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0년 전 물속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960년대 냉전 당시 미∙소 잠수함 간에도 첨예한 첩보수집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잠수함들은 북태평양의 캄차카 반도에 위치한 소련 미사일 탑재 잠수함 기지인 페트로파브로브스크 (Petropavlovsk-Kamchatsky) 인근에서 첩보수집을 했다. 

당시 소련 순항미사일은 사거리를 늘려가며 250마일 떨어진 곳에서 미국 항모를 공격할 수 있었기에 미국으로서는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미국 잠수함은 이곳에서 소련의 새로운 순항 미사일 발사 시험을 첫 단계에서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소련 잠수함이 얼마나 많은 미사일을 얼마나 빨리 연달아 발사할 수 있는지, 미사일의 발사궤도는 어떤지를 알기 위해 전자파를 획득하고 교신내용을 도청했다. 분석가들은 미사일의 추진체계와 미사일의 약점을 평가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미사일 발사 시 뿜어내는 화염을 촬영했다.

미국 USS Tautog(SSN-639)함도 그 중의 한 척이었는데, Tautog함은 당시 최신예 핵추진공격 잠수함인 스털전급으로 약 4000톤이었다. 1970년 6월 20일 Tautog함은 이 해역에서 소련 Echo-II급 잠수함 추적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소련의 최신 핵추진잠수함이었던 Echo-II급 잠수함은 약 4400톤으로 순항 미사일 8기를 탑재하고 미국 항공모함을 추적하기 위하여 분산 배치되어 있었기에 미국은 Echo-II급 잠수함 정보가 필요했다. 

Tautog함은 소련 영해에 들어서서 Echo-II급을 접촉하고 추적을 시작했다. 표적 잠수함은 페트로파브로브스크 기지에서 출항하여 서쪽으로 가고 있었다. 당시 소련 잠수함들은 미국 잠수함의 추적을 예상하고 대응기동을 하곤 했다. Echo-II 잠수함 역시 미국잠수함의 추적에 대비하여 함미 탐색을 불규칙하게 하곤 했는데 Tautog함이 12~13노트로 약 40미터에서 약 60미터로 심도를 변경하였을 때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지며 큰 충돌이 일어났다.  

Tautog함의 함교탑이 박살나는 큰 소음이 났으며 이어서 표적 Echo-II의 추진기가 Tautog함의 선체를 파고 드는 소리가 났고 Tautog함은 순식간에 함미 쪽으로 거의 30도가 기울어졌다. 물건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승조원 일부는 자다가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운좋게 Tautog함은 압력선체는 손상을 입지 않았고 사상자도 없었다. Tautog함은 표적 Echo-II 잠수함의 프로펠러가 찢겨져 나가는 소음, 선체가 깊은 수심에 가라앉으며 깨지는 소음, 주부력탱크의 공기를 부는 소음 등 깨지고 터지는 소음을 들었는데 그 소음들이 이내 조용해졌으므로 90명 이상 편승한 소련의 Echo-II급 잠수함이 승조원 전원과 해저에 침몰한 것으로 판단했다. Tautog함은 부상 또는 잠망경 심도로 올라가지 않고 수중으로 신속히 현장에서 이탈을 시도했다. Tautog함은 우현으로 약 10도가 기울어진 채로 소련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동쪽으로 침로를 잡고 12노트 속력으로 이탈했는데 가속을 하면 더 심하게 기울어지고 함교탑에서 금속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소련 영해로부터 150~200마일 떨어지고 나서야 Tautog함은 부상하였는데 함교탑이 망가져서 해치를 열수가 없었다. 갑판 출입용 해치로 나와서 보니 함교탑이 종잇장 구겨진 것 같았고, Echo-II급 잠수함 추진기 파편이 함교탑 상부에 박혀 있었다. 잠망경과 마스트들도 모두 손상을 입었기에 통신비상안테나를 설치하고 사령부에 소련 잠수함과의 충돌사고를 보고 했다. 사령부는 Tautog함에 즉각 진주만으로 복귀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7월 1일 진주만에 도착하자 밤이 깊어질 때까지 외항에 대기시키고 등화관제 후 조용히 입항토록 했다. 그리고 함교탑을 캔버스로 덮은 채 건선거로 이동했다. 건선거는 선박을 수리하거나 청소할 때 배를 넣을 수 있도록 만든 구조물로 해안에서 선박이 출입할 수 있도록 입구에 수문과 급배수 장치를 갖추고 있다.

Tautog함 함장 발더스톤(Buele G. Balderston)은 전 승조원을 식당에 집합시키고 충돌사고 관련 공식조사 외에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승조원들은 하루 더 함내에서만 대기했고 비밀을 누설하지 않기로 선서를 한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승조원을 포함해서 허가되지 않은 어느 누구도 손상된 부위를 볼 수 없었는데, 한 승조원이 기념품으로 간직하기 위해 추진기의 잔해를 사물함에 보관했다가 몇 달 후에 보안요원에게 발각되어 압수당하기도 했다. 

미국 잠수함이 소련 잠수함과 충돌했으며 아마 그 소련 잠수함은 침몰되었을 것이라는 소식은 태평양함대 사령관, 해군총장, 합참의장을 경유하여 펜타곤과 백악관으로 보고되었다. 모두 구두로만 행하여졌고 어떤 서류도 남기지 않았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이 보고를 받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정보당국자는 녹음 내용을 분석하여 소련 Echo-II급 잠수함이 침몰했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이를 공식 발표하지 않기로 하고 어떤 기록물도 남기지 않았다. 

이렇게 이 사건은 조용히 역사에 묻히는 듯 했는데…… 20여년이 지난 후 반전을 맞이했다.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소련 잠수함 함장을 역임한 바그다사리안(Boris Bagdasaryan)이 20여년 전 자신이 미국잠수함과 충돌한 적이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었다. 당시 자신이 지휘했던 잠수함은 검은 리라(Black Lila)라고 불리던 Echo-II급 잠수함이었는데 공식 함명은 K-108이었다. 그는 다른 잠수함 함장으로 10년 이상 근무한 뒤 K-108 함장으로 부임했다. 바그다사리안은 소신있고 실력있는 함장이었으며 정치장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미국 잠수함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베트남으로 가던 미국 전함 뉴 저지호(New Jersey)에 대해 모의 공격을 하고, 괌을 출항한 미국 SSBN을 추적하기 위해 미국 영해에 들어간 경력으로 인해 소련해군에서 가장 대담한 함장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K-108은 사고 당시 훈련 중이었으며 심도 40미터에서 속력 5노트로 기동하고 있었다. 육상 기지의 전문 수신을 위해 잠망경 심도로 올라가서 전문 수신 후 40미터로 복귀하여 함미탐색을 위해 우현으로 90도 선회할 때 이상소음을 접촉했으며 곧 이어 큰 충돌이 발생했다. 한쪽 프로펠러는 떨어져 나갔고 선체는 찢겨졌으며 긴급 부상을 시도했지만 함수트림이 20도에서 30도까지 기울어지며 심도는 계속 증가되었다. 함장은 전속 후진을 지시했고 함은 겨우 부력을 얻어 수면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사고 직후 음탐사가 표적 잠수함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를 들었기에 바그다사리안 함장은 미국 잠수함과 충돌했고 그 잠수함을 침몰시킨 것으로 생각했다. K-108은 15노트로 사고해역을 벗어나면서 미국 잠수함으로 추정되는 잠수함과 충돌을 했으며 그 잠수함의 침몰소음을 들었다고 육상사령부에 보고했다.

K-108은 한 개 프로펠러만 사용하여 기울어진 채로 모항에 복귀하였는데 우현 추진축은 망가졌으며, 외부 선체에는 큰 구멍이 뚫려져 있었다. Echo-II급은 이중선체였는데 만일 단일선체였다면 승조원들은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미국 잠수함을 침몰시켰다고 믿은 소련도 이 사고를 비밀로 유지했다. 

미국은 소련 잠수함을, 소련은 미국 잠수함을 침몰시킨 것으로 알고 서로 쉬쉬하고 있었던 이 사건은 결국 20여년이 지나 양쪽 모두 사상자가 없었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소련 함장이었던 바그다사리안은 Tautog함장 발더스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었지만 발더스톤은 1984년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성사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1991년 미국 시카고 언론 매체인 Chicago Tribune에서 보도했다. 1999년 발간된 미∙소 냉전 수중첩보전을 다룬 Blind Man’s Bluff 책자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 최일 잠수함 연구소장

P.S. 경남 김해에 있는 잠수함연구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세계 잠수함 기록물 전시관(International Submarine Archive)입니다. 이메일 kommandantchoi@gmail.com으로 방문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