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7.05 16:26
(사진제공=권익위)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생소한 국가를 방문하게 되거나 출장을 가게 될 경우 따지는 척도가 몇 개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과 시간당 최저임금, 물가상승률, 예·대출금리, 문맹률, 청년 취업률 등 경제사회 지표와 함께 민주주의 시행, 평화적인 정권 교체 등 정치 지표를 따져 국격을 판단하게 된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기준이 바로 부패 수준이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뇌물을 받아야만 인·허가가 떨어지는 국가라면, 더구나 이렇게 모은 돈이 최고권력자에게 여러 단계를 거쳐 상납되는 나라라면 발전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다. 권력이나 자금을 가진 자가 좋은 기회까지 선점하는 불공정이 계속되는 한 계층이동은 불가능해지고 국민 대다수는 빈곤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70~8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 역시 부패공화국 범주에 있었다. 도로에서 과속하거나 신호 위반 등으로 경찰에 걸릴 경우 운전면허증과 함께 접은 지폐를 쥐어 주면 대체로 벌점이나 과태료를 물지 않을 수 있었다. 관공서를 찾아갈 때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해 서류 속에 현금을 집어넣는 민원인도 적지 않았다. 학교에선 '촌지'라는 이름으로 교사에 대한 금품 제공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다. 무엇보다도 유력 정치인들이 선거자금 모집을 핑계 삼아 대기업들을 상대로 막대한 정치자금을 끌어모았다. 위부터 아래까지 돈이면 안되는 것이 없었던 썩은 국가였다.

다행스럽게 민주화 바람 속에 1987년 헌법이 개정되면서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높아지면서 뇌물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났다. 여기에 공헌한 중앙행정기관이 2001년 제정된 부패방지법에 의해 2002년 출범한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이었다. 부방위는 공직자 및 공공기관과 관련된 부패행위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가 필요할 경우 수사기관, 감사원 등에 이첩하며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부패혐의에 대해 검찰에 직접 고발할 수 있었다. 2005년 국가청렴위원회로 개편된 뒤 2008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와 함께 국민권익위원회로 통합됐다.

권익위의 설립목적은 부패와 반칙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위법·불합리한 행정이나 불합리한 제도로 인한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있다. 부패행위와 공익침해행위, 청탁금지법 위반 행위, 채용비리, 공공재정 부정청구 등에 대해 신고를 받고 있다. 원칙적으로 신고자의 신분과 비밀을 보장하고 신변보호와 책임감면도 해준다. 그렇지만 부패행위를 신고하려면 본인의 자세한 신상명세부터 알려야 했다. 진입장벽이 높았던 셈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감안, 5일부터 부패행위 신고자에 대한 보호·보상을 강화하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부패신고자가 자신의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고 대리인인 변호사의 이름으로 신고할 수 있게 됐다. 법 개정 전에는 공익신고 및 청탁금지법 위반신고에 한해 변호사를 통한 비실명 대리신고가 가능했다. 부패신고자가 신고와 관련해 자신의 위법행위가 발견된 경우 형사처벌, 징계처분뿐만 아니라 행정처분까지 감면받을 수 있도록 책임감면 범위도 넓혀졌다. 재직 중 직무 관련 부패행위로 당연퇴직, 파면·해임된 공직자 또는 퇴직 후에 벌금 300만원 이상 형의 선고를 받은 공직자였던 사람이 퇴직일 등으로부터 5년간 공공기관, 재직 당시의 업무 관련 영리사기업체 등에 재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한 '재취업제한제도'를 비위면직자에게 미리 안내하도록 한 규정도 추가됐다.

이번 법 개정으로 권익위는 부패신고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변호사를 통한 대리신고 범위가 넓어진다고 해도 조직 내부의 부패 관행 제보자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잔존한 현실에서 과연 신고가 늘어날 지는 지켜봐야할 것이다. 더구나 최근 권익위의 수장과 역할을 놓고 여당은 비난하고 야당은 옹호하는 등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있어 더욱 그렇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6월 18일 “국민권익위는 법률에 따라 대한민국의 부패방지 총괄기관이자 국민의 권익을 구제하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라며 남은 임기를 완주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4일 “지난주 국민권익위에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탈북 선원 강제북송 사건 당시 문재인 정권의 대처가 국민 권리호보 측면에서 타당한 것이었는지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민주당 국회의원 출신 전현희 위원장의 권익위 답변은 '답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며 권익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권익위는 올해 주요 업무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 고충 적극 해소로 실질적 권익구제에 주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되돌아보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당시 권익위가 '위법·불합리한 행정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추정될 수 있는 국민'을 위해 구제활동에 나섰다면 이같은 비판에 직면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권익위는 부패방지위원회 신설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구제하는 기관으로서 이제부터라도 제 몫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다. 오직 설립 취지에 따라 적극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신뢰를 쌓아간다면 '청렴 대한민국' 달성도 결코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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