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7.26 10:29
기획재정부는 지난 6월 30일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총 14개 공공기관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선정했다. (위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전 본사, LH 본사, 한수원 본사 및 달리는 KTX열차) 

[뉴스웍스=최승욱 기자] "조직·인력 규모가 많고 평균보수는 높고 복리후생 혜택은 민간에 비해 높은 곳은?" 

기획재정부와 조세재정연구원이 공공기관 관련 정책 인식도 조사를 실시, 25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일반 국민과 전문가의 과반수 이상이 ‘정답’으로 공공기관을 지목했다. 반면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경우 ‘그렇다’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낮았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달리 말해 공공기관 개혁의 필요성이 역설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이같은 조사 결과를 발판 삼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오는 29일 발표될 새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에 맞춰 350개 공공기관은 생산성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기관별 혁신 계획을 수립, 8월 말까지 제출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능 조정, 조직·인력 효율화, 예산 효율화, 불요불급한 자산 매각, 복리후생 점검조정 등 5대 분야를 대상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 혁신 가속화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한국리서치는 조세재정연구원의 의뢰로 지난 6월 17일부터 21일까지 일반국민 1022명, 350개 공공기관 종사자 321명, 대학과 연구원 연구소에 재직하는 공공기관 운영 및 행정 전문가97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공공기관의 실태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일수록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에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의 71.1%는 조직·인력 규모가 많다고 응답했고 적정하다는 답변은 22.7%를 기록했다. 적다는 평가는  6.2%에 그쳤다. 평균 보수와 관련, 전문가의 64.9%가 높다고 지적했고 낮다는 응답은 2.1%에 불과했다. 국민의 55.5%는 조직·인력규모가 많고 61.0%는 평균 보수가 높다고 응답했다.

(표제공=조세재정연구원)

반면 공공기관 종사자의 60.4%는 조직·인력규모가 많거나 적정하다고 답변했다. 무엇보다 평균보수에 대해 43.9%는 낮다고 응답한 반면 적정하다는 답변은 42.1%를 기록했다. 높다는 지적은 14%에 그쳤다.

복리후생 혜택이 민간에 비해 높다는데 국민의 64.3%가 동의했고 전문가의 57.7%도 수긍한 반면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14.6%만이 인정했다. 오히려 종사자의 57.3%는 민간보다 낮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결과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인천국제공항 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상당수 공기업은 민간 대기업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는데다 정년까지 근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조업체보다 임금을 더 주는 금융권 공기업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다. 신입사원 시험에서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과 4대 시중은행에 동시합격한다면 대다수 기업은행으로 출근한다.

공공기관이 '꿈의 직장' 또는 '신이 숨겨놓은 직장'이란 세간의 평가가 사실과 부합된다는 점은 다른 조사 항목에서 확인됐다. 고용안정성과 관련, 전문가의 93.8%는 높다고 응답했고 공공기관 종사자의 75.4%도 동의했다. 특히 전문가 답변에선 적정하다는 6.2%에 그쳤고 낮다는 응답은 아예 전무했다. 

평균 보수와 복리후생 수준이 높은데도 생산성은 오히려 낮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전문가의 66.0%는 공공기관의 생산성이 민간 대비 낮다고 지적했고 국민의 44.3%도 동감했다, 이에 반해 공공기관 종사자의 47.0%는 보통이라고 응답했고 28.3%만이 낮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이 효율적으로 운영 또는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데 전문가의 54.6%가 의견을 같이했고 국민의 46.7%도 비효율적인 운영을 지적했다. 반면 공공기관 종사자의 경우 27.4%만이 받아들였다. 

공공기관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부정적이다보니 강도 높은 공공기관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전문가의 77.3%, 국민의 71.8%가 동의했다. 이에 반해 공공기관 종사자의 경우 개혁불필요라는 응답이 36.8%로 가장 많았고 필요성을 인정한 비율은 34.6%를 기록했다.

공공기관 개혁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과제에 대해 국민의 52.1%는 과다한 인력 및 복리후생 등 점검 조정을 손꼽았고 공공기관 종사자와 전문가의 경우 핵심업무 위주로 기능 조정이 각각 48.8%, 57.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공공기관은 정부의 투자·출자 또는 정부의 재정지원 등으로 설립·운영되는 기관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감안, 지정한다. 공공기관운영법은 제1조에서 공공기관의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공공기관의 대국민 서비스 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합리적인 경영과 투명한 운영을 통해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법 제정 목적에 비춰 보면 현재 공공기관은 설립 근거부터 흔들리는 위기에 처해 있음은 분명하다.

공공기관은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전문영역을 전담하거나 공공재산을 관리하는 임무 등에 국한되는 것이 당초 입법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시장에 맡겨 둘 경우 효율적 자원배분이 불가하거나 어려운 '시장실패' 영역에 한정, 운영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공공기관이 늘어날수록 시장 기능이 위축될 위험성도 커진다.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업무를 조정하고 방만한 재정운영의 고삐를 죄어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시급하다.

이에 못지않게 공공기관과 관리·감독하는 정부 부처와의 유착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기관 역시 업무 확대를 통해 조직을 키우려고 한다. 각종 대의명분을 들어 관련 계획을 제출하면 담당 공무원은 냉철하게 필요성을 따지기보다 소속 부처에서 퇴직하고 임원으로 근무 중인 선배의 눈치 등을 살피며 알아서 기게 된다. 공공기관이 매년 받는 경영평가 점수를 해당 공무원의 성과와 연계시킨다면 도덕적 해이 발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 보장 원칙도 철저히 지켜져야한다. 공공기관운영법은 제3조에서 정부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여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역대 정권마다 기관장 자리를 능력이나 전문성에 관계없이 논공행상용으로 활용하다보니 노조로부터 취임 반대 투쟁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2~3주 가량 출근도 못하며 기관 주변을 맴돌면 지치게 된다. 결국 뭍밑 담판을 통해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고 입성하다보니 처음부터 기관장으로서의 령(令)이 설 수 없다.

그간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전기요금이나 공공아파트 임대료 인상을 막무가내식으로 억제했던 일이 적지 않았다. 애매모호한 지침과 개입으로 공공기관의 책임경영과 자율운영 기반을 흔들어놓고 나서 사후에 책임만 묻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더이상 재발되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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