래에서 사물들은 자동적, 지능적으로 서로를 제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정의를 종합하면 사물과 인간, 심지어는 사물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가능해진다는 점이 4차혁명의 가장 두드러진 특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껏 사물은 소통에 있어서 수동적인 대상에 그쳤다. 그나마 컴퓨터가 그렇듯, 인간의 명령을 이해하고 임무를 수행하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사물들은 소통에서 능동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다. 인간과 대등하게 사고하고 소통하는 것을 지향하는 AI나, 사물과 사물 사이의 소통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사물인터넷(IoT)처럼 말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제4차 혁명은 상당부분 진행 중이다. 5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해온 독일의 경우 ‘인더스트리 4.0’을 통해 개인 맞춤형 증량 대량생산을 추구하고 있으며 미국도 산업인터넷을 통한 맞춤형 서비스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그밖에도 전세계적으로 보험, 금융, 자동차, 서비스업 등 경제 전반에서 탈바꿈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앞선 세 차례의 산업혁명이 그랬듯 4차 산업혁명 또한 단지 경제적 차원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회 전체의 지형도를 바꿔놓을 것임은 자명하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10년 뒤인 2026년. 4차 산업혁명의 현주소 및 전망에 기반을 두고,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구성해봤다.

[뉴스웍스=김벼리기자] 구보(38)는 “밥 챙겨먹고 다녀라”는 어머니에게 단 한마디 “예”라는 대답조차 하지 않고 집을 나선다. 

“외출이 감지되었습니다. 외출모드 전환.”

사하라의 메시지와 더불어 스마트 고글의 설정이 ‘외출’로 바뀐다. 사하라는 구보의 개인 운영체제(OS). 1년 전 “1인 1비서 시대. 구보 씨는 언제까지 뒤쳐지실 겁니까?”라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구매한 것이다. 20여년전 휴대폰 보급 광풍이 불었을 때처럼 개인비서OS에도 국가 지원금이 대폭 늘어나 큰 부담은 없었다.   

‘비서의 이름을 정해주세요’라는 요청에 구보는 내키는 대로 “사하라”라고 지었다. 매일 저녁 침상에 가만히 앉아 가상현실(VR) 장치로 사하라 사막을 둘러보는 것은 구보의 취미다.

“셰어 카(share car). 제일 싼 거로.”

주차장에 빽빽이 들어찬 차량 중 하나에서 신호음이 난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공유경제가 이렇게까지 생활 속 깊숙이 파고들 줄은 몰랐던 구보다. 자가용 차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구보는 피식 웃는다. 모임자리에 그들이 끌고 오는 차들은 매번 놀림거리로 전락한다.

‘부릉-’. 사하라를 자동차 시스템과 연동하고 안전벨트를 매니 시동이 켜진다. 자율주행 모드를 고른다. 오늘까지 끝내야 할 잔업이 있기 때문에 단 30분이라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심산이다. 목적지를 K병원으로 설정하고 보니 구보는 문득 오늘따라 어머니의 잔소리가 더욱 짜증났던 게 어쩌면 병원진료예약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몸을 이 지경까지 악화시킨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구보 자신이었다. 요새 부쩍 술자리가 많았고 폭식에 운동은커녕 걷기조차 꺼려했다. 걸음 수, 심박동, 혈압뿐만 아니라 식단, 음주, 흡연 등 구보의 모든 건강 관련 데이터를 처리·분석하는 ‘헬스케어’ 앱이 ‘간기능 이상 우려. 병원진료 요망’이라고 통보한 것은 필연이었다.
 

이를 짐작하지 못한 건 아니었으나 구보는 좀처럼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뒤이어 ‘건강보험료 1만원 인상. 내달부터 적용됩니다.’라는 건강보험 앱 팝업에 불쾌해지기 전까진.

어머니에게 느끼는 죄책감을 불안과 불쾌, 두 단어로 환원한 뒤 구보는 자동차 앞 유리를 디스플레이모드로 전환한다.

창에 띄운 문서를 살피던 중 차가 멈춘다. 빨간불이 켜진 신호등 위로 배달용 드론이 부드럽게 날아간다. 마침 구보는 집을 나서기 전에 시킨 택배가 생각난다. “A마켓 택배 위치.” 자동차 디스플레이에 지도가 펼쳐지고 그 위로 드론의 위치가 빨간 점으로 드러난다.

그때 디스플레이 오른편에 기사가 하나 올라온다.

‘페루 서쪽 해안서 7.0 규모 지진 발생…사상자 200명 추정’.

팝업을 터치하자 기사 전문이 뜬다. 다소 어색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로봇이 썼다는 걸 고려하면 놀랍다. 지구 건너편에서 지진이 발생한 지 5분이 채 안 된 시점이다.

앞서 구보는 SNS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상자까지 추정, 실시간 번역까지 하는 앱을 깔았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용자의 직업, 취미, 관심사 등과 연관이 있는 기사들이 자동으로 선정, 올라오는 시스템도 갖춘 앱이다.

이른바 ‘로봇 저널리즘’으로 이 세상은 속보의 천국이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 속보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게 아닐까. 구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찍어 올린 현장사진들을 무표정하게 넘기며 생각한다.

 

<中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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