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6.22 15:16
(사진=긴급재난지원금 홈페이지)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전국 동시 지방선거 선거운동 당시 상당수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핵심 공약으로 들어갔던 전시민 재난지원금이 민선 8기 첫 추가경정예산 집행을 통해 늦어도 9월 10일 추석 이전에 지급될 전망이다. 자신을 뽑아주면 돈을 주겠다고 공언한 것은 엄밀히 보면 매표 행위와 가깝다. 당선인은 물론 낙선 후보도 숟가락을 함께 얹었다보니 이제 와서 누가 뭐라고 따지는 분위기는 아닌 듯 보인다. 그렇다고 이런 현실이 선뜻 받아들여지는 것이 과연 옳을까. 향후 반복되더라도 괜찮을까.  

전시민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에 따른 정부의 방역조치로 문을 닫았거나 영업시간 제한을 받았던 소상공인 등의 피해 보상을 위한 손실보전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난 대선 당시 전국민에 대한 지급 필요성이 거론되었지만 윤석열 정부가 선별지급을 결정한 것도 추경 예산 사정 상 방역조치에 협조한 영세 자영업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재난지원금 종료를 선언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5월 29일 국회에서 39조원의 추경이 통과된 이튿날인 30일 임시국무회의를 갖고 "재난지원금이라는 투명하고 법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제도는 이번에 종료하고 앞으로는 온전하고, 투명하고, 확실한 보상을 하기 위한 법에 의한 보상제도로 바뀐다"고 천명했다. 앞으로는 국가적 재난 상황을 극복하기위한 정부 정책에 협력한 사람을 대상으로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보상할 뿐이지 합리적인 근거없이 누구에게나 무턱대고 지원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방정부 당선인마다 공약 이행을 이유 삼아 전시민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박동식 사천시장 당선인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1인당 30만원의 보편적 재난지원금을 예정대로 지급할 예정이다. 원강수 원주시장 당선인도 취임한뒤 가장 먼저 시민 1인당 10만원의 지원금을 줄 방침이다. 정인화 광양시장 당선인은 취임 1개월 이내에 19세 이하 청소년들에게 100만원의 긴급재난생활비를 최우선적으로 지급하고 전시민들에게 제4차 재난지원금을 20만원씩 줄 계획이다. 조현일 경산시장 당선인도 추경예산을 우선적으로 편성,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경산시민들이 똑같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언했다.

당선인들은 코로나19로 망가진 민생경제를 회복하고 물가 상승에 따른 생계비 부담 완화를 위해 전시민 재난지원금을 주겠다고 밝히고 있다. 지자체별로 재난지원금 마련에 들어갈 금액은 차이가 있겠지만 사천시의 경우 330여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선인과 지방의회 다수당의 소속 정당이 같다면 전시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포함된 추경은 무난히 통과될 것이다. 관내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시는 당선인 인수위 측이 밝힌 것처럼 재정여력이 충분할 수 있겠지만 별다른 대기업이 없는 지자체들이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의문이다. 시민들의 상당수는 공돈이 들어오면 손뼉을 치겠지만 일부는 지원금 집행으로 지자체 재정 악화를 우려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밀어닥친 경제복합위기를 맞아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정건전성 강화가 시급한 시점이다. 올해 4월 말 기준 중앙정부 채무잔액은 1001조원으로 집계됐다. 3월 말보다 19조1000억원 늘어났다. 국가부채 1000조 시대를 맞아 기획재정부는 저성장 추세 장기화와 빠른 채무 증가 속도를 감안해 민간·공공 자원 활용을 통한 재원조달 다변화, 재정지출 재구조화, 비과세·감면 정비 등 세입 확충 노력과 함께 재정준칙 제도화를 비롯한 재정개혁 과제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국가경제가 절벽 위에 선 상태에서 7월 1일 임기를 시작하는 지방단체장들이 제대로 된 해결책 마련에 나설 지 불투명하다. 선거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과 기업, 기관부터 챙기려고 한다면 각종 대의명분을 들이대며 공격적으로 돈 쓰기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리 되면 곳간이 비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체로 세수는 경기에 후행한다. 고유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3고(高) 시대에 복귀하면서 경제 둔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한국은행과 기재부는 경고하고 있다.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면서 경제성장률이 급락하면 최근 예상보다 큰 폭으로 증가해왔던 세입이 언제 제자리걸음으로 돌아설지 모른다. 만약 국세와 지방세수가 감소세로 바뀐다면 국채나 지방채 추가 발행을 검토해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 지금부터라도 자금을 쌓아야할 판에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재정 지출에 나선다면 뒷일을 누가 어떻게 감당한 것인가.  

코로나19 충격이 극심했던 지난 2년간 위기 극복과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에 대응하기위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은 불가피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재난지원금 지급도 필요했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코로나19 역시 끝자락에 와 있다. 돌발변수가 터지지 않는다면 '제2의 독감'처럼 풍토병으로 정착되는 단계를 밟고 있다.

이제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것이 경기 급락이다. 오는 7월 14일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이어 8월에도 연이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현실에서 대출금리 추가 급등에 따른 소비 위축은 시간이 갈수록 확연하게 나타날 것이다. 골목상권의 침체가 가속화되고 취약업종 종사자들의 삶은 더 고달퍼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자체도 중앙정부처럼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목표로 하는 건전화 노력에 하루빨리 동참해야 한다. 흥청망청 쓰는 지자체에게 파산이나 부도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2010년 7월 19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자체 중 처음으로 지불유예를 선언했다. 부자 지자체의 모라토리엄 결정에 국민들은 경악했다. 물론 전임자인 이대엽 시장에게 책임을 돌리는 등 정치적 대응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일시적으로 자금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아 흑자부도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당시 지방관가는 충격에 휩싸였다.

민선 8기 시장과 군수가 재정안정화를 위한 조직과 예산에서의 구조조정에 나서기는커녕 주민들에게 '달콤한 사탕'만 준다면 언제든지 '제2의 성남시'로 추락하는 수모를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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