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01.26 17:41
1884년 폴란드 과학자 스테판 드즈위케치가 개발한 최초의 전기 추진 잠수함 실물.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해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제공=최일)
1884년 폴란드 과학자 스테판 드즈위케치가 개발한 최초의 전기 추진 잠수함 실물. 러시아 상트페테부르크 해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제공=최일)

"왜 재래식 잠수함을 디젤-전기 잠수함이라고 하는가요. 자동차에는 가솔린기관이 있는데 잠수함에는 가솔린기관이 없나요?" 

"가솔린자동차는 디젤자동차보다 승차감이 좋고 조용하며 매연도 적어 많이 팔립니다. 그런데 왜 잠수함에는 가솔린기관을 사용하지 않고 디젤기관을 쓰는 것일까요?" 

필자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재래식 잠수함은 전기잠수함이다. 전기모터가 프로펠러를 돌려서 추진력을 얻는데 전기모터의 동력은 바로 배터리이다.

1884년 폴란드 과학자 스테판 드즈위케치는 최초의 전기 추진 잠수함을 제작했다. 이 잠수함은 최고 4노트의 속력을 냈다. 이때 사용한 배터리는 건전지 즉 재충전이 불가한 1차전지였다.

잠수함이 해상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해상에서 재충전이 가능한 배터리와 재충전용 기관이 필요했다. 

해상에서 배터리 충전이 가능한 최초의 잠수함은 존 홀란드가 개발한 홀란드급 잠수함이다. 아일랜드의 엔지니어인 홀란드는 현대 잠수함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1897년부터 생산된 홀란드급은 수중에서 전기모터와 배터리를 이용해 수일 동안 잠항이 가능했다. 수상에서는 가솔린기관으로 배터리 충전을 했다. 이때는 디젤기관이 개발되기 이전이었다.

그럼 왜 가솔린기관이 먼저 나왔는데 오늘날 디젤기관이 잠수함의 주기관이 되었을까. 

가솔린기관과 디젤기관은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연료가 다르다. 가솔린기관은 가볍고 휘발성이 좋은 휘발유를 사용하고 디젤기관은 더 무거운 경유를 사용한다.

작동원리도 차이가 있다. 가솔린기관은 실린더가 압축된 상태에서 점화 플러그로 점화하고, 디젤기관은 실린더가 압축된 상태에서 연료가 분사돼 자연 점화가 이뤄지면서 연소∙폭발한다. 

자동차의 가솔린기관과 디젤기관의 장단점을 보면 가솔린은 조용하고 승차감이 좋은 반면, 디젤은 시끄럽지만 열효율, 즉 연비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양 기관의 단점은 자동차에만 해당된다. 선박에서 가솔린 기관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선박에는 주엔진을 밀폐된 기관실에 설치한다. 휘발성이 있는 가솔린을 연료로 사용하면 기관실 내 휘발성 증기와 공기가 섞여서 가연성 혼합기체가 생성, 화재나 폭발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박에서도 기관실 밖에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는 비상발전용으로 가솔린기관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 기관으로 가솔린기관은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잠수함은 기관실뿐 아니라 선체 전체가 수상선박 기관실보다 더욱 밀폐되어 있으므로 가솔린기관을 쓰지 않고 디젤기관을 사용한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디젤잠수함이 재래식잠수함의 대명사가 되었다.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사진제공=최일)
최일 잠수함연구소장 (사진제공=최일)

디젤기관과 관련된 몇 가지 상식을 살펴보자.

1. 잠수함에서 가솔린기관, 증기기관, 등유기관도 사용한 적이 있다.

1897년도부터 생산된 최초의 현대식잠수함 홀랜드함에는 가솔린기관이 있었다. 하지만 홀랜드급 잠수함이 나온 시기에 잠수함용으로 증기기관도 있었다. 1899년 프랑스 잠수함 나발함은 증기기관을 사용했는데 잠항시간이 10~15분에 불과했다. 결국 잠수함 증기기관은 효율성이 떨어져서 도태되고 가솔린 기관을 주로 이용하게 됐다.

독일의 현대식 1번 잠수함은 U-1인데 1906년도 취역했다. 디젤엔진은 1893년 독일에서 개발되었지만 독일잠수함은 당시 디젤기관을 사용하지 않고 등유기관을 사용하다가 1912년 이후에야 디젤기관을 사용했다. 

2. 디젤은 사람 이름이다.

독일의 발명가이자 엔지니어인 루돌프 디젤은 여러 시험 끝에 열효율이 높은 기관을 만들어 1897년 성공적으로 시험에 성공하고 이 기관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디젤기관'으로 특허를 냈다.

3. 세계 최초의 디젤잠수함은 독일이 아닌 프랑스 잠수함이다.

디젤기관을 잠수함에 처음 탑재한 나라는 프랑스였다. 1905년 건조한 프랑스 에그레트함은 세계 최초의 디젤잠수함이다.

4. 1차대전 발발 시 이미 잠수함의 주 기관은 디젤이었다.

1914년 1차대전 개전 시 지구상에는 약 251척의 잠수함이 있었다. 이중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 모두 디젤기관을 사용했다.

5. AIP 잠수함에도 디젤기관이 있다.

AIP는 외부 공기없이도 내부에서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켜 동력을 생성해서 잠수함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출력이 충분하지 않아 오늘날 AIP는 잠수함의 주동력원이 아니라 기존 디젤-전기 추진잠수함의 추가동력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존 재래식잠수함에서 사용하는 디젤-전기 추진방식은 그대로 있고, 추가하여 AIP 시스템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AIP 잠수함에도 디젤기관이 있다.

6. 핵 추진잠수함에도 디젤기관이 있다.

대부분 핵추진 잠수함에도 디젤기관이 있다. 이는 원자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 경우 비상전원을 공급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7. 순수 전기잠수함의 출현은 가능하다.

디젤기관이 없는 순수 전기잠수함은 아직 실용화되지 않았지만 개념 연구 결과는 네덜란드에서 발표된 바 있다. 디젤기관과 연료탱크, 스노클 계통을 모두 제거하고 그 공간에 고성능 리튬배터리를 탑재해 순수 전기잠수함을 만든다는 개념이다.

또 AIP 성능을 극대화하여 역시 디젤기관을 없애고 배터리와 AIP만 있는 잠수함을 만든다는 개념도 있다. 따라서 미래에는 디젤기관이 없는 전기잠수함이 나올 수도 있다. // 최일 잠수함 연구소장

P.S. 경남 김해에 있는 잠수함연구소는 국내 최대규모의 세계 잠수함 기록물 전시관(International Submarine Archive)입니다. 이메일 kommandantchoi@gmail.com으로 방문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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