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9.07 13:28
미국의 명문대학 조지타운 대학교의 문화재 지정 건물인 힐리 홀의 정문. '유니버시티'를 우리는 '대학'으로 옮겼지만 원래는 '우주를 꿈꾸는 곳'이라는 새김을 담은 말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8월 학생 평가, 학생학습역량, 진로 및 심리 상담, 취·창업, 특성화 계획수립·추진 및 교육 및 강의 개선 등을 기준으로 대학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평가에 따라 D·E등급을 받은 대학 27개는 재정지원 제한을 받거나 퇴출당할 것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코끼리는 지상 최대 최강의 동물이다. 몸길이 최대 7.5m, 몸무게 6t에 이르며 이들에게 사자란, 인간으로 치면 고양이 정도다. 그러나 막강 코끼리에도 천적은 있다. 바로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이다. 길이만 3m에 무게는 100㎏에 이르는 상아는 비싸게 거래되는 고급 물건이다. 그래서 밀렵꾼들은 코끼리를 죽여 상아만 잘라간다.

상아탑(象牙塔)이란 오래전부터 아름다움이나 성스러움의 상징이었다. 또한 프랑스 예술지상주의 시인 비니(Alfred de Vigny: 1797~1863)의 별명이기도 하였다. 그는 세속적인 생활에 관심을 갖지 않고 고고하게 저작활동만 했다고 한다. 폼은 나지만 실용성은 없다. 그래도 상아에 비유할 정도이니 뭔가 있는 듯하다. 이후로 세속을 떠나 연구에 몰두하는 대학도 상아탑이라 했다.

프랑스와 달리 우리에게는 우골탑(牛骨塔)이 있다. 시골에서 소를 팔아 자식 등록금을 냈기에 생긴 말이다. 가슴 아픈 현실이자 숭고한 부모의 마음이다. 그렇더라도 일단 소뼈는 상아보다 없어 보인다. 상아는 우아한 장식이지만 소뼈는 사골이다. 자식 대학 등록금 내며 우골탑 쌓는 일은 마치 상아탑에서 상아 한 조각 얻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상아탑이 이상이라면 우골탑은 실용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요즘 상아탑의 상아가 상한 것 같다는 데 있다. 교육부 대학평가 기준을 보면 상아에 해당하는 고고한 지적활동은 없고 맨 진로, 취업, 특성화 따위다. 대학이 상아탑이라면 상아의 기준을 보여야 하는데 교육부는 사골곰국을 내놓으라 한다. 사골 기준으로 본다면 SKY는 진국이고 D·E등급을 매긴 27개 대학은 분유 탄 소고기 국물이다. 하지만 그럴듯하다고 고개만 끄덕일 수 없다. 상아를 삶는다고 사골곰국이 나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골곰국 기준으로 보자면 상아도 D·E등급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대학(大學)이란 유니버시티(University)의 번역어로 고대 동양에서 애들이 배우던 소학(小學)에 대한 대학이자, 고전인 <예기(禮記)>의 한 챕터 제목이다. 한 마디로 대학이란 유니버시티와는 전혀 뜻이 맞지 않는 것이다. 얼토당토않은 번역이다. 유니버스(universe)란 우주다. 그래서 유니버시티란 우주를 품은 곳이란 말이다. ‘대학’으로 옮기기보다는 ‘우주소(宇宙所)’가 더 적합하다.

유니버시티는 이 땅에서 우주를 꿈꾼다. 현실에서 무한한 이상을 상상하고 탐구하는 곳이다. 그래서 사자 따위는 가볍게 밟아버리는 최강의 동물인 코끼리로 상징한다. 지고한 아름다움과 성스러움 그리고 고고한 지적활동을 보장한다. 지상에서 영원을 꿈꾼다. 그런데 밀렵꾼은 상아 1kg당 40파운드의 값으로 따져 코끼리를 총으로 쏜다. 마찬가지로 교육부는 이상과 꿈에 취업률을 들이댄다. 상아에 사골곰국 기준을 보이라는 격이다. 이건 아니다.

대학의 취업률이 중요한 지표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학이 이뤄야 할 목표는 취업이 아니다. D·E등급이나 재단비리 대학을 옹호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더라도 상아에 사골곰국 기준을 들이 대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유니버시티란 우주를 바라보고 꿈을 꾸는 곳이다. 서울대건 D·E등급 대학이건 모두가 그 모양 그 꼴인 건 아마 꿈은 꾸지 못하고 사골곰국이나 찾아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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