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2.15 14:32

미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시장조사기관 IHS는 지난 11일 LG디스플레이가 2015년 4분기 UHD(Ultra High Definition‧초고선명)TV용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직전분기 대비 10.5% 늘어난 398만8000대를 출하, 세계시장에서 35%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 글로벌 1위에 올랐다고 집계했다. 2015년 1∼3분기 연속 1위였던 삼성디스플레이도 4분기 279만대를 출하, 25%의 점유율로 세계 2위를 차지했다.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의 점유율 합계는 60%로, 글로벌 UHD TV 10대 중 6대는 한국산 패널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결과만 놓고보면 낙관적이다. 국내업체들이 명실상부한 디스플레이부문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 전망이 밝지않다. 오히려 위협받는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마저 나오고 있다. 급변하는 대외변수들을 보면 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한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
지난해부터 시작된 스마트폰 시장의 변화를 디스플레이 시장에 적용하면 감이 온다.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프리미엄급 저장장치와 기능보다는 합리적 가격을 갖춘 제품을 선호한다. 이우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스마트폰의 핵심부품인 디스플레이 패널 또한 고기능‧고가 보다는 중기능‧중저가 제품군에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TV시장에도 나타나고 있다. 초고선명 화질보다 기존의 HD수준의 화질에도 소비자들은 만족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추격은 성가스러운 수준을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 대한 솔직한 디스플레이 업계의 입장은 이렇다. 디스플레이제품은 TFT-LCD를 기준으로 할 때 이미 어느 정도 기술의 평준화 및 범용화가 된 상태라는 것이다. 디지털 방송 전환에 따라 신규로 LCD TV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넘쳐나고, 풀HD TV, 3D TV 등 새로운 기술을 내세운 제품들이 소비자를 유혹했던 5~6년 전과 비교하면, 최근 몇 년간은 혁신적인 제품이나 소비자를 혹하게 할만한 신기술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게 사실이다. 기존에 이미 LCD TV를 구매한 소비자들의 지갑을 다시 열게 하기에는 큰 동기부여가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돌파구는 무엇일까.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가는 방법이다.

정윤성 IHS테크놀로지 상무는 최근 칼럼을 통해 “중국이 추격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업체들은 앞으로 2~3년 동안 후발주자가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벽(barrier)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현재 시작단계에 있는 플라스틱OLED, OLED TV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코닝이 제작한 '유리와 함께하는 하루'동영상속 대형 사이니지와 사무실 벽면전체를 채운 디스플레이 모습. <사진=LG경제연구원>

길은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
소비자 트렌드가 고품질에서 합리적 가격과 실용성으로 바뀌고 있다. 추격하는 후발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해선 소비자 트렌드에 맞춤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칫 첨단기술 개발‧대량생산 체제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디스플레이 제품 수요는 다양화되고 있다. 기존의 직사각형 평면만으로 소비자 니즈를 따라 갈 수 없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몇 년 전만해도 전방산업은 TV‧PC‧스마트폰이 전부였다. 모양은 당연히 사각형이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자. 자동차 ‧웨어러블 시계‧드론 까지 제품군이 다양화됐다. 모양을 사각형에 고집해선 안경에 눈을 맞추는 꼴과 다를바 없게 됐다.

이제 디스플레이 시장은 원형은물론 휘어지고 아래위로 구부러지기도 한다. 그래야 팔린다.

문제는 수요다. 전방산업의 변화 속도에 맞춰야 살아남는다. 이에 정답은 하나다. 다품종 소량생산이 위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대량 생산 체제는 의미가 없어지고 있는 게 2016년 전자부품업계의 현실이다.
이런 산업 트렌드의 변화가 대량생산에 익숙한 한국 업체들에는 위기 요인이 될 수 있다. 거래처의 필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창의적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커스터마이제이션(주문 제작)’ 역량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소비자 맞춤형으로 제품군 영토늘리자

실제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경쟁업체인 대만의 TSMC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30%에 달한다. TSMC의 영업전략은 다양한 제품을 소량으로 생산 수요자에게 맞춤형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TSMC는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 반도체를 삼성전자보다 많은 거래처에 납품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폰을 제작하는 미국의 애플과도 계약을 체결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소비자 맞춤형 생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거래처와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창의성까지 얹어지면 공신력은 높아진다.

제품을 팔기 위해선 고객사의 주문을 기다려선 안된다는 게 전자 부품업계의 불문율이다.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업체에 디스플레이를 납품하려면 주문을 기다려 선 순서가 오지 않는다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한다. 디스플레이업체가 자동차 업체의 디자인에 맞춘 디스플레이를 먼저 개발하고 들고 가서 제품개발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 소비자 맞춤형 세일즈 시대가 이미 시작됐단 얘기다.

문제는 국내 업체들의 경우 전통적으로 대량생산을 통한 저가모델 개발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정 상무는 “TFT-LCD를 통해 평판 디스플레이라는 새로운 폼팩터(form factor)를 창조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듯이, 이제는 평판을 넘어 폴더블이나 벽면(wall) 디스플레이 등 마치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넘어가는 듯한 변혁을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며 “ 건축‧패션‧출판 등으로 디스플레이 제품군의 영토를 넓히고, 산업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제품 수요가 일정하고 후발업체들의 진입장벽이 높은 B2B(기업간거래)시장이  B2C(기업과 소비자간거래)시장 과잉공급 시대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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