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4.02.07 18:00

'30% 이상 지분 가치' 영구채 문제 해결 필요…인수 이후 경영권 보장해야 대기업집단 참여 가능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뉴스1)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뉴스1)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산업은행과 하림그룹의 HMM 매각 협상이 줄다리기 끝에 최종 결렬되면서  재입찰 시나리오가 수면 위에 오르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하림그룹과 우선협상대상자 경쟁을 벌인 동원그룹을 비롯해 재무건전성이 우수한 현대자동차그룹, 포스코그룹, 한화그룹 등의 참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성장동력 찾기에 분주한 CJ그룹도 항만물류와 연계해 타진 가능성이 점쳐진다.

◆협상 결렬 쟁점은 ‘사모펀드 관여’

7일 HMM 매각 측인 산업은행(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는 입장문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인 하림그룹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매각 협상이 무산됐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앞서 산은과 해진공은 지난해 12월 하림그룹(팬오션·JKL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주식매매계약 및 주주간계약 협상을 진행했다. 하림그룹은 HMM 지분 57.9% 인수에 6조4000억원을 써내 동원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양측은 지난달 23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양측의 요구사항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이달 6일로 마감 시한을 연장했다. 협상의 쟁점은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사모펀드 운용사 JKL의 지분 매각 제한으로 알려졌다. 하림그룹은 5년간 지분 매각 제한에서 JKL을 제외할 것을 요구했고, 해진공은 이러한 요구에 불응했다. 하림그룹은 사모펀드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속성을 고려했을 때 매각대금 조달 차원에서 JKL의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해진공이 거절 의사를 건네자 하림그룹은 JKL의 지분 매각 제한기간을 3년으로 줄여달라는 제안을 다시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해진공은 이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선을 그었고, 되레 JKL을 컨소시엄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역제안했다는 후문이다.

하림그룹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향후 JKL의 노골적 엑시트 출현에 ‘졸속 매각’ 내지 ‘먹튀’ 매각이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측면으로는 하림그룹에 대한 산은과 해진공의 불신이 드러난 장면으로 해석된다.

하림그룹은 이날 입장문을 발표하고 “그동안 은행과 공기업으로 구성된 매도인 간의 입장 차이가 있어 협상이 쉽지 않았다”며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앙금 섞인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명예 공학박사 학위수여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지난해 10월 19일 한양대학교 백남학술정보관에서 열린 명예 공학박사 학위수여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동원그룹)

◆동원그룹 재입찰 기회 얻을까…‘자체 자금조달’ 관건

HMM 매각 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이제 재입찰 시기와 새로운 후보자군이 화두가 됐다.

앞서 하림그룹과 우선협상대상자 경쟁을 벌인 동원그룹 측은 재입찰 참여를 두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지금은 (재입찰 시점을) 내놔야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을 아꼈다.

다만 동원그룹의 재입찰 참여는 산은과 해진공에게 여전히 부담스럽다. 이번 협상 과정을 통해 산은과 해진공은 매각 핵심 조건을 모두 밝힌 상황이다. 때문에 동원그룹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동원그룹은 HMM 인수를 위한 인수금융 등 차입금을 제외하더라도 2조~3조원 수준의 현금이 부족하다. 하림그룹과의 경쟁 당시 우량 자회사인 스타키스트 전환사채(CB) 발행(5000억~6000억원)을 추진했으며, 여기에 비상장 계열사의 IPO(기업공개)와 본사 사옥 유동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했다.

그럼에도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자금조달의 완전 충족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사모펀드 운용사들의 투자 참여가 불가피할 것으로 평가했다. 산은과 해진공이 사모펀드의 완전 배제와 자체 자금조달 가능이라는 선결조건을 달고 있는 만큼, 동원그룹의 재도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HMM의 4600TEU급 컨테이너선 운항 모습. (사진제공=HMM)
HMM의 4600TEU급 컨테이너선 운항 모습. (사진제공=HMM)

◆재계 서열 10위권 희망… ‘영구채’, 진입장벽

문제는 산은과 해진공이 인수적격후보로 꼽을 수 있는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 등이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현대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의 재계 순위는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3위와 5위다. 우수한 재무건전성과 풍부한 유동성으로 외부 수혈 없이 HMM을 품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HMM 인수에 뛰어든다면 자동차운반선을 영위하는 현대글로비스가 주체가 될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금성 자산 규모만 2조원 이상을 확보하고 있어 현대차의 지원사격이 더해진다면 인수가 어렵지 않다. 현대차는 지난해 3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 규모가 20조3127억원으로 집계된다. 포스코홀딩스 역시 지난해 3분기 기준 현금성 자산이 7조1470억원으로 적지 않다.

이들 외에 한화그룹과 CJ그룹도 인수적격후보로 꼽힌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고 ‘한화오션’으로 사명을 바꾸는 등, 기존 방산분야와 조선분야의 시너지를 꾀했다. 물류사업의 한익스프레스를 계열사로 두면서 HMM 인수를 통한 한화오션과 한익스프레스의 통합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인한 재무부담이 약점이지만, 그룹 차원의 총력전이 펼쳐진다면 자금 자체조달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CJ그룹도 인수적격후보로 거론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해 그룹 창립 70주년을 맞으면서 성장 정체를 언급했다. 그룹의 위기 때마다 굵직한 인수합병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만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승부사 기질이 발휘될 가능성이 있다. HMM을 인수하면 항만물류를 영위하는 CJ대한통운과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하지만, 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인해 자회사들을 잇따라 매각하고 있는 실정이라 당장 HMM 인수대금 마련이 여의치 않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7월과 10월 중국 자회사 지샹쥐(吉香居) 지분 60%를 3000억원에, 브라질 자회사 CJ셀렉타 지분 66% 전량을 4805억원에 각각 매각한 바 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HMM 인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 자동차운반선(PCTC) 글로비스 센추리호. (사진제공=현대글로비스)
현대글로비스 자동차운반선(PCTC) 글로비스 센추리호. (사진제공=현대글로비스)

업계 일각에서는 산은과 해진공이 재입찰에서 대기업집단을 대거 끌어들이고 싶다면 ‘당근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지난해 11월 이기호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HMM지부장은 HMM 매각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 영구채를 2025년까지 주식 전환하면 HMM 매각 이후에도 30% 이상의 지분율을 확보할 수 있다”며 “여기에 신용보증기금과 국민연금 지분을 합치면 실질적으로 정부가 대주주로 올라서 HMM에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주요 대기업들이 입찰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가 인수 이후 자율경영 확보에 의문점을 가지고 있다는 진단의 배경이기도 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홍해 사태로 인해 해운운임이 크게 뛴 상황에서 하림그룹이 원하는 조건으로 HMM 매각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재입찰 향방은 정부가 HMM의 영구채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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