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3.12.28 15:14
1기 신도시의 대표주자인 분당 정자동. (사진=원성훈 기자)
1기 신도시의 대표주자인 분당 정자동.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분당 시범단지 아파트 첫 입주는 1991년 9월 이뤄졌다. 일산에선 강촌마을 1단지가 고층아파트 시범단지로서 1992년 10월 입주가 시작됐다. 시범단지 아파트는 준공된지 30년이 훌쩍 지났다. 다른 아파트도 조만간 재건축 정비연한인 30년을 넘어서게 된다. 분당,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1기 신도시에 공급된 아파트는 193만호에 달한다. 아파트와 연립주택은 낡았고 편의시설은 부족하고 대중교통망도 불편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공통된 불만이다.   

1기 신도시에는 이미 높은 밀도로 개발된 아파트가 많다. 기존 법률과 제도에 따른 용적률과 안전진단 요건으로는 재건축 사업 추진이 어려워 과거부터 특별법 제정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1기 신도시 정비사업촉진 특별법'을 제정한다고 공약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022년 9월 신도시 지방자치단체장과  간담회를 갖고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계획을 밝혔다.

당초 1기 신도시를 대상으로 입법이 추진되었던 특별법은 형평성 논란과 특혜 시비를  감안, 적용 대상을 택지조성 사업 완료후 20년이 경과한 100만㎡ 이상의 택지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전국 51개 지역에 적용된다.

원 장관의 공언 이후 특별법은 여야 국회의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1년 3개월여 만인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26일 공포된 특별법이 내년 4월 27일 시행되면서 1기 신도시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신도시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게 되면서 주민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 정비사업을 추진할 때 최고 500% 용적률 상향, 건축물 높이제한 완화, 안전진단 완화와 같은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다. 특별법은 인·허가 통합심의, 대규모 블록단위 통합정비, 역세권 복합·고밀 개발, 광역교통시설 확보 등의 규정도 담고 있다. 구역별로 자유롭게 도시를 계획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주민과 부동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신도시별 선도지구와 관련, 국토부는 28일 "내년 하반기에 지정할 계획"이라고 빌표했다. 정주여건 개선 정도, 도시기능 향상과 함께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모범사례로서 확산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지정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선도지구 재건축이 제때 제대로 이뤄져야만 잔여지구의 정비작업도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선도지구 지정을 둘러싸고 지역내 주민간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공정하게 선정되는 것이 중요하다.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인근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뉴스웍스 DB)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주엽동 인근 아파트 단지의 모습. (사진=뉴스웍스 DB)

특별법은 대규모 정비시기에 따른 이주대책을 수립하도록 규정, 부동산 시장 불안을 미리 차단할 수 있는 규정을 명문화하고 있다. 단순한 점단위 재건축이 아닌 도시 단위의 정비를 추진한다. 이로 인해 기반시설이 정비되고 자족기능도 확충되면서 도시기능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 정비기본계획 조기 수립, 통합심의 적용 등으로 일반 재건축보다 신속한 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규정했다. 주민들은 광역적·체계적 정비를 통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신도시로 재탄생하기를 바라고 있다.

국토부는 특별법 제정으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만큼 조속한 시일 내 시행령을 입법예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 특성에 맞게 도시를 정비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게 최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정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특별법은 사업 촉진을 위한 특례를 규정하면서 개발이익을 공공부문으로 환원하는 공공기여를 명시하고 있다. 개발이익으로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기반시설도 확충하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 "주민들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공공기여 수준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H, LX, HUG, 부동산원, 국토연구원은 내년 중 국토부의 '노후계획도시 정비 지원기구'로 지정된다. 이들은 단계별 이주계획 수립 지원 업무, 노후계획도시 정비사업의 사업성 검토 업무, 1기 신도시별 선도지구 지정 컨설팅 업무 등을 수행하게 된다.

안양 평촌스마트스퀘어 도시첨단산업단지 전경. (사진제공=안양시)
안양 평촌스마트스퀘어 도시첨단산업단지 전경. (사진제공=안양시)

신도시 정비의 핵심은 마스터플랜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내년 중 '정비기본방침'과 1기 신도시별 '정비기본계획'을 공동 수립한다. 정부는 지자체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필요성, 현실성 등을 고려해 기본방침을 수립하고 정비기본계획 수립에 필요한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특별법이 시행되더라도 앞으로 넘어야 한 산이 많다. 통상 개별단지에서 재건축이 논의 및 착수단계에서 최종 입주에 이르기까지 10여년 걸리기 일쑤다. 용적률과 높이제한 완화로 재건축에 따른 신규 아파트 물량을 늘려 소유자 부담을 줄어주겠다는 것이 특별법 취지이지만 최근 공사비가 대폭 올라 채산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더구나 고금리 상황에서 정비사업을 위한 재원을 어떤 조건으로 조달할지를 놓고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광역 정비 실현의 전제조건이 대규모 이주대책 수립과 이행도 힘든 과제다.

특별법에 따라 정비기존방침과 정비기본계획은 수립되지만 실제 사업 시행과정에선 현행 법률의 저촉을 받게 된다. 재건축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적용을 받는다. 역세권 개발정비는 도시개발법에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 환경, 교통, 환경 등 이른바 3대 영향평가 통과도 만만치 않다. 국토부와 지자체는 마스터플랜에 따라 도시 단위의 합리적 정비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단계마다 정책적 지원에 나서야 할 것이다. 

특별법은 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를 감안, 수도권 주민의 표심을 감안해 서둘러 통과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51개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지만 사업성을 감안할 때 1기 신도시, 특히 분당과 일산부터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우려된다. 1기 신도시가 새롭게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양질의 주택과 일자리가 늘어나고 기반시설도 확충되면서 비수도권 거주지와의 격차가 커지게 된다. 노후계획도시의 매력이 높아진다면 인근 저층 주거지의 정비와 재생 작업은 더욱 난관에 처할 공산이 높다. 주변 지역 주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줄여줄 조치가 필요하다. 

군포시 산본고가교 전경. (사진제공=군포시)
군포시 산본고가교 전경. (사진제공=군포시)

노후계획 도시 정비는 기초자치단체장의 권한만으로 달성되기 어렵다. 특별법은 적정한 물량의 이주단지를 공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보전가치가 낮은 개발제한구역을 풀어 이주단지로 쓸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자체의 하소연이다. 

옹적률을 높여 더 많은 인구가 살도록 한다면 지역내 차량 정체가 심화될 수 있다. 국가 단위의 광역교통망 보강이 함께 이뤄져야만 신도시와 주변 지역 주민이 교통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수처리 시설 확충과 교육시설 재배치를 위한 환경부와 교육부의 협력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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