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8.08 16:09
하얀 배꽃이 상징물인 이화대학교의 정문 풍경이다. 미래 라이프 대학 설치 문제로 학내 소란이 빚어져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한국의 명문 여자대학이다.

이화여대 총장이 일방적으로 신설하려다 좌초한 ‘미래라이프 대학’은 혁명이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모든 입시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육부가 노래하고 이화여대 및 10개 대학이 장단을 맞춘 미래라이프 대학은 교육부의 위대한 실수다. 하지만 제도를 만든 교육부도, 반대를 하는 학생도 이 제도가 지니는 혁명을 이해하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1886년에 설립된 이화여대는 연세대학과 함께 가장 전통 깊은 명문대학이다. 130년의 역사 속에 학문이면 학문, 인재면 인재, 어느 하나 빠질 데 없이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이대 없이 한국 근대 여성과 문화를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이다. 최고의 명문인 만큼 문턱도 높고 자부심도 높다.

우리나라 입시제도에는 1년에 한번 뻑적지근하게 치르는 ‘수능’이 있다. 상당히 독특한 입시제도로서 다른 어느 시험보다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한다. 수능이란 국가가 공식적으로 평등하고 공평하게 대학 학위라는 출세를 보장하는 제도이다. 공부에 따라 점수는 다를 수 있어도 자격만 충분하다면 시험 치를 권리는 동등하다. 국가적인 행사이므로 수능은 공식적으로 수험생의 삶을 좌우한다. 이토록 중요한 국가행사인 수능에는 기원이 있다.

수능은 예상하는 대로 조선시대 과거(科擧)제도에서 비롯한다. 과거는 자격을 갖춘 상민(常民) 이상이면 모두가 평등하게 응시할 수 있었다. 국가는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고 공정하게 채점했다. 평등성과 공정성이라는 국가적 가치를 과거제도로 실현한 것이다. 따라서 조선이 유지된 것이 바로 과거제도의 공정성이라 할 정도로 시험 관리가 엄정했다.

하지만 성적은 오늘날과 다를 바 없었다. 양반 자제들이 상민보다 훨씬 유리했다. 명문 서원은 시험 치르는 요령이나 이미 나온 문제 족보를 구비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족집게 과외를 통해 예상문제를 미리 연습하고 암기했다. 시험과목도 원칙대로라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모두 외워야 하지만 이리저리 주요 문제 위주로 빼다 보면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반면 이런 기술적인 정보가 부족하고 요령도 없는 상민들은 산골짜기에 틀어박혀 외우기만 했기에 시작부터 같을 수는 없었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험 자체는 공개된 교과서 중심으로 출제했고 엄정하고 공정하게 다뤄졌다. 그러기에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만점자나 과거에 장원 급제자는 꼭 교과서에 충실했다는 되도 않는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조선의 몰락은 과거제도의 타락과 함께했다. 과거제도의 타락이란 국가가 공신력을 잃었고 평등한 기반에서 정당한 출세 길이 막혔음을 뜻한다. 정당하게 출세할 방도가 없다면 부정부패나 매관매직 아니면 반란이 길이다. 조선 말 많은 민란(民亂)이 그렇게 생겨났다. 신림동 고시촌의 몰락도 유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일이다.

수능에 대한 국가적인 엄격한 관리나 강박적인 집착도 바로 여기에 있다. 평등한 수능 기회와 공정한 점수 관리가 나라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잘 운영하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인 기부금 입학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나 학벌주의 같은 우리나라의 고질병이 모두 여기서 시작한다.

여기에 혁명이 도래했다. 교육부가 이화여대에 제안한 미래라이프 대학은 수능을 뛰어 넘어 ‘학위’를 수여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수능이 없으니 국가의 평등하고 공평한 관리도 없다. 심지어는 국제적으로 합의한 4년의 대학교육도 없다. 공신력을 보장할 국가적 근거도 없고 국제적인 원칙도 없으니 학위도 없어야 하지만 학위가 있다. 그저 30대 이상 여성의 사회적 커리어를 면접으로만 평가하고, 2년간의 주말강의만 들으면 학위를 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최고 명문인 이화여자대학교의 학위다.

이대로 밀어 붙이면 진정으로 과거를 단절하고 미래로 도약하는 위대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시작은 200명짜리 단과대학이지만 조금씩 넓혀나가다 보면 전국의 수십만 수험생이라는 창대한 고지가 보인다. 불편부당하지 않게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 졸업자에게 적용한다면 최고로 이상적인 제도다. 모든 고졸자가 직장에서 경력을 쌓다 중간에 이년간 주말 강의 듣고 대학학위를 취득한다면 더 이상 대학입시에 억매일 필요가 없다. 그 때가 되면 달라질지는 몰라도 사교육에 따른 비용이나 부작용도 없어지고 암기위주의 교육도 모두 커리어 관리를 위한 실기위주로 바뀔 수 있다.

네일아트를 하거나 홈쇼핑 사이트 만들고 관리하는데 4년제 대학인 이화여대 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교육부와 이화여대의 속보이는 학위장사에 뒤에는 국가고시 없는 2년제 정규대학학위가 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미래라이프 대학은 국가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위한 혁명이자 개벽이다. 교육부가 아무리 궤변을 하고 총장이 학위를 떨이로 팔려고 한다 하더라도 상식으로 바라보지 말자. 개벽은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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