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2.24 09:22
에쓰오일 온산공장 전경.<사진제공=에쓰오일>

저유가로 인한 원자재가 하락으로인한 경기둔화는 중국을 거쳐 신흥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저유가로 인해 수출실적이 세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제조업과 수출산업에 경고등이 연일 켜져있는 상황에 저유가로 인한 지난해 실적개선을 발판삼아 올해 사업확대와 고부가가치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업종이 있다. 바로 정유업종이다. 지난해 한국의 주요 정유4사 석유제품 생산, 수출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보다 싸진 원유가격으로 인해 석유제품 소비량이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정유4사의 매출은 줄었지만 수익성은 크게 개선되고 있다. 올해역시 저유가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데 세계 경기둔화 움직임도 포착된다. 지난해와 같은 정유 마진 호황이 올해까지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정유업계는 고부가가치 사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신성장 동력 확보에 본격 나섰다.

정유비중 줄이고, 사업구조 확대 시도

정유 업계에선 시기상으로도 원유가격이 낮은 시기가 신사업진출이나 사업확대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국내 정유 4사의 올해 기업 혁신 프로젝트는 정제사업 부문 의존도를 줄이면서 고수익사업 육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고수익사업으로는 석유화학‧윤할유‧석유개발 등이 꼽힌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가 변동에 따라 정유부문의 실적 변동 폭도 크다"며 "이런 변동성과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수익을 안정적으로 올리기 위해 정유부문에 치중돼 있는 수익 구조를 다각화해 나 갈 것"이라고 전했다.

에쓰오일, 석유화학 설비 5조원 투자

나세르 알 마하셔 에쓰오일 대표는 최근 "대규모 정유·석유화학 복합설비 투자인 Residue Upgrading Complex & Olefin Downstream Complex(RUC & ODC) 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회사의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RUC & ODC 프로젝트는 고도화 공정을 거쳐 값싼 잔사유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수익성이 높은 제품 위주로 바꾼다는 의미다. 준공 시점은 2017년, 투자 규모는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젝트가 완료되면, 에쓰오일의 제품 구성에서 고부가가치의 경질제품(휘발유, 경유 등)이 차지하는 비율은 74%에서 77%로 늘어나고, 유황 함유량이 많은 값싼 중유는 12%에서 4%로 낮아진다. 또 현재 파라자일렌(PX) 71%, 올레핀8%, 벤젠 21%로 구성된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사업이 프로젝트 진행 후에는 올레핀37%, 벤젠16%, PX47%로 바뀐다. 상대적으로 많은 업체가 생산에 뛰어들어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PX 생산 비율을 줄이고, 올레핀 생산 비율을 높여 수익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전기차용 배터리사업 박차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신년사에서 "지금 생존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구조적 전환 과정'에 들어와 있다"며 "위기 대응 노력들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생존조건 확보를 위한 사업구조∙수익구조∙재무구조 혁신과제를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사업 포트폴리오 전반을 들여다보며 '덧셈과 뺄셈'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다. 경제성이 높은 사업은 강화하고, 그 반대의 사업은 축소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작업은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12월 신설한 PI(Portfolio Innovation)실에서 진행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정유부문 의존도를 낮추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보다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듬어 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금까지 해온 신성장 사업의 육성에도 힘을 쏟는다. B&I실에서는 배터리 사업과 정보전자소재 사업(리튬이온전지 분리막 등)을 적극 추진한다. B&I실의 본래 명칭은 NBD(New Biz. Development)인데, 지난해 12월 조직개편 때 명칭이 변경됐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중국에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 2013년 12월 베이징전공·베이징자동차와 중국 현지에 공동 설립한 합작법인 '베이징 BESK 테크놀로지'는 베이징 현지에 구축한 연 1만대 규모의 배터리 팩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다. 2017년까지 생산라인을 2만대 규모로 증설하는 등 사업 규모를 확대해 나간다.

현대오일뱅크, 롯데와 합작, 석유화학사업 본격 개시

현대오일뱅크는 정유사업 비중을 줄이고, 고수익 사업으로 다각화하는데 적극적이다. 현대오일뱅크의 정유사업은 매출의 93%를 차지하지만, 영업이익률이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도 "신규 사업들을 본궤도에 올려 하루빨리 최적화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4월 울산신항에 업계 최초로 상업용 유류 저장시설을 가동하면서 유류 저장사업에 뛰어들었다. 지난 9월에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쉘(SHELL)과 함께 연산 65만t의 윤활기유 공장을 준공, 윤활유 사업에도 진출했다.

또 현대오일뱅크는 업계 최초로 독일 카본블랙 업체와 합작해 2017년부터 카본블랙을 생산할 예정이다. 카본블랙은 타이어 등의 강도를 높이는 배합제나 프린터 잉크의 원료 등으로 사용된다. 현대오일뱅크는 롯데케미칼와 합작 투자해 석유화학회사인 '현대케미칼'도 설립했다. 이곳에서 혼합자일렌(MX) 등을 생산, 석유화학 사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GS칼텍스 고부가가치 복합섬유 비중 늘린다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은 "석유화학 분야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언급, 사업구조 혁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GS칼텍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바이오부탄올 및 탄소소재 복합섬유 개발 등 신사업육성에 나선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전체 사업에서 바이오부탄올 및 탄소소재 복합섬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점차 확대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실적 안주없다, 사업다각화로 불황 뚫는다
지난해 정유4개사의 영업이익은 총 4조7962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올해 역시 지난해와 같은 높은 마진율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올해 2월 들어서만 정유사 실적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제마진이 떨어지고 재고평가 손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제마진은 중국을 비롯한 주요 수입국의 경기둔화에 따라 수요 감소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고평가 손실은 원유 도입 후 정제하는 데 1~2개월간의 시차로인해 발생한다. 원유 도입 후 2개월이 지난 시점에 유가가 하락하면 하락률만큼 손실이 발생하는 셈이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유가가 1달러 하락할 때마다 국내 정유 4사의 재고평가 손실은 약 650억원 수준에 달한다. 최근 하루에 2~3달러씩 등락을 보이는 유가를 감안하면 하루 만에 정유사 손실이 1000억원대에 달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재고손실분을 만회할 수 있는 것은 정제마진율 상승인데 올 초 실적을 보면 지난해와 달라진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월들어 지난 20일현재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약 6.7달러로 조사됐다. 지난 1월 평균 정제마진 9.9달러에 비해 3.2달러 낮아졌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휘발유‧경유 등)의 가격에서 원유가격과 운반비를 뺀 나머지다. 정제마진이 1달러 떨어지면 국내 정유4사의 영업이익은 한 해 1조원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정유업계에선 배럴당 정유마진 마지노선을 4달러로 잡고 있다. 4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실질적으로 손실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기존의 원유 정제를 통한 석유제품 생산이외의 새로운 달러박스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에쓰오일의 한 관계자는 "현재 추진 중인 신규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것이 실적유지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새로운 사업에 적극 진출, 정유부문 의존도를 낮춰 국제유가 변동에 내성을 강화해 100년기업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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