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7.21 11:23
하청지회 노조원들이 도크 중간에서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금속노조)
하청지회 노조원들이 도크 중간에서 점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금속노조)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조선소는 바다에 바로 붙어 있으면서 맑은 날이 대부분이고 비는 적게 오는 지역에 짓는다. 로봇이나 작업자가 용접으로 블록들을  접합시켜 선박 본체를 만든 뒤 검사하려면 옥외 작업이 필수적이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도는 물론 현대중공업이 자리한 울산은 일조량이 풍부한데다 날씨도 온화하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다짐했던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같은 기후조건에 따라 3대 조선소가 들어서게 됐다. 현대중공업이 1972년 세워진데 이어 대우조선은 1973년, 삼성중공업은 1974년에 창립됐다. 1년 터울로 탄생한 셈이다.

아파트 수십층 높이에 이르는 대형 선박은 그 자체가 거대한 건물이자 철제구조물이다. 태양광선이 내리쬐는 여름철 한낮에는 바닥판에서 올라오는 열기까지 더해지면서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한다. 넘어지거나 자칫 추락이라도 하면 중대재해로 직결된다. 작업이 힘들고 위험한데 비해 보상은 기대에 늘 미치지 못하다보니 노동자의 파업투쟁이 빈발할 수밖에 없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대형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았던 곳도 바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이었다. 

이런 대립적 노사관계의 한계를 딛고 가성비가 높은 선박을 건조하면서 대한민국은 선박 건조 1위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월별 순위로 중국이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지만 기술력과 납기 준수율이 빼어난 한국을 넘어서기는 당분간 힘들 것이다.

이런 와중에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가 21일 현재 50일째 옥포조선소 1독을 무단으로 점거한채 작업을 가로막고 있다. 법원에서도 불법으로 판정한 집단행동으로 인해 도크 작업이 장기간 멈추면서 하루 3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바라는 바처럼 이번 사태를 해결할 '스타'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 대한 기대가 높다. 한국노총에 장기간 근무한 노동운동가 출신으로서 옥포조선소를 연 이틀 찾아간 바 있다. 현장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근로감독관의 의견을 바탕으로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에서 받아들일 내용을 파악하고 원청업체인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업체에서 할 수 있는 대응조치를  파악,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합의안을 이끌어내야할 책임이 있다. 

하청지회가 임금 인상 요구와는 별도로 대우조선해양과 하도급업체 측에 불법 점거에 따른 손해배상을 비롯한 민·형사상 소를 제기하지 말 것을 파업종식의 조건으로 고집하는 것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조선현장에서 불법파업이 근절되지 않는 배경에는 노조의 '부제소' 요구를 사용주가 받아들인 영향이 크다. 불법파업으로 사용주에 손해를 입혀도 노조가 사실상 책임을 지지 않는 현실에서 불법파업 종식을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아무리 배가 고프다해도 빵 한개라도 훔쳤다면 검찰에 의해 기소돼 법정에서 준엄한 심판을 받는 것이 맞다. 범죄행위를 반성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확인된다면 판사는 제반 정황을 참작, 관대한 처분을 내릴 것이다. 법과 원칙의 준수를 강조하는 새정부가 들어선뒤 처음 불거진 불법파업 사태를 노사가 과거처럼 뭍밑 담판과 미봉책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청지회 노조원이 도크 바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제공=금속노조)
하청지회 노조원이 도크 바닥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사진제공=금속노조)

조선소 현장에서 산업평화를 정착시키려면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느끼는 임금에 대한 불만을 완화시켜주는 노력이 요구된다. 하청지회는 원청업체 노조원에 비해 임금이 절반 수준에 못 미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임금은 직무의 난이도와 중요성, 생산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갑이라는 파워를 갖는 원청업체의 횡포로 인해 하청업체가 가져가야할 몫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아 결국 노조원의 저임금을 낳았는지 여부를 관계당국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하청지회의 노사협상 파트너가 아니다. 지난해 1조7547억원의 적자를 냈고 올 1분기에도 470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정도로 어려운 실정에서 협력업체 노조가 정당한 파업을 한다해도 지급능력 이상의 대금을 줄 수 없다. 하청지회 역시 이 점을 알 것이다. 배를 인도하는 시점에 대금을 더 많이 받는 방식으로 계약하면서 조선사들은 외부차입금으로 배를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원칙을 준수하는 선에서 노사합의안을 마련하고 내년이후 원청업체의 자금 사정 개선 추이에 맞춰 단계적으로 하청업체의 기여도를 좀더 많이 반영하는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간 고생한 기여도를 감안, 생산성 증가폭 이상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노조측에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민이나 정부나 다 많이 기다릴 만큼 기다리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며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경찰 진입을 통한 노조원 강제해산은 대단히 신중을 기해야할 일이다. 불법이 판치는 현장을 정리하기위해 아무리 주도면밀하게 작전을 짠다해도 돌발변수가 터지면서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운 정부 출범 100일도 되지 않아 쌍용자동차 사태나 용산 참사가 발생한다면 국정동력 상실은 불가피하다. 복합경제위기를 맞아 그 어느 때보다 노동계의 협조가 필요한 때 아닌가.

하청지회의 불법 점거가 장기화되면서 회사 앞날이 불안해졌다고 느낀 대우조선해양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노노 갈등도 첨예화되고 있다. 대우조선 생산직 직원으로 구성된 민주노총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하청업체의 강경투쟁을 지지하는 금속노조에 반발, 21일부터 탈퇴 여부를 정하는 투표에 들어갔다. 대우조선이 회사노조로 전환된다면 금속노조는 막대한 '맹비'를 잃게 된다. 더구나 다른 회사로 번진다면 금속노조는 존립 근거마저 흔들리게 된다. 도크 현장에 경찰이 들어간뒤 한 명이라도 부상자가 나온다면 금속노조는 이를 빌미로 "현 정부의 자본가진영 편향성이 확인됐다"며 전면투쟁에 나설 것이다. 대우조선 노조를 '어용조직'이라고 몰아세운 금속노조에 힘을 실어줄 것인가.   

칼은 칼집에 들어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일단 빼고 나면 평화적 해결은 멀어진다. 썩은 무라도 자르려다가 칼날이 나갈 수도 있다

노사 양측은 더 늦기 전에 현안을 타결해야한다. 무엇보다 하청지회는 독 점거를 풀어야한다. 그 이후 누적된 구조적 문제를 노사정이 함께 개선하면서 분규 재발을 방지할 노사화합 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