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윤주진기자
  • 입력 2015.12.21 12:06

지난 11월 한 언론매체는 정부가 수입맥주의 할인판매를 제한하는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터넷과 SNS는 그야말로 들끓기 시작했다. 정부에 대한 강한 반발과 비판은 물론, 정부를 비꼬는 각종 패러디와 조롱 등이 범람했다. 싼 가격으로 맥주 마실 권리를 막지 말아달라는 목소리였다. 

정부는 절대로 그런 조치를 검토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그 여진은 계속 이어질 정도로 논란은 컸다. 맥주 가격 통제 조짐에 반발을 보였던 소비자들은 ‘맥통법’이라는 새 조어를 선보였다. 휴대폰 보조금을 제한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에 맥주를 접목한 신조어다. 

네티즌들은 “정부가 단통법도 모자라 이제는 맥통법을 만드냐”며 ‘온국민 호갱(고객님과 호구를 합쳐 만든 표현)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며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단통법이 국민들에게 그만큼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 정부의 끊을 수 없는 유혹, 그 이름은 ‘가격 규제’

가격통제는 정부의 시장개입 정책 중에서도 단골 메뉴에 속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더 이상 가격이 오를 수 없도록 하는 상한제가 있는가하면 일정 수준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는 하한제가 있다. 

주로 이 같은 규제를 도입하며 내거는 명분은 친(親)서민 혹은 혼란 예방이다. 물가가 너무 높아 서민들에게 부담을 준다며 일부 품목에 대해 상한제를 도입하거나, 농민이나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이득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일정 가격을 보장해주는 하한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또는 시장에서의 지나친 경쟁이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며 가격 통제에 들어가기도 한다. 

여전히 소비자들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단통법 역시 대표적인 가격통제다. 각 기업이 지원해주는 단말기 보조금의 상한폭을 제한해 일정 가격 이하로 휴대전화 단말기를 판매할 수 없도록 한 제도로 일종의 가격 하한제에 속한다. 

◆ 고객을 위해 도입된 단통법이 ‘호갱’을 만들다

정부가 단통법을 도입했던 취지는 크게 세 가지다. 기업의 과도한 보조금 경쟁으로 소비자의 스마트폰 주기가 짧아지고 보조금 지원 대신 높은 요금제를 선택하게 해 소비자의 과소비를 부추길 가능성을 먼저 꼽았다. 

또한 정보에 어두운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같은 제품을 비싸게 살 소지가 있어 차별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통신사를 바꾸는 번호이동에 비해 기기변경만 할 때 상대적으로 혜택이 적다는 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조목조목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단통법 제대로 이해하기’ 자료를 통해 “경제학에 과소비라는 표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과소비를 걱정하는 행태를 꼬집었다. 이어 모든 소비자가 같은 제품을 반드시 같은 가격에 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며 비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자동차 프로모션이나 백화점 바겐세일, 대형마트 폭탄세일 등도 정부가 규제해야 하는 것이냐며 반박했다. 

실제 소비자들의 불만은 여러 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단통법 이전에 비해 소비자들의 해지 위약금 부담이 5.17배 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해지위약금은 이동통신사 보조금과 맞물려 있어 사실상 소비자 편익의 정도를 판가름 할 수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이 같은 제품을 미국에 비해 최대 13.5배 비싸게 사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자료 : 경실련

설문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참여연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이 단통법으로 인한 통신비 인하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7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실련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6.8%가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가격경쟁 없어지면 좋을 줄 알았는데...기업도 폐지 건의

애초 정부가 단통법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LG전자는 애써 표정관리를 했다. 보조금 경쟁이 2위 업체이자 후발주자인 LG전자로서는 지나친 가격경쟁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단통법으로 시장이 안정화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보조금 경쟁이 없어지면 순수하게 제품에 대한 경쟁력으로 삼성과 한 수 겨뤄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LG전자의 단통법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격경쟁이 없어지자 프리미엄폰 시장은 삼성과 애플의 양강 구도가 형성됐고, 결국 LG전자는 애플에 점유율 3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지난 10월 LG전자가 70만원대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출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보조금 규모를 최대 33만원까지 제한한 단통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고가를 낮추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낮은 스마트폰이 나와서 좋지만 LG전자에게는 ‘울며 겨자 먹기’일 수밖에 없다. 프리미엄폰이라는 이름이 그 의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실제 LG전자는 지난 7월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에 보조금 상한제를 폐지해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반면 애플의 아이폰은 단통법으로 얼어붙은 가격경쟁의 틈을 무섭게 뚫고 들어왔다.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가 부담스러워 했던 아이폰이 단통법에 손이 묶인 삼성과 LG로부터 소비자들을 뺏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 “책 싸게 팔지 말아라” 도서정가제 도입...‘피통법’까지 등장

단통법 시행 후 정부는 곧 이어 도서정가제를 도입했다. 모든 도서에 대한 할인폭을 10%로 제한한 도서정가제는 애초 경쟁력이 낮은 지방중소 도서점을 돕겠다는 취지로 도입했으나 올해 3분기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1만6752원으로 200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도서 시장 자체가 위축된 것이다. 

반면 소비자의 부담은 더 늘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주요 해외서적에 대해서 1.2배에서 많게는 3.4배까지 많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판 및 베스트셀러 성경가격으로 표준화한 국가별 도서판매가격 (자료 : KDI)

그 와중에 국회에서는 이른바 ‘피통법’, PC방 유통구조 개선법이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PC방 점주들 간의 지나친 가격경쟁을 막기 위해 ‘생존가격’을 법제화해주겠다는 취지다. 네티즌들은 국회가 나서서 PC방 사업자들의 담합을 보호해준다며 발의자인 이상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비판하고 있다. 

◆ 우왕좌왕하는 정부, 침체되는 내수, 속 타는 기업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6 경제전망’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단통법에 대한 개정 의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한 언론매체는 정부가 보조금 상한선을 두 배 이상 확대해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내수활성화로 이어지게끔 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은 다른 부처인 미래부나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정부는 일관된 입장 정리를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단통법에 이어 책통법(도서정가제), 맥통법(수입맥주 할인 제한), 그리고 피통법에 이르기까지. 행정부·입법부 가릴 것 없이 가격 규제에 대한 유혹을 끊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그럴듯한 명분도 명분이지만, 각 업종별로 조직된 협회 혹은 이익단체들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KDI는 도서정가제를 예로 들면서 가격 규제가 오히려 소비자의 편익을 훼손시켰으며 나아가 시장 자체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 품목에 대한 소비 부담이 증가하면 다른 품목에 대한 소비를 구축시킬 우려가 있어 전체 내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설명했다.  

한편 기업 입장에서도 정부의 각종 가격규제에 속이 탄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소비자와 관련된 품목뿐만 아니라 에너지 시장 등에서의 정부의 가격 규제는 총 600여개에 달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011년 ‘우리나라 가격규제 현황과 개선방안’ 자료를 통해 “가격규제에 따른 물가 안정효과는 미미한 반면, 오히려 기업들이 제공하는 품질과 서비스의 수준을 낮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격규제에 따른 공급위축이 우려된다”며 “오히려 불법 거래나 암시장 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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