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3.07.21 09:00

[뉴스웍스가 만난 사람]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 "韓 OLED vs 中 LCD 구도 길어질 것"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가 지난 18일 뉴스웍스와 서울 양재동 유비리서치 사옥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전다윗 기자)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가 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유비리서치 사옥에서 뉴스웍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전다윗 기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지난해에도 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 1위는 중국이 차지했다. 42.5%의 점유율로 2위 한국(점유율 36.9%)을 근소한 차이로 따돌렸다. 한국은 2004년부터 압도적 차이로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지켜왔지만, 격차가 서서히 좁혀지더니 2021년부터는 중국에 밀려 선두를 내줬다. 현재는 한국과 중국이 전체 시장의 80%가량을 점유하며 1~2위를 다투는 상황이다. 

이런 구도를 깨기 위해 올해 초 정부는 '세계 1위 탈환'을 목표로 2026년까지 62조원을 투자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18일 뉴스웍스와 서울 양재동 유비리서치 사옥에서 만난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는 "우리 기업들이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1995년 일본 도쿄대학교 공학부 응용화학과 박사 학위를 받은 이 대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구원, 삼성SDI 수석연구원, 모디스텍 대표 등을 역임한 디스플레이 전문가다. 현재 디스플레이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유비리서치 대표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중국은 전략적인 국가다. 정부 차원에서 디스플레이 업체에 막대한 지원을 한다. 중국 기업들은 형식상 민간 기업의 형태지만 사실상 국영 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정부와 파이프가 연결됐다고 보면 된다"며 "겉보기엔 개별 기업 간의 경쟁이지만, 사실은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중국 정부와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지기 힘든 구조"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한국 디스플레이가 17년간 지켰던 왕좌를 내준 것도, 파격적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LCD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탓이 크다. 중국 기업들은 적자까지 내며 LCD 패널을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공급해 사업을 확장했고, 발생한 손해는 정부 지원금을 통해 메꿨다. BOE는 2016년부터 5년간 1조6000억원, CSOT는 9200억원의 보조금을 중국 정부로부터 받았다. LCD 패널을 팔면 팔수록 손해를 입게 된 국내 기업들은 LCD 사업을 사실상 접은 상태다. 

가격 경쟁에서 밀린 국내 기업들은 수익성이 높고 더 고도화된 기술이 요구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OLED를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한국 디스플레이 매출에서 LCD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50%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4%로 줄었다. 그 빈 자리는 자연스럽게 OLED가 채웠다. 그 결과 한국은 지난해 기준 80%가 넘는 점유율로 글로벌 OLED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OLED 주도권에서도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소형 OLED를 중심으로 중국과의 점유율 격차가 서서히 줄어드는 추세다. 기술력 격차 역시 상당히 좁혀진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다 OLED에서도 LCD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유비리서치 사옥에서 뉴스웍스와 만난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 (사진=전다윗 기자)
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유비리서치 사옥에서 뉴스웍스와 만난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 (사진=전다윗 기자)

하지만 이 대표는 OLED의 한국과 LCD의 중국이 경쟁하는 구도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기술력 격차가 많이 줄었다지만, 그건 연구개발(R&D)의 이야기다. 제조 기술 차이를 눈여겨봐야 한다. 개발은 중국 기업이 국내 기업을 카피해 똑같이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디스플레이 컨퍼런스 등에 전시된 한국과 중국 제품의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인다"며 "하지만 양산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특허 등에 걸려 죄다 바꿔야 한다. 한국 기업과 중국 기업의 R&D 기술력 차이가 1~2년 수준이라면, 제조 기술 차이는 4~5년 이상 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OLED, 특히 중대형과 대형 OLED 분야는 당분간 국내 기업들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애플 등을 고객사로 보유한 국내 기업들과 달리 중국 내부엔 톱 브랜드가 없다. 가령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OLED 생산을 늘린다고 해도 이걸 사줄 업체가 없다는 거다. 중국 BOE가 8.6세대 OLED 라인 투자를 망설이는 이유도 여기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LCD 때처럼 OLED를 무작정 밀어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이미 디스플레이 1위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제는 실리를 챙겨 돈을 벌려고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이 대표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지 오래인 한국이 중국처럼 무작정 디스플레이 산업을 지원하는 건 말도 안 된다"라고 진단하면서 디스플레이 산업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한 정부의 영리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최근 정부가 디스플레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투자분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했다. 안 하는 것보단 낫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 특성상 직접 지원을 받는다고 디스플레이 기업이 마음대로 투자를 늘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디스플레이 업체들의 투자는 최소 수조원 단위다. 디스플레이의 전방 산업인 세트 업체들의 수요가 확실해져야 투자를 결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차라리 OLED가 적용된 완제품 시장을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정부가 전기차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OLED TV 등을 구입할 때 지원금이나 세제 혜택 등을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OLED 적용 제품을 수출할 때 장려금을 주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소비자들이 OLED 제품을 구매하게 만들어야 한다. OLED 제품이 잘 팔리면 세트업체들도 생산을 늘리게 된다"며 "세트업체들이 패널을 많이 살 것이란 확신이 있으면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지원이 없어도 스스로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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