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6.29 18:30
중소벤처기업부 세종청사. (사진=중소벤처기업부 유튜브 캡처)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지난 2006년 도입된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의 취지와는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이 아닌 하청생산 제품이나 다른 회사제품이 버젓이 공공기관에 납품되어온 것으로 국무조정실 점검 결과 드러났다. 악덕 중소기업이 거짓으로 '직접생산확인 증명서'를 받아 엉뚱한 제품을 공급하다가 걸리더라도 불이익이 없다 보니 이처럼 경쟁제품 공공조달시장이 처참하게 망가진 채 존속되어왔던 셈이다. 더구나 공공조달의 고질적인 병폐가 근절되지 않고 있음을 알면서도 중소벤처기업부와 조달청은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점도 확인돼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판로지원법은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의 팔 곳과 물량을 지정해줘 경쟁력 향상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제정됐다. 1조에서 "이 법은 중소기업제품의 구매를 촉진하고 판로를 지원함으로써 중소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경영안정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조에선 "공공기관의 장은 중소기업제품의 조달계약을 체결하거나 판로를 지원하는 경우에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판로지원법은 특별법적 성격을 지녀 국가계약법령보다 우선 적용되는데도 곳곳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운영되어온 것이다. 

판로지원법에 따라 정부와 지자체, 국회, 법원, 국가·지방공기업 등 공공기관 1000곳은 매년 총물품구매액과 총공사구매액, 총용역구매액의 50% 이상을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이나 직접 공급한 서비스에서 사들여야한다. 이러한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제도에 따른 공공조달은 지난해 26조원에 달했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 점검 결과 직접생산 위반행위는 적지않게 드러났다. 중소기업제품의 실질적인 구매 효과를 높여 경쟁력을 키워주겠다는 판로지원법이 부도덕한 중소기업들에 의해 유린되어왔음이 확인된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나마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직접생산의무를 위반한 788개 중소기업에 대해 직접생산증명을 취소했다지만 공공기관이 요구하는 규격에 맞춰 적정가격으로 입찰에 나섰다가 떨어진 중소기업들의 불이익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중기부는 판로지원법에 과징금 부과 및 고발 등 제재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행정지침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실제로 제재한 사례가 전무했다고 하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중기부는 중소기업의 과중한 부담 등을 이유로 법 위반 업체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고발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고 해명했다지만 과연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중기부는 판로지원법상 조사대상 범위와 제재에 대한 제척기간이 없거나 5년인데도 행정규칙을 통해 조사 대상 범위를 3년으로 한정, 운영했다. 직접생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른 업체의 제보 등을 통해 드러날 경우 5년까지 소급해 조사할 수 있음에도 3년으로 단축한 이유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조달청의 무능과 한심함도 버금간다. 납품요구일 이전에 이미 직접생산확인 증명이 취소된 업체를 확인하는 데 소홀, 위반업체를 '부정당업자'로 지정하지 않았던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직접생산확인증명서' 관리도 허술했다. 공공기관의 장은 물품을 사거나 용역을 발주할 경우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경쟁입찰을 통해 의무적으로 계약해야 하고 해당 중소기업의 ‘직접생산’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부담을 감안, 중기부장관이 발급한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받으면 이런 의무에서 면제된다. 직접생산 여부를 조사해 증명서를 발급하거나 취소하는 업무를 중기부로부터 넘겨받은 중소기업중앙회는 실태조사비를 과도하게 지급하는 등 운영이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 4월 25일에야 수탁기관을 중기중앙회에서 중소기업유통센터로 바꾸고 중기유통센터로부터 업무에 대한 정기적인 보고를 받기로 했다. 중기중앙회의 반성과 쇄신이 요구된다.

건실한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공공조달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사실 공공기관은 판로지원법 외에도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 장애인기업활동촉진법 등에 따라 다른 중기제품 구매 의무도 지고 있다. 여성기업제품의 경우 물품구매액의 5%, 용역구매액의 5%, 공사구매액의 3% 이상을 구입해야 하고 장애인기업제품은 구매액의 1% 이상, 창업기업제품은 구매액의 8% 이상 사들여야만 한다. 이런 지원제도가 앞으로도 존속하려면 무엇보다 법 규정이 철저히 지켜져야 한다.

사과 상자 안에 썩은 사과가 하나만 들어있어도 제때 빼내지 않는다면 모든 사과는 부패될 것이다. 더 이상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지 않도록 정부는 성실한데다 기술력도 갖춘 중소기업이 공공기관 납품을 통해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이행 상황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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