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19 11:54
제2차 세계대전 독일 유보트(U-995) 통신 안테나. (사진제공=최일);
제2차 세계대전 독일 유보트(U-995) 통신 안테나. (사진제공=최일);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은 전파가 통하는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독자들은 밀폐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물속에 있는 잠수함은 마치 엘리베이터를 타고 물속으로 들어간 것과 같은 것이기에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들을 수도 없다. 

그런데 잠수함은 통신이 필요하다. 잠수함에 작전명령을 내려야 하고 필요한 정보도 제공해야 한다. 핵미사일을 실은 채 물속에서 대기하고 있는 SSBN 잠수함은 유사시 발사명령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세상과 단절돼 물속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는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중요한 뉴스나 프로야구 소식도 전달하고 승조원 중 경조사 소식도 전해야 한다. 

물론 잠수함 통신은 육상에서 통신기를 들고 호출하여 교신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물속에 있는 잠수함과 통신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제한되고, 잠수함의 생명이 은밀성인데 필요하다고 바로 부를 수도 없다.

물속에 있는 잠수함과 통신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잠수함이 물속에 있다 할지라도 유선전화기가 있다면 통화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해저에 착저한 잠수함이 유선부이를 수면에 띄우면 이 부이안에는 전화기가 들어있어서 수상에 있는 인원과 유선통화를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우는 잠수함이 조난이나 시험을 할 때에야 해당된다. 수중에서 기동중인 잠수함과 유선전화기를 사용할 수 없다.

물속에는 전파가 도달하지 않으므로 음파를 이용해야만 한다. 그래서 잠수함에는 수중통신기가 있고, 잠수함과 같이 작전하는 수상함에도 수중통신기가 있다. 이 수중통신기는 송∙수신기가 물속에 잠겨있어야 한다. 잠수함이 수중에 있고 인근 해상에 우군 수상함이 있는 경우 육상지휘소는 수상함에 전파를 이용해서 전보를 보내고 수상함은 수중통신기를 통해서 잠수함에 그 내용을 전달해줄 수 있다.

하지만 잠수함은 우군 세력이 없는 곳에서 작전하는 경우가 많다. 인근에 우군 수상함이 있다고 해도 수천㎞나 가는 전파를 이용하는 통신기에 비해 음파를 이용하는 수중통신기는 그 통달거리가 통상 5000m를 넘지 않을 정도로 매우 짧다. 또 음파를 이용한 정보처리속도는 매우 늦다. 전파를 이용한 통신기는 평상시 대화하는 수준으로 교신해도 의사가 전달되지만 음파를 이용한 수중통신기를 이용한 통신은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야 의사가 전달된다. 

음파를 이용할 경우 이러한 제한점들이 많기 때문에 잠수함에 보내는 전보는 통상 음파가 아니라 전파를 이용한다.

잠수함이 쉽게 전파를 이용하려면 물 밖으로 나오면 된다. 실제 2차대전 잠수함들은 대부분 통신안테나가 갑판 위에 설치되어있고 수상상태에서 통신을 할 수 있었다. 필요할 때만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잠수함을 탐지하는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제2차 세계대전 말기부터 수상에서 작전하는 잠수함은 점차 사라졌다. 스노클 마스트를 만들어서 물속에서도 공기를 흡입하여 엔진을 돌릴 수 있도록 한 것과 마찬가지로 통신기안테나도 물속에서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마스트 형태로 바뀌었다. 결국 통신을 하려면 완전부상은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잠망경심도까지는 떠올라 안테나를 올려야만 한다.

오늘날에는 잠수함을 탐지하는 기술이 더 발전되고 있기에 잠수함들은 잠망경심도보다 더 깊은 곳에서도 통신을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우선 잠수함은 깊은 심도에 위치하고 통신안테나를 부유체로 만들어 연을 날리듯이 올리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깊은 심도에서도 통신이 가능하고 혹시 안테나가 발각되면 감아서 넣거나 유사시에는 끊어버리고 가버리면 되기에 잠수함의 생존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안테나 조차도 수면에 내지 않고 완전 수중에서 통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간에게는 필요가 있으면 창조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전파는 물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물속으로 들어가는 전파를 찾아낸 것이다. 전파의 주파수가 낮을수록 물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가 있다.

예를 들면 VLF(Very Low Frequency) 주파수대역은 3kHz~30kHz 인데 수중 약 15m까지 전파가 전달된다. 우리나라에도 이 VLF 송신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저주파인 ELF(Extremely Low Frequency) 주파수대역는 3Hz에서 3kHz인데 수심 약 100m까지 전달되고, 특수안테나를 이용하면 수심 400m까지도 전달된다.

그런데 이러한 저주파 전파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서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송신시설이 필요하다. 미국 미시간주에 있는 ELF 송신소는 넓은 평지에 길이가 22.5㎞나 되는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고 양쪽이 접지되어 있다 이러한 시설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 외에도 몇 개국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VLF나 ELF가 없는 잠수함들은 전문수신을 위해서 통신안테나를 수면상으로 올린다. 수중에서 은밀하고 정숙한 작전을 해야 하는 잠수함이 통신을 위해 잠수함이 계속 수면 가까이에 머무르면서 통신안테나를 수면에 내놓고 있을 순 없다. 그래서 육상지휘소와 잠수함은 사전에 통신시간을 약속한다. 육상지휘소가 전보를 보낼 시간을 미리 정해주고 잠수함은 그 시간에 수면 가까이 떠올라 전보를 수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상상태가 너무 좋지 않거나 함내∙외 상황이 통신마스트를 올리지 못할 경우가 있다. 따라서 육상지휘소는 해당 전문을 한 번 만 보내는 것이 아니고 여러 번 보낸다. 그러면 잠수함은 그 중 한 번이라도 수신하면 된다.

전문을 전파를 이용해서 보내면 우군 잠수함만 듣는 것이 아니라 적국도 들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전문을 암호화하거나 암호장비를 이용해서 적이 잡음을 들을 수는 있을 뿐 무슨 내용인지는 알지 못하게 한다. 

잠수함이 송신을 하면 위치가 노출될 수 있으므로 일반적으로 잠수함은 송신을 하지 않고 수신만 한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최대한 짧은 시간에 송신을 한다. 

잠수함에서 꼭 송신할 내용이 있지만 위치 노출을 방지해야 할 경우 소모용 통신부이(expendable buoy)를 사용하기도 한다. 송신할 내용을 부이에 저장해 두고 잠수함이 이탈한 뒤 일정시간 후에 작동하여 송신을 한다. 그리고 그 수명을 다하면 부이는 가라앉는다.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사진제공=최일)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사진제공=최일)

잠수함 영화 ‘크림슨타이드’를 보면 전문수신을 위해 통신케이블을 사용하다가 심도가 깊어져서 수신을 못하고 통신부이를 띄우는 장면이 나온다. 잠수함 운용에 있어 통신은 중요하면서도 특이한 영역에 속하기에 잠수함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잠수함 통신은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잠수함들은 어떻게 하면 노출되지 않고 통신을 할 수 있을까를 계속 연구한다. ELF에 이어 최근에는 위성을 이용한 레이저 신호를 이용해서 수중 잠수함과 통신하는 방법도 개발 중이다. 그리고 수신안테나도 기존 고정형에서 휘프형, 루프형, 예인형 등으로 여러 형태로 개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잠수함은 들키지 않고 수중 작전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통신을 하고 있다. // 최일 잠수함 연구소장

P.S. 경남 김해에 있는 잠수함연구소는 국내 최대규모의 세계 잠수함 기록물 전시관(International Submarine Archive)입니다. 이메일 kommandantchoi@gmail.com으로 방문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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