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우성숙 기자
  • 입력 2023.11.09 10:28
(자료제공=통계청)
(자료제공=통계청)

[뉴스웍스=우성숙 기자] 물가 오름세가 심상찮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3.8%나 올랐다. 지난 3월(4.2%)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먹거리 물가가 걱정이다. 농축수산물은 전년 동월 대비 7.3% 상승했고, 이 가운데 농산물은 13.5% 올라 2021년 5월(14.9%) 이후 29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오른 데다 이상 저온 현상 탓에 과일·채소류 같은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다.

문제는 물가상승세가 정부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데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3월(4.2%)까지도 4%대였지만 이후 지속 둔화하면서 4월(3.7%) 3%대로 떨어졌고, 6월(2.7%) 2%대로 내려왔다. 하지만 8월(3.4%) 들어 다시 3%대로 반등했고 9월엔 3.7%를 기록했다. 10월엔 이보다 0.1%포인트 올라 3개월째 상승 폭이 확대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 2일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즉시 가동할 것"이라고 했다. 각 부처 차관이 주요 품목 물가안정책임관이 돼 현장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런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가 오늘(9일)부터 본격 가동된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열고 김장재료 수급안정대책 등 물가·민생 안정대책을 점검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열린 첫 물가관계차관회의다.

이번 회의를 시작으로 모든 부처 차관은 각자 소관 품목의 가격·수급을 점검하고 품목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하게 된다. 몇몇 물가 담당 부처 중심으로 대응하던 기존 물가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각 부처가 현장대응반을 설치해 현장 중심의 점검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런 활동은 매주 열리는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공유해 부처 간 공조가 필요한 사항은 모두가 힘을 모아 즉각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경기침체 우려로 물가를 잡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인 기준금리를 올리고 재정 투입을 줄이는 긴축 경제정책을 쓰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물가안정에 총력전을 펼치겠다는 것은 고육지책이자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지금의 고물가가 아무리 고유가와 고금리라는 외생 변수의 영향이 크다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허리띠를 조일 필요가 있어서다.

하지만 전통적 정책수단을 제쳐 두고 행정력을 동원해 물가를 억누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성공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08년 고유가와 곡물가격 급등으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생활필수품 52개를 따로 선정해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특별 관리하는 'MB물가지수'를 도입했지만 가격 오름세를 막지는 못했다. 정책 시행 뒤 3년간 MB물가지수는 20.42%나 올라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12%)을 훨씬 앞질렀다.

정부가 업계의 팔만 비틀어 가격을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반발력도 커져 한 순간에 폭등세로 돌변하는 것이 물가의 생리다. 정부가 물가안정에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하는 것은 좋지만 이를 위해 행정력을 과도하게 동원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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