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09.15 11:56
한 금융소비자가 KT가 키오스크 업체 엔에스스마트, KB손해보험과 합작으로 선보인 실손보험 다이렉트 청구 플랫폼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하고 있다. (사진제공=KT)
한 금융소비자가 KT가 키오스크 업체 엔에스스마트, KB손해보험과 합작으로 선보인 실손보험 다이렉트 청구 플랫폼을 통해 보험금을 청구하고 있다. (사진제공=KT)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우리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금융환경은 최근 10년간 '경천동지'할 정도로 달라졌다. 스마트폰에서 클릭 몇 번으로 계좌를 만들고, 금융거래를 하고, 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는 디지털금융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실손보험금 청구 간소화는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도개선 권고를 시작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실손보험 청구간소화 문제가 14년이 지난 지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15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13일 실손보험금 청구를 전산으로 자동 처리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심사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만 추가 논의를 통해 최종 결정하겠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의료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통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개정안은 보험 가입자들이 요양기관(병·의원)에 요청해 실손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병·의원이 진단서 등 관련 서류를 전산화된 형태로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을 거쳐 보험회사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실손보험 청구를 하려면 보험 가입자가 직접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해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보험사에 제출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보험금 청구 절차가 번거롭다 보니 보험금이 소액이면 청구를 포기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이로 인해 휴면 실손보험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청구상 불편 등으로 보험 소비자들이 청구하지 않은 실손 보험금이 연평균 약 2760억원에 달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그 만큼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험사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반대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지 않다. 개정안이 통과돼 보험금 청구가 자동화되면 더 많은 보험금을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하고,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한 손해율은 더 높아질 수 가능성이 높은데도 개정안에 찬성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지급해야 할 보험료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손보험 손해율을 높인 주범으로 꼽히는 비급여 과다 청구가 줄어 손해율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게 보험업계의 입장이다.

정부는 이 개정안이 지난 6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해 법사위로 올라가면서 입법에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의료계가 환자들의 의료정보가 중계기관에 모이면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문제 삼아 반대하면서 또 한 번 법사위에서 표류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금융위원회는 법체계의 정합성에 문제가 없는 개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시했고, 소비자단체들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특정 이해기관들의 이익적 측면이 아니라 오로지 실손보험 가입 소비자의 편익 제고와 권익증진을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면서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 누가 봐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필요한 게 현실이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는 3997만명이고, 연간 청구 건수가 1억건에 이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보험금 청구를 간편하게 하고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지금은 국민의 편익증진을 위해 이해당사자들의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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