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2.22 15:51
지영미(앞줄 왼쪽)질병관리청장이 4월 12일 오후 청주원광효도요양병원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질병청)
지영미(앞줄 왼쪽)질병관리청장이 4월 12일 오후 청주원광효도요양병원에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질병청)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해 3월 31일 대법원은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굶겨 숨지게 한 혐의로 20대 청년에게 징역 4년을 확정 판결했다. 1심부터 3심까지 일명 ‘간병살인범’에게 존속살해 형량보다 낮은 4년이 유지된 것이 주목됐다. 자식에게 부모 간병 책임을 전적으로 지도록 한 현행 제도와 관행의 미비점을 인정한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아들은 거액의 부친 수술병원비를 감당하려다가 돈이 떨어져 월세, 도시가스비, 전기료, 휴대전화요금을 내지 못했다. 아들은 정상적인 음식 섭취가 불가능한 아버지를 사망하도록 놔두기로 결심한 뒤에도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호소하면 물과 영양식을 호스에 주입했다. 이 재판과 관련,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이 청년에게 쓴 위로 편지에서 “가난의 대물림, 가족 한 명이 아프면 가정이 무너지는 간병구조, 그로 인해 미래를 포기하는 청년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는 2015년 법제화되었지만 10년이 되어가도록 참여하지 않은 병원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종합병원 참여율은 37.4%에 그쳤다. 이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종합병원에 환자가 입원할 경우 보호자는 자신이 상주하거나 간병인을 두어야 한다. 요양병원도 사정은 같다.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건강보험에서는 간병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75.3%, 요양병원의 74.8%, 종합병원의 63.1%가 가족과 간병 도우미에 의한 '사적 간병'에 의존한다. 요양병원의 경우 약제비와 진료비, 입원비, 식대는 건강보험에서 급여 지원을 받지만 간병인 비용은 보호자가 모두 낸다. 노인복지법에 따른 요양시설인 요양원은 다르다. 입소비와 요양보호사 간병비의 80% 가량을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부담한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모자라다보니 간병 도우미료 상승률은 2021년 6.8%, 2022년 9.2%, 올해 9.3%로 전체 물가보다 큰 폭으로 매년 오르고 있다. 최근 개인이 전속 간병인을 구할 경우 한 달 비용이 500만원이 들어가는 실정이다. 자산가나 고액 소득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부담할 수 없는 금액이다. 서울대 연구에 따르면 사적 간병비는 2008년 3조6000억원에서 2018년에는 8조원으로 증가한데 이어 2022년에는 10조원으로 추정됐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재난적 의료비에 간병비 포함, 간병비 급여화 확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상 확대 등을 공약했고 국민의힘 역시 '요양,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약속했지만 최근까지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없었다. 

지난 28일 서울 구로구 더세인트요양병원에서 이재명(앞줄 가운데) 민주당 대표가 병원관계자들과 함께 간병비 급여화 정책을 위한 현장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제공=민주당)
지난 28일 서울 구로구 더세인트요양병원에서 이재명(앞줄 가운데) 민주당 대표가 병원관계자들과 함께 간병비 급여화 정책을 위한 현장간담회를 열었다. (사진제공=민주당)

내년 총선이 다가오자 간병비 부담 감소가 정치권의 화두로 또 떠올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월 28일 서울 구로구 더세인트 요양병원을 찾아가 “간병비 문제에 대해 민주당이 우선 요양병원의 수요가 많으니까 요양병원부터 간병비를 급여화해서 건강보험을 적용해 보는 것을 추진해 보려고 한다”며 “간병비 전부를 급여화하는 것은 비용 부담이 꽤 크다고 해서 순차적으로 요양병원부터 범위를 넓혀 나가는 방향으로 추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총선 1호 공약으로 요양병원 간병비에 대한 건보 지원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노인 표심'을 노린 민주당의 선공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무회의에서 “간병부담은 ‘간병지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국민의 간병 부담을 하루빨리 덜어드릴 수 있도록 복지부가 관계부처와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달라”라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에 앞서 대책을 준비해온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당정협의를 갖고 ‘국민간병비 부담 경감방안’을 내놓았다.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급성기병원부터 요양병원, 퇴원 후 재택까지 간병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먼저 중증 수술환자, 치매, 섬망 환자 등 중증도와 간병 요구도가 높은 환자 치료를 위해 45개 상급종합병원과 500병상 이상 30개 종합병원에 ‘중증환자 전담 병실’을 도입한다. 간호사 1명당 환자 4명을, 간호조무사 1명당 환자 8명을 맡는다. 10개 병실(4인실 기준, 환자 40명)당 1명을 배치했던 간호조무사를 앞으로는 3개 병실당 1명을 둔다. 간병기능 강화를 위해 간호조무사 투입을 3.3배 확대한다는 방침이 눈길을 끈다. 야간에만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를 대상으로 하는 보험 수가도 신설된다. 이에 따라 종합병원은 간호조무사 신규 충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일자리가 생기는 셈이다. 

복지부는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더 많은 병원일수록 간호인력을 더 많이 배치하고 의료기관과 간호인력이 받는 보상도 늘릴 계획이다. 계획대로 이행되면 중증 환자와 경증 환자를 선별하려는 병원 관행이 일부 개선되고 간호·간병 서비스의 질도 높아질 수 있다.

중증환자 간병부담을 줄이는 방법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운영하는 의료기관을 늘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종합병원 평가와 연동시켜 성과평가 인센티브 지표 중 병상 참여율 비중을 현재 30%에서 35%로 높이기로 했다.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아울러 복지부는 수도권과 6대 광역시를 제외한 지방에 있는 종합병원과 국립대 병원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참여할 경우 근무하는 간호사 1명당 월 30만원을 3년간 한시 지원한다는 '당근'도 내놓았다. 인건비 일부를 보조받을 수 있어 간호사 신규 채용 여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간호인력 집중을 막기 위해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4개 병동 참여로 묶어놓은 규제도 푼다. 2026년부터 수도권 22개 상급종합병원은 2개 병동의 추가참여를 허용하고 비수도권 23개 상급종합병원은 아무런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다.

복지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이용 인원을 올해 230만명에서 2027년 400만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이번 조치로 2027년까지 향후 예상되는 국민 간병비 40조원의 4분의 1 수준인 10조 6877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인포그래픽제공=복지부)

요양병원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간호·간병통합병동이 없다. 복지부는 2024년 7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간병지원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혼수 상태, 인공호흡기 부착, 사지 마비 등으로 의료필요도와 간병필요도가 모두 높은 환자 600명을 돌볼 간병인이 교대근무가 가능하도록 예산을 지원한다. 교육을 이수한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 1명당 환자 4명이 배치된다. 이들은 간호사의 지도감독 아래 간병업무를 맡는다.

의료최고도 환자는 180일까지 간병비가 지원되고 이후에는 본인부담률을 매월 10%포인트씩 올려 일정 기간후에는 전액 부담하도록 한다. 의료고도환자는 180일까지 제공하고 이후 지원을 종료한다. 대상환자와 선정방식, 배치기준의 적절성을 검증한뒤 2단계 시범사업을 거쳐 2027년 1월부터 지원기준을 총족하는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본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같은 요양병원 간병 지원 제도화의 관건은 여기에 들어가는 돈을 어디서 염출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건강보험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돈을 갖고 올 가능성이 높다. 다만 요양병원 간병비에 건보를 적용하면 연간 최대 15조원이 들어간다는 것이 복지부 추산이다. 건강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경우 2028년이면 기존 건보 적립금은 바닥을 드러낼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재정적 상황을 고려, 복지부는 시범사업 결과 분석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요양병원 간병 지원에 필요한 재원조달 방식을 결정하기로 했다. 민간 간병 관련 보험과의 연계성도 검토할 방침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는 취지야 좋지만 공짜점심은 없는 법이다. 국민들의 추가 부담이 불가피한 형국이다. 이미 민주당의 핵심공약으로 재등장한데다 윤 대통령도 지원 대책을 촉구한 마당에 요양병원 간병비 지원을 위한 건보료 인상은 시간문제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제공=보건복지부)
(그림제공=보건복지부)

문제는 지속가능한 간병비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점이다. 중증질환으로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아야 하거나 중풍으로 인한 마비, 치매, 고령에 따른 거동 불편 등으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머무는 노인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간병비에 대한 공적 지원에 앞서 요양병원 입원환자의 상당수가 '경증'으로 연구된 만큼 집이나 요양원으로 옮기는 조치부터 선행될 필요가 크다. 요양병원이 '사회적 입원'을 부추기지 않도록 기능 재정립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올해 943만6000명으로 작년보다 45만5000명 늘어났다. 2025년에는 1000만명을 돌파한다. 2030년에는 1280~1314만명, 2040년에는 1657만~1770만명 수준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비해 노인과 어린이들을 먹여 살려할 생산연령인구(15세~64세)는 올해 3657만명에서 2030년에는 3376~3457만명, 2040년에는 2814~2993만명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통계청은 예상한다. 중간 수준의 출산율과 기대수명, 국제순이동을 조합한 중위 추계 기준으로 향후 7년내 노인은 38% 급증하는데 비해 생산연령인구는 6.6% 감소한다. 

취업연령이 늦어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현행 사회보장제도가 유지되는 전제에서도 2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 국민의 세금과 사회보험료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 세대간 갈등양상으로 치닫지 않도록 단기처방으로 건보와 장기요양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 확대부터 검토할 시점에 왔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