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10.06 11:15

(3) 후퇴도 작전이다-4

> 1951년 1월의 전선은 북위 37도 선에서 만들어졌다. 싸우는 선, 戰線(전선)이었다. 전 해 10월 19일 압록강을 넘어섰던 중공군은 1~2차 공세로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북진을 막는 데 성공했다. 12월 말에 시작한 3차 공세로 중공군은 서울을 점령했고, 그에 밀린 유엔군은 37도선으로 후퇴했다. 한국군 1사단이 주둔한 지역은 안성 인근의 입장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위장막을 설치할 요량으로 그물을 친 아군 이동 트럭의 모습이다. 그 때부터가 반격의 시작이었다. 후퇴 또한 작전의 일환이라 그를 제대로 펼친 군대는 늘 반격의 기회를 맞이한다. 군이 벌이는 전쟁은 나아감, 멈춤, 물러섬, 반격, 다시 나아가고 때로 또 물러서는 일의 반복이다.

 

> 동계 복장을 걸친 한국군 1사단의 공격 부대 사진이다. 눈이 내린 지형에서 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착용한 하얀 색의 위장복이 눈에 띈다. 1사단을 비롯해 한국군과 유엔군은 37도 선에서 반격을 착실하게 준비했다. 교통사고로 급서한 워커 미 8군 사령관의 후임으로 부임한 매슈 리지웨이는 새로운 개념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땅을 점령하는 기존의 작전 방향에서 상대의 병력을 살상하는 쪽으로 공격의 개념을 틀었다. 이제 곧 그의 작전 지침에 따라 중공군을 향한 강력한 화력 방사(放射)의 작전이 펼쳐질 무렵이었다.

 

> 예나 지금이나 언론매체는 자유진영의 국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정부가 구축한 힘이 어떻게 풀리느냐를 보도하면서 때론 비판도 하는 게 언론의 책무다. 그들은 늘 전쟁의 뒤를 좇았다. 전쟁의 진행상황을 국민에게 알리려는 그들 나름대로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짐으로 작용했던 점도 사실이다. 고집스럽게 제 뜻만 좇아 전쟁의 국면을 부풀리거나 축소하는 기자들도 없지 않았다. 감시와 비판의 뜻은 좋으나 역시 기자의 자질과 양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했다. 1사단장 백선엽 준장이 기자들과 회견하는 모습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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