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로 축복(祝福)의 언어를 건넬 때다. 음력으로 정유년(丁酉年) 새 해가 닥치기 때문이다. 이 맘 때면 사람들은 묵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채비에 바쁘다. 그러면서 빼놓지 못하는 것이 바로 친지에게 건네는 축복의 언사(言辭)다.축복의 한자 가운데 첫 글자 祝(축)과 둘째 글자 福(복)에는 공통적으로 示(시)라는 부수가 들어있다. ‘보이다’ ‘드러내다’의 새김으로 쓰는 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메시지의 뜻이 강했다. 따라서 주술(呪術)의 요소가 강하다.이 부수가 들어있는 글자들
우리가 자주 쓰기도 하지만 또 자주 오용하는 단어가 금도(襟度)다. 襟(금)이라는 글자는 옷깃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서도 가슴 부위에 해당하는 옷깃을 지칭하는 글자다. 따라서 눈에 많이 띈다. 남에게는 숨기려고 해도 제대로 숨길 수 없는 곳이다.이 글자는 사람의 ‘마음’을 말하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마음을 품는 곳이 가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머리에는 생각이 머물지만,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대개 가슴에 깃든다고 여겼다. 포부(抱負), 이상, 뜻, 지향 등은 따라서 가슴과 관련이 있다.그 정도와 크기, 수준 등을 나타
한양漢陽이라는 이름. 사실 할 말이 많은 명칭이다. 앞서 펴낸 의 첫 장이 서울역이다. 거기서 서울의 옛 지명인 한양漢陽을 설명할 때 산의 남쪽과 강의 북쪽을 개념적으로는 陽(양)이라고 간주한다는 설명도 했다. 건대입구역을 지나면서도 잠시 거론했다. 옛 중국에서는 이른바 산의 남쪽, 강의 북쪽이라고 해서 山南水北(산남수북)을 음양陰陽 중의 陽(양)으로 적었다는 내용 말이다.그러나 강의 흐름이 서북에서 남북으로 향하는 중국과는 달리 한반도의 큰 하천은 대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따라서 강을 보는 눈이
> 현지 전투 때 촬영한 사진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사진이 대표적으로 전해져 온다. 그나마 중공군이 촬영한 당시 국군 포로 사진이다. 얼마나 많은 국군 3군단의 병력이 중공군에게 포로로 잡혔는지를 보여준다. 국군 3군단 후방의 유일한 후퇴로인 오마치 고개에 진출한 중공군 병력으로 인해 아군은 당황했다. 누구나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후방을 내준 뒤가 문제였다. 국군 사령탑은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3군단장 유재흥 장군은 먼저 자리를 떴다. “후방에서 회의가 있다”는 말을 하고서다. 전선 지휘를 군단 예하 3사단장과 9단장에
별로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보복(報復)이 횡행하면 그 사회는 원한과 응징이 맞물려 돌아가는 악순환의 틀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오욕칠정(五慾七情)의 감성 복합체인 사람은 늘 질시와 앙갚음의 틀에서 놓여나기 힘들기 때문이다.단어를 이루는 두 글자 중 앞의 報(보)는 초기 글자꼴이 우선 심상찮다. 사람이 꿇어 앉아 있고, 그 뒤에 손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강압에 의해 사람이 잡혀 있거나, 적어도 꿇어앉아서 다음 단계의 조치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다음 단계의 조치’는 흔히 행형(行刑)이리라
당시 북송의 상황은 아주 위급했다. 동북에서 발흥한 여진족 금나라가 북송의 수도를 직접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송이 이후에 맞이했던 운명은 잘 알려져 있다. 결사항전(決死抗戰)보다는 투항(投降)을 택하려 했던 문약(文弱)함이 지배적인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라 모두가 망한 뒤 남쪽으로 쫓겨 내려가 남송(南宋)을 세우고 말았다.이 ‘가을 하늘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말은 결국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성어로 발전했다. 이 말에 우리가 자주 갖다 붙이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성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전
그 예하의 병력이 팔기병八旗兵이다. 우선은 깃발을 의미했고, 따로 나눈 병력의 복색服色을 그에 다시 맞췄다. 순서는 노랑(黃), 하양(白), 빨강(紅), 파랑(藍)이다. 각 네 가지 색깔에 아무런 무늬가 들어가지 않았으면 正(정)이라는 글자를 붙였고, 테두리를 별도로 둘렀으면 鑲(양)이라는 글자를 붙였다. 예를 들어 노랑의 경우, 正黃(정황)이 있으면 鑲黃(양황)이 있다. 正(정)은 鑲(양)에 비해 우월하다.그런 규칙에 따라 각 네 가지 색깔의 깃발과 복색을 차등적으로 편제한 군대가 바로 팔기병
자주 등장하는 동영상이 있다. 운전에 미숙한 여성의 솜씨를 담은 내용이다. 그러면서 늘 붙이는 제목이 ‘김 여사’다. 우리 성씨 가운데 가장 흔한 ‘김’은 일반적인 사람을 가리키고, 뒤의 여사는 결혼한 여성을 지칭한다. 한자로는 女史라고 적는다.가정을 이뤘으면서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른 여성을 보통 이렇게 적고 부른다. 우리의 오랜 관습이라기보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을 받아 생긴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연원은 퍽 오래다. 중국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에 등장한 직함의 하나다.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지식의 수준
소통이라는 주제는 사람 사회에서 늘 화제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을 미뤄 알 수 있겠고, 또 그 만큼 소통이 어렵다는 점도 보여줄지 모른다. 가장 차원이 높은 소통은 아마도 마음과 마음이 서로 호응하는 방식일 것이다. 굳이 말이나 요란한 몸짓이 아니더라도 마음만으로 함께 뜻을 이루는 그런 경지 말이다.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일화가 염화미소(拈花微笑)다.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고도 적는다. 석가모니 부처의 영산(靈山) 설법에서 나온 일화다. 부처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자 제자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알아듣고 미소
우리처럼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술잔에 술을 잘 따르는 일이다. 상대에게 술을 따를 때 넘치거나 아주 모자라면 곤란하다. 적당하게 잘 따라야 한다. 상대가 특히 직장 상사라거나 높은 사람일 경우에 그렇다.짐작(斟酌)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모자라지 않게 술을 따르는 일이 斟(짐), 흘러넘치게 따르는 행위가 酌(작)이다. ‘짐작’은 모자라지도 않게, 흘러넘치지도 술을 따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로써 적당하게 일의 다소(多少)와 대소(大小)를 가려 적당하게 처리하는 사람의 능력, 나아가
어느 깃발이 최고 지휘관의 진영에서 올라가느냐에 따라 예하의 각 진영은 움직임을 결정해야 했다. 따라서 옛 전쟁터에서의 깃발은 지금의 무전기, 나아가 모든 정보통신 기기의 역할을 했던 중요한 도구였다. 그래서 깃발은 군대의 용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우리에게 쓰임이 낯익은 단어의 하나가 휘하麾下다.“누구의 휘하에서 활동했다”라는 말은 예전 전쟁터, 또는 군대생활을 오래 했던 세대들이 많이 썼다. 그 앞의 麾(휘)라는 글자가 바로 전쟁터 또는 군대의 최고 지휘관인 장수將帥의 깃발을 가리킨다. 이 역시 당초 쓰임새는 음악, 또는 무악
이 단어 구설(口舌)은 우선 인체의 입과 혀를 가리킨다. 사람 입모양을 그린 口(구)라는 글자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다음 글자 舌(설) 역시 입과 함께 움직이는 혓바닥의 표현이다. 두 글자가 합쳐졌을 때 번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입과 혀라는 단순 지칭을 넘어선다.우선은 사람의 말, 또는 말을 하는 행위라는 새김이 있다. 아울러 그 말로써 일으키는 시비와 비난 등의 뜻도 있다. “구설수가 있다”고 할 때의 구설수(口舌數)는 한 해의 운세를 볼 때 자주 등장한다. 이 구설수가 있는 사람은 그 기간 내내 다른 이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여긴
이제 차기 대권 주자들이 일으키는 풍진이 거세다. 그래서 여론(輿論)이 들썩인다. 쉬지 않고 나타나는 여론조사에 사람들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인다. 여러 사람의 의견, 평가 등을 알아볼 수 있는 틀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하면서 더 법석이다.여론(輿論)이라는 낱말을 이루는 글자 둘이 관심이다. 앞의 輿(여)는 대표적인 새김이 ‘수레. 사람이 타고 다니거나, 물건을 실어 운반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수레일 수도 있고, 가마일 수도 있다. 어쨌든 사람이 타거나 물건을 실어 옮기는 도구다.뒤의 論(론)은 일상에서 쓰임이 워낙
요즘 유행하는 단어 중 하나가 호도(糊塗)다. 쌀 등을 물에 오래 담갔다가 걸쭉하게 만들어 그 끈기를 사용해 물건 등의 사이를 붙이는 게 풀이다. 이 풀을 가리키는 글자가 糊(호)다. 다음 글자 塗(도)는 우선 진흙이라는 뜻, 아울러 색깔 등을 입히는 ‘칠하다’ ‘바르다’ 등의 새김이 있다. 때로는 사람이 지나는 길의 의미로도 쓴다.糊(호)는 우리말 쓰임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자주 쓰는 말에 등장하는 때가 있다. 호구(糊口)라고 적을 때다. 이 단어는 직접 풀면 ‘입에 풀칠을 하다’다. 밥 먹는 행위를 일컫는 표현이다. 아
이름이 다양하게 발전했던 곳이다. 뚝섬이 가장 일반적인 이름이었음은 물론이다. 살곶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가 왕위에 오른 아들 방원을 매우 미워했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그로 인해 벌어진 게 ‘함흥차사’라는 성어다. 태종 이방원을 만나지 않으려했던 이성계도 결국에는 함흥에서 줄곧 머물다가 서울로 돌아온다.태종 이방원이 돌아오는 아버지 이성계를 마중하러 나왔던 곳이 지금의 뚝섬 인근이었고, 그곳에서 미운 아들 방원을 멀찌감치 봤던 이성계가 화살을 날렸다는 얘기도 잘 알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