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9.21 17:07
지하철 2호선 역명 선릉(宣陵)은 조선 성종의 능묘 권역 이름에서 유래했다.

조선이라는 왕조의 제도적 기틀을 다진 이가 성종成宗 1457~1494년이다. 조선 제 9대의 국왕이다. 재위 기간은 죽기 전까지 24년이다. 임금이 죽은 뒤에 왕실 가족과 대신들이 서로 그의 업적을 평가해 짓는 묘호廟號가 ‘성종成宗’이라는 점에 우선 주목하자. ‘이루다’ ‘성취하다’ 등의 새김인 成(성)을 붙인 점이 그렇다.

제도적으로 국가의 운영에 필요한 틀을 구축한 임금에게 붙이는 묘호가 바로 이 성종成宗이다. 그는 주지하다시피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완성해 조선의 통치기반을 다졌다. 법제法制의 완비였다고 해도 좋은 업적이다. 아울러 많은 문물 정비에도 힘을 기울여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그가 죽어서 묻힌 곳이 지금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선릉宣陵이다. 그는 조선 폭정暴政의 대명사인 영화 ‘왕의 남자’의 주인공 연산군燕山君의 생부이기도 하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는 지금의 1호선 회기역에 묻혔고, 그 뒤를 이어 성종의 계비繼妃에 오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남편 성종과 함께 지금의 선릉에 묻혔다.

선릉은 흔히 선정릉宣靖陵으로도 불린다. 성종의 능역인 선릉과 함께 그의 아들이자 조선 11대 왕이었던 중종中宗 1488~1544년의 정릉靖陵이 함께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삼성동과 테헤란로의 고층 빌딩 숲 사이에서 비교적 넓은 면적의 공원을 형성하고 있어 이채를 띠는 곳이다. 성종의 승하 뒤 원찰願刹인 봉은사奉恩寺가 들어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성종의 능호陵號인 宣(선)이라는 글자가 우선 눈길을 끈다. ‘베풀다’ ‘펼치다’라는 새김의 한자다. 우리 현대 한국어에서도 이 글자의 쓰임새는 제법 많다. 우선 널리 알려 전달하는 일이 선전宣傳이다. “이제 전쟁을 시작한다”고 알리는 일이 선전포고宣戰布告다. 일방적으로 내 의지를 알리는 말이 선언宣言, 그로써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리면 선고宣告다.

자신의 메시지 등을 세상에 알리는 일은 선포宣布, 남들이 모두 알 수 있게끔 하는 맹세가 선서宣誓, 종교를 남에게 전파하면 선교宣敎, 속내를 털어서 남에게 드러나 보이게 만들면 선양宣揚이다. 이렇듯 한자 宣(선)은 숨기거나 가리지 않고 제 속내나 의지 등을 남에게 펼쳐 보이는 동작과 관련이 깊은 글자다.

그러나 이 글자가 초기에 활약을 보인 영역은 ‘건축’이다. 고대 제왕帝王의 궁전을 가리킬 때 썼던 글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집을 가리키는 부수 ‘宀(면)’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그 점은 명확해진다. 제왕의 궁전 건축물 중에서도 규모가 제법 큰 건물을 일컬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이 글자는 다시 ‘제왕이 그곳에서 바깥으로 전하는 메시지’라는 의미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밖으로 알리다’ ‘펼쳐서 알리다’라는 지금의 동사적인 의미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선지宣紙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 흔히 화선지畵宣紙라고도 적는다. 전통적인 우리 한지韓紙의 영역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렇지 않다. 중국 안후이(安徽)성 쉬안청(宣城)이라는 곳이 원산지다.

먹물 번짐과 스며드는 정도가 그림이나 붓글씨 쓰기에 적당한 종이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일부 고급 종이를 만들어 낸 점은 맞지만, 그 원산을 따지자면 중국이 우선이다. 일본이 이 중국의 선지宣紙를 사용해 일부 가공을 거쳐 만들어낸 종이를 가센시, 즉 화선지畵宣紙라고 불렀다는 설명이 있다. 조선말의 북학파에 의해 중국의 선지 선호도가 높아졌고, 급기야 우리 그림과 붓글씨 용도의 종이로 점차 일반에 널리 퍼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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